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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시정 10년의 회고 : 산업경제>
부산지역경제 회고와 전망 - 끝없는 침체와 좌절 그리고 세계도시로 향한 힘찬 출발-
부산발전연구원 선임연구위원 주 수 현
1. 국내외 경제 변화와 부산경제
세계경제는 1990년대 들어와 지식정보산업의 발달과 시장경제체제의 심화 등으로 세계화현상이 가속화되었으며 지식기반경제중심으로 산업구조가 급격하게 재편되고 지역경제협력체가 확대되어 왔다. 이 시기 아시아 경제는 1997년에 외환위기로 커다란 타격을 받았으나 회복세로 전환되었다. 특히 중국은 지속적인 경제성장으로 세계경제에서의 지위가 급부상하였으나 일본은 1991년 거품경제의 붕괴이후 미흡한 구조조정과 시스템 경직성 등의 원인으로 침체국면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다. 미국은 1991년 이후 지속적인 정보통신 투자로 견실한 경제성장을 달성하였고 유럽은 안정적인 성장세를 나타냈으며, 1999년에는 단일통화를 출범시킴으로써 경제통합을 강화하였다. 국내경제는 1991년 걸프사태로 인한 국제유가 상승, 세계경기 침체 등과 같은 대외적인 요인과 1980년대 후반 3저로 인한 장기호황을 겪는 과정에서 거품확산으로 형성된 고비용-저효율 구조로 경제활력이 위축되었다. 이러한 과정에서 1993년 출범한 문민정부는 단기적으로는 침체된 경제의 활력을 회복하고 중장기적으로는 우리 경제를 선진경제권에 진입시킨다는 목표를 두고 신경제 5개년 계획을 추진하였다. 신경제 5개년계획에서는 성장잠재력의 강화, 국제시장 기반확충, 국민생활여건의 개선 등 3대 중점 경제시책을 선정하였다. 특히 1995년에는 세계무역기구(WTO)가 출범함에 따라 정부는 세계무역기구의협정이행에관한특별법을 제정하여 동 기구에 능동적으로 참여하였고 1996년 12월에는 세계경제협력기구(OECD)에 정식 가입하였다. 그러나 국내경제는 지난 30여년간의 압축성장의 문제가 노정되면서 투자의 비효율성 증대, 수출경쟁력 상실과 금융부문의 취약성으로 1997년 외환위기를 맞게 되었다. 외환위기 이후 우리 경제는 오랫동안 누적된 문제점을 개혁하기 위해 기업․금융․정부․노동부문 등 4대 분야에 대한 구조개혁을 추진하면서 동시에 새로운 환경에 적응하기 위한 과정을 겪어오고 있다. 부산경제는 1990년대 침체상태가 지속되었으며 특히 외환위기 과정에서 산업구조 및 기업구조의 취약성으로 인해 경기침체기에는 타지역에 비해 가장 먼저 영향을 받으면서 회복시에는 가장 늦게 반응하는 경기비대칭적 성격을 보여주었다. 이러한 구조적 문제는 결국 산업구조를 형성하고 있는 지역기업의 내부적 취약성과 경쟁력의 저하를 대변해 주고 있었으며 부산광역시는 이러한 위기를 타개하기 위하여 지역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여러 대책들을 추진하였다. 특히 SOC사업, 기업지원대책, 벤처육성지원 등 지역경제 활성화를 위한 다양한 대책을 추진하였으나 정책수단의 한계를 안고 있는 지방정부로서는 산업구조의 질적 고도화에 많은 어려움을 겪었다. 최근에는 지식기반중심의 경제패러다임 변화로 지역혁신주체의 네트워크와 상호학습을 통한 지역의 잠재적 자원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지역혁신시스템과 혁신클러스터 구축에 역량을 집중하게 되었으며 그리고 경제정책의 방향을 아시아태평양 비즈니스 중심도시 및 동남권 경제거점 도시로 설정하고 각종 사업들을 추진해 왔다.
2. 부산지역 경제구조 변화
부산지역은 2001년 현재 인구 378만 6천명으로 7대도시 중 두 번째로 많은 인구가 거주하고 있으나 7대도시중 고령인구비율이 가장 높으며 청년실업층의 증대로 경제활력이 많이 떨어진 상태이다. 특히 2000년 현재 GRDP는 7대도시 중 2위, 1인당 GRDP는 6위로 산업단지 면적이나 광공업체수에 비해 생산수준은 저조한 형편이다.
