토론없는 사회
[부산 이야기] - 이야기 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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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리는 사상의 충돌과정에서 당당하게 표출한다’-중세 자유주의자 존 밀턴의 믿음이다. 밀턴 사상의 핵심은 크게 두 가지. ‘사상의 공개시장’(the open market place of ideas)과 ‘자율조정 과정’(self-righting process)이다. 진리는 자유롭고 공개적인 논쟁을 거쳐, 허위를 억제하고 강한 힘을 가지리라는 것이다.
“만유인력을 발견한 사람은?” “죽었다”, “얼음이 녹으면?” “봄이 온다”. 얼음이 녹으면 ‘물이 된다’가 아닌, 봄이 온다는 생각. 최근 화제에 오른 ‘바른 교육 큰 사람’ 캠페인의 일부이다. 낯설게 여겨왔던 ‘틀 밖의 생각’에서 머리를 땅! 때리는 그 무엇이 있다. ‘당신의 생각은 어떻습니까?’를 되묻는 광고에서 공감할 바는 진실의 발견이다.
문맥에서 말하고자 하는 바는 뚜렷하다. 일률적 흑백논리를 두려워하며 토론의 중요성과 중간지대의 가치를 그리워하는 것이다. 권위주의 속에 태동했던 자유주의 사상, 어린이의 생각에서 꽃피우는 상상의 자유…. 현대 민주사회에서 자유주의의 역사와 어린이의 기상천외한 생각을 되새기는 것은 이 시대의 불행한 역설이다.
“얼음 녹으면 봄이 온다”… ‘틀 밖의 생각’에서 진실 발견하기지금 우리 앞엔, 강고한 자기주장 뿐 상대주장에 귀 기울이는 배려가 없다. 밀턴의 표현대로, 사상의 공개시장에서의 자율조정 과정이 없는 것이다. 하나의 주제를 두고도 진리를 찾기 위한 논쟁 대신, 자기이익을 앞세운 흑백논리만 강조한다. 정부차원의 주제인 4대강 살리기부터, 영남권의 공동주제인 동남권 신공항 입지며 남강댐 맑은 물 먹기 문제까지.
최근 정부와 일부 도지사·교육감의 잇따른 충돌도 그러하다. 정부의 주장은 있다. 4대강 사업은 정부의 중요 국책사업이며, 통일적·기본적 교육정책을 정하는 권한은 정부의 중요책무라는 것이다. 이 문제 역시 논리적 토론 없는, 독선적 충돌이 적지 않다. 때로는 정치이념과 교육철학에 따른, 때로는 지역적 이익을 둘러싼 수준의 다툼이 격렬하다.
다행인가, 부산·울산·경남 시·도지사는 신공항 유치를 둘러싼 과열경쟁을 자제한단다. 이대로는 정부에 건설 연기나 백지화의 빌미를 줄지 모르니 조기 건설에 힘을 모은단다. 다만, 현안을 풀, 속 시원한 토론 역시 자제하는 분위기다. ‘부산 가덕도’론과 ‘경남 밀양론’을 내세운 두 시도의 신공항 입지 결정기준은 같다. 안전성·경제성·환경성·산업 연계성 등이다. 그러고도 실상 기준별 분석결과는 판이하다. 상대 얘기를 귀담아 듣는 배려가 없는 탓이다. 오랜 역사적·정서적 동질감을 바탕으로, 늘 상생협력을 다짐하는 부산·경남이 이러함에랴.
이제, 우리는 스스로를 위해 되물어야 한다. 4대강 살리기를 강행하건 반대하건, 과연 내 주장이 꼭 옳다는 확신은 어디에서 얻었는가. 공항 입지 역시 꼭 우리 지역이어야 한다는 그 강고한 논리는 어디에서 나온 것인가. 전북지역 새 교육감 취임 며칠 만에 자율고 지정 취소결정을 내린 그 확신은 또 어떻게 얻은 것인가. 누가, 무엇이, 그들에게 그토록 탄탄한 진리에의 확신을 주었는지 궁금하고 안타까울 따름이다.
‘나’ 고집하는 흑백논리 대신 상대 인정하는 관용 필요한 때통섭의 석학 이어령의 10년전 정년퇴임 고별강연이 생각난다. 주제는 ‘헴로크(Hemlock)를 마신 뒤 우리는 무엇을 말해야 하나’. 철학자 소크라테스가 사형당할 때 마신 그 독약, 헴로크는 웃음인가, 눈물인가를 묻는 것이다. 석학의 주장은 처연하다. 소크라테스의 철학을 완성시킨 웃음이요 제자에겐 슬픔의 눈물이라는 것, 헴로크 효과는 양면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거기에 OX를 치라고 죽창을 들이댈 때 우리는 무엇이라고 말해야 할까?”를 한탄한다.
그는 분명, 양자택일의 시대와 싸우며 상상력의 자유를 지켜온 이 시대의 석학이다. 그는 ‘흑백’ 아닌 ‘회색지대’의 중요성을 되새긴다. 어떤 문제든 마음껏 생각하고 표현하며, 어떤 경우든 흑백이며 사지선다식 답을 강요하지 말라는 것이다. 그 석학의 절규처럼, 이제 우리는 눈앞의 현안을 보며 때로는 상대의 주장이 완전하지 못하더라도 관용의 잣대로 볼 수는 없을까.
이제,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분명하다. 오직 내 주장을 고집하는 흑백논리와 ‘틀 속의 생각’ 대신, 과학적·객관적 논거에 바탕한 진실찾기 토론과 상대의 상상력을 인정하는 관용의 발현이다. 국가적 차원의 주제며 최근 뜨거운 교육부문의 이념성 논쟁 역시 마찬가지일 터이다. 진실을 찾기 위한 토론의 가치를 인정할 때, 결국 진실은 당당히 우리 앞에 서게 될 것임은 틀림없다.
- 작성자
- 차용범
- 작성일자
- 2010-11-25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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