<표> 부산경제의 전국비중 추이
주:1995년 불변가격 기준, 2000년의 경우 잠정 집계치임. 자료:통계청, 시도별 지역내총생산, 2001. 12월
경제성장률의 경우 1980년대 후반까지 3저 호황으로 10%대의 고성장추세를 보였으나 1990년 7.8%, 1996년 7.7%, IMF 경제위기가 반영된 1998년에는 -7.6%를 기록하였으며 1999년 7.4%의 반등세를 보였다. 1990~99년 부산경제의 연평균 성장률은 3.3%로 나타나 전국 연평균 6.2%의 절반 수준에 머무르고 있다. 부산지역 경제의 전국 비중 추이를 살펴보면 1980년대 말 약 8%대의 비중을 보이다가 1990년 초에 7%대로 떨어졌으며, 1993년부터 6%대로 떨어지기 시작하여 지속적으로 하향추이를 나타내고 있다. 2000년 현재 부산지역의 지역내총생산은 경상가격기준 30조 3,050억원으로 전국대비 6.0%이며, 인구의 전국 비중인 8.0%에 비해 낮은 수준이다. 또한 1인당 지역내총생산은 1990년도에 전국의 88.1%수준에서 2000년도에는 74.6% 수준으로 크게 감소하였다. 1990년도이후 1인당 지역내 총생산 연평균 증가율도 부산이 전국평균의 91.3% 수준에서 75.8%로 15.5%p 하락하여 전국에 크게 못미치고 있다. 이러한 수준은 2000년 기준으로 우리나라 시도 평균 1인당 지역내 총생산의 규모인 10,650천원 보다도 2,688천원이나 낮은 수준으로써 대구(6,718천원)에 이어 전국에서 2번째로 낮은 수준이다. 2000년 부산지역의 제조업의 전국비중을 보면, 사업체수는 전국대비 9.2%로 제조업 종사자수는 전국대비 6.9%로 생산액은 전국대비 3.4%와 부가가치는 전국대비 3.8%로 인구대비로 볼 때 다른 시ㆍ도에 비해 크게 낮은 수준이다. 특히 1인당 부가가치 창출액은 4,470만원으로 비교 도시들 중 최하위 수준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제조업은 1980년대 중반까지 10%이상의 고성장을 보이다 1990년대 들어서 제조업의 침체가 지속되어 1992년 -6.2%, 1993년 -6.2%, 1994년 -0.2%를 기록하였다. IMF기간인 1998년에는 무려 -18.1%를 기록하였다. 1990~99년까지 제조업의 연평균 성장률은 -3.0%를 기록하여 1990년대 부산제조업은 1980년대 수준으로 뒷걸음친 것으로 나타났다. 이에 반해 서비스업은 1990년대 들어서 성장세를 지속하여 부산경제를 지탱하는 한축이 되었다. 1980년대 말까지 10%이상의 고성장세를 보였고, 1994년 11.0%를 기록하였으며, 1999년에는 13.4%의 성장률을 보여 1990년대 부산경제는 서비스부문에서 주도하였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이에 따라 서비스업의 비중이 높아져 1990년 43.7%, 1993년 51.8%로 50% 수준을 상회하였으며, 1999년에는 62.5%의 높은 비중을 차지하였다. 한편 부산의 수출은 1980년대 3저 호황기인 1988년 86억달러로 최고 수준을 보인 이후 급속히 하락했다. 1990년대 들어 계속하여 감소 추세를 보였으며 1995~99년 기간에는 IMF 경제위기의 영향 등으로 전반기에 비해 하락 추세가 두드러졌다. 이에 따라 부산 수출의 전국 비중은 1990년에 10.4%에서 1999년에는 3.6%로 크게 낮아졌다. 1990년대 부산 수출감소는 주품목이었던 신발수출의 급감과 함께 나타났으며 수출품목의 변화는 제조업 구조변화에도 반영되었다. 경공업제품은 1990년에는 부산지역 총수출의 2/3 이상을 차지하였으나 2001년에는 37.1%에 그쳤으며 이에 따라 1998년부터는 중화학제품이 경공업제품의 수출규모를 초과하였다. 그러나 이러한 변화는 중화학공업의 성장에 의한 구조 변화라기 보다는 경공업의 쇠퇴에 따른 상대적 구조변화로서 진정한 의미의 산업구조 고도화라고 보기는 어려운 것이다. 지역경제의 지속적 침체는 전통적으로 부산지역의 주력산업이었던 신발․섬유 등 경공업을 중심으로 한 제조업체들이 개도국과의 가격경쟁 격화에 따른 채산성 악화, 지가상승 등으로 해외 또는 국내 주변지역 등지로 생산기지를 이전함에 따라 제조업의 기반이 취약해진 데서 원인을 찾을 수 있다. 이와 함께 1980년대 이후 정부의 중화학 공업 중심의 산업정책, 대도시 성장관리 도시지정과 같은 경제 환경적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처하지 못한 점도 지역경제 침체의 주요원인이라고 할 수 있다. 특히 1990년대 이후 우리나라 경제성장을 주도하고 있는 정보통신산업 등 새로운 고부가가치형 성장산업이 지역에서 뿌리를 내리지 못함으로써 지역경제를 이끌어갈 새로운 성장엔진 산업군을 제대로 육성하지 못한 데 기인하고 있다.
2) 산업구조의 변모 1990년대 부산지역 산업구조의 변화추이를 보면, 1990년 GRDP기준으로 농림어업 2.7%, 광공업 30.3%, 서비스업 67.0%였으나, 2000년에는 농림어업 2.2%로, 제조업 18.3%, 서비스업 79.5%로 변화하였다. 이러한 산업구조 변화에서 두드러진 특징은 서비스업의 높은 비중이다. 서비스업의 구성내역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2000년 GRDP 기준으로 도ㆍ소매업이 4조 9,612억원으로 가장 높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다음으로 부동산임대사업서비스업(4조 507억원), 운수․창고업(3조 2,655억원), 금융ㆍ보험업(2조 1,440억원), 건설업(2조 3,681억원), 오락․문화․개인서비스업(2조 357억원), 전기가스수도사업(1조 1,824억원), 통신업(1조 465억원) 등의 순으로 나타나고 있다. 한편, 부산지역 제조업의 경우 5인이상 사업체를 기준으로 부가가치측면에서 살펴보면 1990년 5조 4,260억원에서 2000년 8조 2,570억원으로 1.52배 증가했으나, 전국평균인 3.1배보다 낮은 증가율을 보이고 있다. 전국 대비 비중 역시 1990년 7.7%에서 2000년 3.8% 수준으로 떨어졌다. 제조업의 종업원수는 1990년 36만 8천명이었으나 2000년에는 18만 5천명으로 감소했으며, 전국대비 비중은 1990년 12.2%에서 2000년 6.9%로 감소했다.
<표> GRDP 산업구조 추이 (단위 : %)
자료 : 지역내총생산. 각년도.
2000년 제조업의 업종 구성을 생산액 기준으로 보면 철강․1차금속(13.8%), 기계․장비 (12.5%), 섬유․의류(12.4%), 조립금속(8.3%), 음식료(8.0%), 자동차(7.2%), 조선(6.7%) 순으로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부산시의 전통적인 주력산업인 신발산업과 섬유․의류산업은 그 비중이 과거에 비해 크게 줄어들었으나 여전히 상당한 비중을 점유하고 있다. 부산 전체 제조업에서 섬유․의류산업은 업체수의 16.5%, 종사자수의 22.4%, 생산액의 12.4%, 부가가치의 13.9%를 차지하고 있고, 신발산업은 사업체수의 11.2%, 종사자수의 11.9%, 생산액의 6.9%, 부가가치의 6.6%를 차지하고 있다. 부산시의 새로운 주력산업의 하나로 부상하고 있는 자동차산업은 사업체수의 3.0%, 종사자수의 5.1%, 생산액과 부가가치에 있어서 각각 7.2%, 7.8%를 차지하고 있으며, 조선산업은 사업체수와 종사자수에 있어서는 각각 1.4%, 4.3%에 불과하지만 생산액과 부가가치 측면에서는 각각 6.7%, 6.6%를 점하고 있다. 한편 금융부문의 경우 1997년 외환위기로 급격한 변화를 겪었다. 외환 이후 대외 신인도 회복 및 금융시장의 불안감 해소를 위해 부실 금융기관의 정리 및 합병, 그리고 공적자금의 지원 등을 통한 금융기관 전반에 대한 구조조정이 지속되었다. 이에 따라 지역에서 주요 금융기능을 담당해 왔던 동남은행, 종합금융회사, 상호신용금고 및 신용협동조합이 대거 퇴출되어 대폭적인 금융산업의 변화를 맞이하였다.
<표> 부산지역 금융기관의 여수신 증감액 및 예대율 추이 (단위 : 억원, %)
주 : 기간말 잔액기준
부산지역의 GRDP 대비 수신액 비중은 90년말 9.8%에서 2000년말에는 10.9%로 상승한 반면, 여신액 비중은 같은 기간 중 7.0%에서 5.7%로 하락하여 지역내 금융기관의 수신기능은 정상적으로 작동되고 있으나 여신기능이 취약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이는 예대율에서도 잘 알 수 있는데 지난 90년 74.4%에 이르던 지역 금융기관의 예대율(여신잔액/수신잔액)이 계속 하락하여 99년에는 52.2%까지 낮아지는 등 금융기관의 여신기능이 부진한 모습을 보여 주었다.
1) 침체원인
1980년대 중반이후 부산경제는 지속적으로 침체해 왔는데 침체원인중 주요한 것을 들면 다음과 같다. 우선, 정부의 성장억제정책을 들 수 있다. 정부는 1960, 1970년대 경제개발과정에서 서울과 부산 등 대도시에 인구와 경제력이 집중되자 대도시 성장억제책으로 신규입지하는 기업을 대상으로 지방세 5배 중과시책을 추진하였다. 이 정책은 기업경영상 양질의 노동력 확보와 대도시내 입지가 불가피한 도시형 업종이 중과세 대상으로 묶여 경영활동을 저해받았으며, 도심내 산재한 중소기업의 생산시설 개․보수 및 시설확대를 위한 설비투자에 애로로 작용하였다. 이 결과 부산은 산업용지 부족에다 지방세마저 중과됨으로써 생산시설의 신․증설이 필요한 대다수 업체들이 시외로 이전하게 되어 지역경제력이 급속하게 위축되었다. 이 외에도 부산은 산업의 입지도와 인구증가율이 현저히 높아 공업배치법에 근거하여 공장의 신설 또는 증설을 제한하는 제한정비지역으로 지정되었다. 또 정부는 1982년부터 시작된 제2차 국토계획에서 서울, 부산을 성장억제 및 관리도시로 지정하여 각종 규제책을 실시하였다. 부산은 1996년에 와서야 성장억제지역에서 제외되었으며, 1990년대 후반에 비로소 부산경제를 제약하고 있었던 제도적인 장애들이 제거되었다. 이러한 일련의 조치들은 부산에 신규투자를 억제하는 정책으로써 부산의 성장을 제도적으로 억제한 결과를 초래하였다. 둘째, 자원의 수도권 집중에 따른 지방경제 침체를 들 수 있다. 경제개발 초기인 1960년대에 20.8%에 불과하던 수도권의 인구는 1990년 42.7%로 급증하였으며, 2000년에는 46.3%를 차지하였다. 2000년 현재 수도권의 면적은 전 국토의 11%에 불과하나 제조업체의 55%, 중앙정부기관 69.5%, 정부투자기관 83.3%, 100대 기업 본사 95%, 정보통신업체 88.9%, 벤처기업 69.6%가 소재하고 있으며, 지역총생산의 46.1%, 금융산업 부가가치의 67.1%가 수도권에서 발생하고 있으며, 예금은행 예금의 67.9%가 수도권에서 이루어지고 있다. 특히, IMF 경제위기 이후 지방경제는 더욱 침체하였으며 수도권의 집중은 오히려 심화되고 공간적으로 확대된 것으로 나타났다. 부산은 동남경제권의 중심도시로서 신규 공업지역인 울산, 창원 등 동남공업벨트의 중추관리기능을 담당해야 하나 모든 중추관리기능이 수도권에 집중됨에 따라 수도권 대 지방이라는 단순 대응 구조 속에서 부산은 변방도시로서 전략하게 되었다. 셋째, 산업용지, 사회간접자본 등 생산기반시설 부족을 들 수 있다. 부산은 산지와 녹지가 도시면적의 대부분을 차지하여 가용토지가 매우 협소한 실정이다. 산지와 녹지가 1972년에는 시역의 61.8%를 차지하였으며, 2000년 현재 1970년대 비하여 도시면적은 2배 이상 증대되었으나 산지와 녹지의 비중은 오히려 증가하여 70%가 넘는 수준을 보이고 있다. 또한 중화학공업화정책이 추진되면서 울산, 창원 등에는 대규모 공업단지가 조성되었지만 부산에는 1980년대 중반에 와서야 법정공단이 완공되었다. 부산에서는 1984년에 처음으로 신평․장림산업단지가 완공되었지만 그 규모는 27만여평에 불과하여 부산기업들의 산업용지를 공급하기에는 매우 부족하였다. 가용토지가 협소하고 거대도시로 변해감에 따라 토지가격이 상승하여 기업들의 신규투자가 이루어지지 않게 되었고 기존 기업들도 양산, 김해 등지로 이전하게 되었다. 지난 1978년 재벌기업인 금성사가 역외로 이전한 이래 시외로 이전한 업체수는 1,758개체, 종업원수는 7만8천여명에 달하고 있다. 전체 이전업체의 업종별 비중에서는 기계 및 조립금속업과 화학고무 제조업이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했다. 특히, 기계 및 조립금속업의 경우는 1989년에 42개체가 이전한 이후 1994년 59개체, 1998년 87개체 등으로 급속히 확대되는 현상을 보였다. 지역기업의 이전의 주 대상지역은 양산과 김해였다. 김해와 양산지역이 지역기업의 주 이전 대상지역으로 부각되었던 것은 이들 지역의 지가가 상대적으로 저렴해 공장부지의 확보가 용이한데다 이들 지역의 위치 또한 물품납품 등에 들어가는 물류비를 최소화 할 수 있는 곳이었기 때문이다. 넷째, 산업구조조정의 실기를 들 수 있다. 경제개발 초기에 부산은 우리나라 공업화를 선도하는 경제성장의 주역 도시로서 그 역할을 다해왔다. 합판, 섬유, 의복, 신발산업 등 노동집약적 경공업 제품의 생산과 수출이 거의 대부분 부산을 중심으로 이루어져 생산과 수출의 거점도시였다. 그러나 1973년부터 중화학 공업화 정책이 추진되기 시작하면서 우리나라 경제는 중화학공업 중심의 공업구조로 전환되기 시작하였으며, 수출상품의 구조에서도 중화학공업제품의 비중이 경공업제품의 비중을 상회하면서 수출을 주도하기 시작하였다. 반면, 부산은 새로운 산업의 흐름과 신규 공업 투자가 거의 이루어지지 않았으며, 성장거점지역이 대도시에서 중화학공업지역으로 이전하게 되었다. 거점성장방식으로 경남․북에 새로운 투자가 집중되었으며, 울산, 창원, 거제 등 동남공업벨트를 중심으로 석유, 화학, 기계공업, 조선 등의 중화학공업이 발전하게 되어 상대적으로 부산의 중요성은 위축되기 시작하였다. 경공업 중심의 산업구조는 80년 동명목재의 부도를 기점으로 부산의 3대 산업중 하나에 속하던 합판산업이 사양화되고 85년 국제그룹이 해체됨에 따라 성장에 한계를 보이기 시작하였다. 1990년대 들어 부산의 주종산업인 신발, 섬유류 제품의 국제경쟁력이 약화되어 대규모 신발업체들과 섬유류 업체들이 도산하고 새로운 성장산업을 육성하지 못함에 따라 주종산업을 상실한 부산경제는 급격한 침체 상태에 빠지게 되었다. 부산경제의 침체는 변화하는 경제흐름에 적응하지 못하여 성장유망 산업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조정하지 못한 점과 내부적으로 산업용지의 부족과 높은 토지가격으로 인해 산업구조를 고도화 할 수 있는 신규 투자가 이루어지지 않았다는데 그 원인이 있다. 그리고 정부의 성장억제정책이라는 제도적인 장애가 신규 투자를 억제하고 성장산업을 육성할 수 없도록 하였던 것이다. 더욱 중요한 것은 부산이 거대도시로서 제조업에 경제기반을 두기에는 한계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을 감안할 때 부산은 제조업의 중추기능 즉 연구, 기술집약적 산업과 기능을 육성했어야 하며, 금융, 정보, 행정, 회계, 법률서비스 등 공업력이 집중된 동남공업벨트의 중추관리기능을 가져야 했으나 수도권 일극 집중의 영향으로 중추관리기능을 확충하지 못했다는 점이 경제침체의 중요한 요인이 되고 있다.
2) 대응책
1980년대 중반이후 부산경제의 지속적 침체현상을 극복하기 위해 산업용지의 확보, 중추관리기능의 확충 등 여러 대응책이 시행되었다. 특히 1995년부터 본격적으로 실시된 지방자치제의 실시와 1997년 IMF외환위기 이후 지역차원의 지역경제발전에 대한 심각한 반성과 함께 부산경제를 활성화하기 위한 다양한 프로그램과 정책들이 주체적으로 추진되기 시작하였다. 먼저, 산업입지 여건과 관련하여 산업용지 확보가 부산경제의 주요 과제가 되었다. 1984년에 신평․장림산업단지(27만평)가 완공되고, 1989년에는 정관농공단지(8만평), 1992년에는 신평․장림협업화사업단지(59만평)가 조성되었지만 부산의 공업력을 회복시키는데는 크게 부족하였다. 이에 따라 1970년대 말부터 추진된 녹산산업단지는 부산의 용지부족을 해소할 수 있는 대규모 공단이 될 것으로 기대를 모았다. 당시 계획된 녹산산단의 면적은 350만평이었다. 녹산산단의 조성은 국내 최초 해상매립을 통한 공업단지 조성사업으로 환경영향평가, 어업권 보상, 연약지반 처리 등 많은 문제점이 나타나 산단이 지정된 후 10년이 지나서야 완공을 보게 되었다. 녹산산단은 1994년부터 분양을 개시하였으며, 1999년 6월 1단계가 준공되어 입주가 시작되었으며 2000년 3월 2단계가 완공되었다. 그리고 1993년부터 신호지방산업단지가 개발되기 시작하여 르노삼성자동차가 입주하였다. 부산과학산업단지, 정관산업단지, 감천항 중소조선단지 등의 개발계획이 수립되어 있어 2005년까지는 총 600만평의 전용공업단지가 조성될 예정으로 있다. 둘째, 산업구조 고도화를 위한 적극적 대응이다. 1994년에 결정된 삼성자동차의 유치는 경공업중심의 공업구조로 침체국면에 빠진 부산경제를 활성화시키기 어렵다는 부산경제의 현실과 삼성의 자동차산업 진출에 대한 노력이 결합되어 성사된 것이다. 부산경제의 측면에서는 자동차산업이 부산에 입지함으로써 성장산업을 유치한다는 측면과 대기업의 부산입지, 그리고 자동차산업의 파급효과 등을 고려할 때 공업구조의 고도화를 통한 경제활성화에 크게 기여할 것으로 판단되었다. 삼성자동차는 1994년 12월 7일 상공자원부가 기술도입신고서를 수리함으로써 부산입지가 확정되었다. 1995년 자동차공장이 신호산단에서 착공되었으며, 1998년 3월부터 자동차를 생산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IMF 경제위기와 함께 자동차산업의 과잉․중복투자와 그에 따른 자원배분의 비효율성, 과당경쟁의 해소 및 규모의 경제실현 등의 이유로 1998년 12월 대기업의 대규모 사업교환 사태에 빠짐으로써 생산이 중단되었고 2000년 9월 프랑스의 르노사가 삼성자동차를 인수함으로써 르노삼성차가 공식적으로 출범하여 정상 가동되기 시작하였다. 한편 부산광역시는 1980년대말에 인구 400만에 달하는 대도시로서 기존의 제조업 중심의 성장전략으로는 한계가 있다고 판단하였다. 이에따라 부산이 가지고 있는 천혜의 항만기능을 활성화시켜 물류산업 등 항만관련산업을 육성하고 국제교역의 중심도시로 성장하여 도시발전을 도모하고자 신항만의 개발사업이 시작되었다. 1994년 12월 건설교통부는「부산․경남 광역권 개발계획」을 고시하면서 부산 신항만개발계획(53선석 6,900만톤)을 발표하였다. 이어서 1996년에는 가덕도 신항 민자유치사업 기본계획이 고시되어 1997년 6월에 부산신항만(주)이 민간부문 사업시행자로 지정되었고 11월에는 정부공사가 착공되었다. 신항만은 2011년까지 항만부지 266만평 25개 선석에 연간 460TEU의 컨테이너를 처리하고 294만평의 배후도시를 조성하도록 기본 계획이 되어있다. 1980년대 말부터 부산항의 물동량이 크게 늘어났는데 비해 항만시설의 부족으로 인해 체선현상이 심해졌고 도심교통의 체증, 항만생산성 및 서비스의 낙후, 항만개발의 한계 등 여러 가지 문제를 발생시켰다. 또한 부산항이 국제적인 모항으로서 계속적인 역할을 하기 위해서는 항만시설의 확충 등을 통해 싱가폴, 홍콩, 고베 등 국제적인 항만과의 경쟁에서 우위를 선점할 필요성이 제기되었다. 셋째, 중추관리기능의 확보문제이다. 1980년대부터 지역기업의 원활한 자금지원과 금융관련 중추관리기능 확보를 위해 금융기관의 유치 및 설립사업이 추진되었다. 그 결과 1980년대 후반부터 추진된 금융 개방화, 자율화의 추진과 맞물려 1987년에는 부산지역에 본사를 둔 부산생명보험회사가 설립되었고, 1989년에는 동남은행, 제일투자신탁회사, 그리고 기술신용보증기금이 부산에 설립되었다.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 이후 지역금융기관의 퇴출 및 합병 등을 통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지역금융이 침체되는 가운데, 상대적으로 대외신인도가 높은 대형 시중은행으로 자금이 집중됨에 따라 지역자금의 역외유출현상이 가속화되었다. 특히 동남은행의 퇴출 등으로 금융기관이 설립된 이후에도 지역조성자금의 역외유출이 심화되는 등 몇 개의 금융기관 설립이 중추관리기능 확보에 크게 도움이 되지 못한다는 평가를 받았다. 한편 정부는 신경제 5개년 계획중 금융개혁의 일환으로 주가지수선물시장과 금리 및 통화선물시장의 개설을 추진하여 1995년 선물거래법을 제정하였다. 1990년대 초반부터 부산에서는 선물거래소의 유치가 금융중추관리기능을 확보하고 서울과 대칭되는 금융중심도시로 성장하는 중요한 기능을 할 것이라는 판단으로 선물거래소 유치를 위한 노력을 지속하였다. 그 결과 1998년 9월 한국선물거래소의 부산유치가 확정되었으며, 1999년 2월 한국선물거래소는 10개의 회원사로 구성되어 공식 출범하였다. 3개월의 모의선물시장을 운영한 후 4월 23일 선물시장을 정식 개장하였다. 그러나 선물의 절대비중을 차지하고 있는 주가지수선물의 이전을 둘러싸고 계속 갈등을 일으키면서 증권거래소와 선물거래소의 통합문제로 논의가 이어져 오고 있다. 넷째, 전략산업 및 첨단산업의 육성대책이다. 1995년 지방자치단체장의 선거가 실시됨으로써 지방자치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이 당시 부산경제는 신발, 섬유 등 전통적인 지역특화산업의 구조조정에 적절하게 대응하지 못함으로써 극심한 경제침체를 겪어 왔다. 이에 따라 부산광역시는 본격적인 부산산업구조의 개편작업에 들어갔는데 그 시작이 바로 「부산전략산업」프로젝트이다. 전략산업 프로젝트는 한정된 부산지역의 경제역량을 부산지역의 핵심산업에 집중 투자함으로써 산업구조를 고도화하고 지역경제를 활성화하자는 데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1999년 4월「부산산업구조개편을 위한 부산산업실태분석 및 실행시책 연구」를 기초로 하여 성장유망산업(항만물류, 관광, 금융, 소프트웨어, 영화), 구조고도화산업(자동차․부품, 조선․기자재, 신발, 섬유․패션, 수산가공) 등 10대 전략산업이 선정되었다. 또한 이를 제도적으로 뒷받침하기 위해 1999년 5월 전략산업육성에관한조례를 전국 최초로 제정하였다. 이후 전략산업별로 산업별 위원회 구성, 전문가 및 기업가의 의견 수렴 등을 거쳐 전략산업별 세부 실행계획이 수립되었으며 2000년 11월 107개 단위사업이 확정되어 추진되고 있다. 다섯째, 외자유치를 위한 적극적 대응이다. 1997년의 IMF 사태이후 1998년 11월부터 중앙정부의 외국인 투자시장 개방정책에 맞추어 지역 경제의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하고자 외국인 투자유치에 집중적으로 매달렸다. 부산시는 당면한 경제위기의 극복을 위해 안정적인 투자재원 조달과 기업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로 실업자를 해소시키는 등 일석다조의 효과가 있는 외국인투자를 유치하기 위해 역량을 집중하였고, 아울러 국내의 민간투자 유치에도 많은 노력을 기울였다. 부산광역시는 1998년초 해외자본유치기획단을 만들어 외자유치작업을 시작하였으며, 1998년 말 조직개편을 통하여 투자유치 전담부서를 설치하였다. 투자유치 민간전문가로 정무부시장을 영입하는 등 외부전문가 4명을 확보하여 외국인투자를 체계적으로 추진하게 되었다. 1999년도 이후에는 외국인투자촉진조례를 제정하여 부산에 투자하는 외국인 기업에 대하여 용지매입비 및 컨설팅비용 지원 등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하고, 외국인학교 건립지원 등 교육환경 개선 지원 등으로 외국인 투자환경을 개선하였으며, 체계적인 마케팅 활동 등 보다 본격적이고 활발한 투자유치 활동을 전개하였다. 마지막으로 부산시는 도시발전과 지역경제를 획기적으로 변화시킬 3대 밀레니엄 프로젝트를 본격적으로 추진해 오고 있다. 부산의 장기발전계획을 3대권역으로 나누어 서부산은 첨단산업과 물류산업의 중심지로, 중부산은 무역과 금융의 중심지로, 그리고 동부산은 관광의 중심지로 발전시킬 계획을 수립하였다. 특히 3대 밀레니엄사업 중 하나인 센텀시티 사업은 1999.11.2일에 착공되어 본격적인 궤도에 올랐고, 2010년까지 단계별로 추진될 계획에 있다. 1단계(2000~2004년), 2단계(2004~2007년), 3단계(2007~2010년)로 나뉘어 추진될 이 프로젝트는 도시를 최첨단 도시로 만드는 것이 주요 목적이다. 동부산관광단지 프로젝트는 기장지역에 국제적 4계절 해양복합관광단지를 개발(2010년까지)하는 사업으로 최종용역보고회(2000.12.20)를 통해 기장군내 3개 지구에 231만평의 관광단지 예정지구를 선정하였다. 우선 일광, 기장, 송정 등 3개 지구내에 골프코스를 조성키로 하고, 특히 송정지구에는 테마파크(16~19만평)와 워터파크(5~7만평) 등의 가족위락시설을 도입된다. 그리고 서부산유통단지 사업은 부산신항~김해국제공항간을 벨트화해 국제물류유통단지를 조성하는 사업으로 강서구 일원 27만평 규모의 물류유통단지 및 화물터미널, 집배송센터 등의 시설을 건설하여 부산이 동북아 물류의 거점이 되는데에 기여하고자 하는 것이다.
4. 향후 전망과 과제
2000년대 이후 세계경제는 지역간 통합 및 연계가 강화되어 하나의 시장으로 되어 가고 있으며, 국경을 넘는 인적‧물적 교류가 확대되는가 하면 블록형성에 의한 경제 및 무역교류를 더욱 활성화시키기 위한 국제적 노력이 꾸준히 진행되고 있다. 특히 세계경제는 지식기반산업 중심으로 구조조정이 급속히 진행되면서 지역의 혁신잠재력을 높이기 위해 물리적 하부구조 뿐만 아니라 기업, 대학, 연구소 등 지역혁신주체 사이의 협력네트워크, 기술개발과 혁신을 촉진하는 사회 문화적 제도․조직․규범 등이 중요하다는 인식이 확산되고 있다. 지역혁신체제는 지역의 연구개발체제, 과학기술의 훈련체제, 생산구조, 기업구조, 금융구조 등과 이들의 상호작용 및 학습작용, 그리고 정책산물로 구성된다. 이러한 관점에서 지방자치단체는 이들 혁신주체의 상호작용을 촉진하고 협력의 조성자 및 조정자 그리고 기술혁신의 주체 및 관련 교육훈련, 금융 등을 포함하는 활동을 유도하고 촉진하는 역할을 수행할 것이 요구되고 있다. 특히, 글로벌 경제체제에서 지역단위의 경쟁력을 확보하여 지역이 내생적 경제발전구조를 정착시키기 위해서 동남광역권의 긴밀한 경제협력 구축이 중요한 과제로 등장하고 있다. 동남권의 경우 기존 주력산업이 입지공급형 집적 중심으로 되어 있어 기업․대학․연구소를 연결하는 혁신지원형 집적이 미흡하다. 혁신주체의 지역내 네트워크가 미흡하여 지식공유시스템으로서 기술혁신센터(TIC)․지역협력연구센터(RRC) 등도 시장수요와 연계되어 원활히 운영되지 못하고 있다. 또한 광역경제 혁신매개체의 부재로 산업 연계 미흡 및 혁신 잠재력이 쇠퇴되고 있다. 광역혁신센터의 부재로 중복투자 및 연구개발기능의 연계부족과 광역적 차원의 규모의 경제, 범위의 경제확보가 불가능한 상태이다. 이상의 여러 가지 문제를 고려할 때 향후 지역경제의 침체를 극복하기 위해서는 근본적 시각전환이 필요하다. 먼저 지역경제 침체가 부산만 겪는 것이 아니라는 문제의식이다. 비수도권지역이 지역에서 할 수 있는 모든 자원을 동원했음에도 불구하고 유사한 침체 패턴이 지속화되었다는 점에서 이는 근본적인 원인의 하나가 수도권 집중에 있다는 점이다. 따라서 수도권의 비수도권에 대한 구축의 고리를 끊는 분권이 중요한 문제로 등장하고 있다. 둘째, 지식기반중심의 경제패러다임변화와 연계된 지역혁신시스템 및 클러스터 구축이다. 혁신은 분권과 동전의 양면이다. 여러 선진지역에서 보여주듯이 분권이 이루어 진 경우에도 지역경제는 불균등하게 발전하고 있다. 분권은 단지 출발에 불과하며 보다 중요한 것은 지역혁신주체의 네트워크와 상호학습을 통한 지역의 잠재적 자원의 활용도를 극대화하는 지역혁신시스템과 혁신클러스터 구축이다. 마지막으로 광역경제권의 문제이다. 각 지역의 경제활동은 이미 행정구역을 넘어 유기적 연계가 지속적으로 심화되고 구조화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행정구역을 경계로 하는 각종 정책과 예산투입은 많은 비효율을 낳고 있다. 광역경제권은 단순한 경제활동의 범위확장을 넘어서는 문제이다. 광역경제권은 분권과 혁신을 효율적으로 달성하고 이를 기반으로 지역의 내생적 발전을 위한 자족적 경제규모를 확보한다는 측면에서 더욱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지역경제가 침체의 늪에서 벗어나 근본적인 발전을 이루기 위해 경제범위를 광역경제권으로 하여 지역경제의 내생적 발전구조를 구축하는 것이 장기적 성장의 기반을 마련할 수 있는 길이 될 것이다. 향후 광역경제권은 국제지역간 광역경제권으로 진전되어야 하며 나아가 글로벌 소싱의 거점화가 이루어 져야 한다. 지역간의 국제경제협력체 역시 경쟁적 차원이 아니라 보완적 차원에서 광역적으로 구축되어야 역내분업의 효과를 제고할 수 있다. 또한 향후 광역교통망 구축, 광역적 국제업무단지 개발, 물류체계 구축, 비교우위분야 중추관리기능 확보 등을 통한 동남권 정주체계 안정화, 생산자서비스공급체계 구축, 연구인력 공급 및 연구기능제공 등을 강화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근본적 시각전환과 함께 이상의 과제들이 순조롭게 진행된다면 부산은 대외적으로 해양과 대륙을 잇는 관문인 지리적 이점을 최대한 활용하여 21세기에 가장 역동적으로 경제성장을 지속할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비즈니스 중심지로, 대내적으로는 경제적 거점기능을 강화하여 서울을 중심으로 한 수도권에 대응하는 동남경제권의 경제거점도시로 거듭날 수 있을 것이다. 아시아․태평양지역은 21세기에 가장 역동적으로 경제성장을 지속하는 세계의 성장센터가 될 것이며, 이에 따라 해양과 대륙을 잇는 관문으로서 부산의 역할은 점차 확대되어 갈 것이다. 또한 동아시아의 고도성장과 함께 점차 가시화되고 있는 환동해경제권, 환황해경제권, 한‧일해협경제권 등 동아시아의 역내 지역경제권이 정착됨에 따라 부산은 이러한 경제권의 중심기능을 맡아야 한다. 또한, 부산은 서울에 대응하는 동남경제권의 중추관리기능 도시로서 경제적 중추관리기능, 유통의 거점기능, 첨단기술의 개발 및 지원기능의 제고는 동남경제권에 대한 경제적 거점기능을 수행하여야 한다. 21세기 부산은 동남경제권에 대한 경제적 중추관리기능 도시로서의 위상을 정립하여 동남경제권의 경제발전 및 권역내의 지역간 균형발전에 핵심적 역할을 수행하고, 이를 통해 국가경제의 발전 및 지역간 균형발전에도 기여해야 할 것이다.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