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열차는 ‘행복행 열차’입니다, 열차가 곧 출발합니다
부산도시철도 1·2호선이 시원한 여름 도시로 데려간다
- 내용
아스팔트는 열을 머금고 있고, 체감온도는 급격히 올라간다. 숨이 턱 막힐 지경이다. 그늘을 찾아 들어가 봐도 후끈한 바람만 부니 그냥 덥다. 이런 날 부산 여행의 정답은 하나다. 지하로 내려간다.
도시철도역 계단을 내려가는 순간, 서늘한 공기가 먼저 발을 감싼다. 개찰구를 통과하고 승강장으로 내려서면 저 멀리 터널 입구에서 바람이 밀려온다. 열차가 오고 있다.

△온천천 위를 지나는 도시철도 1호선 차량. 사진 제공·부산도시철도부산도시철도 탄생 비화
부산에 지하철(도시철도)이 첫 운행을 시작한 건 1985년 7월 19일. 범어사역에서 범내골역까지 첫 구간이 개통됐다. 1974년 서울에 지하철이 생긴 후 비수도권 도시로는 최초의 도시철도였다.
부산에는 일제강점기부터 열차가 중요한 ‘탈 것’이었다. 1909년부터 부산진∼온천장까지 궤도 기관차가, 1905년엔 부산 전차(노면전차)가 운행했다. 동래온천은 일본인들이 ‘인생온천’으로 애호할 만큼 ‘핫플’이었기 때문이었다. ‘조선왕조실록’에 보면, 일본 대마도 영주가 "동래온천은 바라보기만 하여도 병이 벌써 낫는 듯하다"면서 "동래온천에서 목욕을 허가해 달라"고 조선 조정에 간청했다는 기록이 있다. 광복 후 일제가 남기고 간 차량의 노후화, 도로교통의 발달로 1968년에 부산에서 전차가 사라졌다.
그런데 문제가 발생했다. 산업화 물결로 부산은 급격히 팽창하고 있었다. 1970년 약 184만명이던 부산 인구가 1977년엔 약 280만명으로 증가했다〈부산시 통계연보(1970∼1977)〉. 7년 만에 약 100만명이 증가할 정도로 도시 규모가 급팽창했다. 게다가 산과 바다에 둘러싸인 도시 구조 탓에 도로 확장에 구조적인 한계가 있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밀려들었고, 대중교통이라곤 버스뿐이었다. 버스는 늘 꽉 찼다. 아침 등교 시간엔 승객들로 터져나갈 것 같은 ‘콩나물시루 버스’가 정류장에 서지도 않고 그냥 지나가는 경우가 허다했다.
"우리도 지하철을 뚫어야 한다"는 목소리가 여기저기서 터져 나왔다. 부산의 지형 특성상 도로 확장이 낫다, 예산이 너무 든다 등등 반대가 거셌다. 그렇지만 부산시 교통 담당 공무원들은 포기를 몰랐다. 부산시장을 설득한 끝에 1977년 지하철 건설이 확정됐고, 1980년 10월 기공식을 시작으로 1985년 7월 19일 범어사∼범내골역 첫 구간이 개통됐다. 2017년 4월 20일 노포역∼다대포해수욕장역까지 1호선 전 구간이 완공된다.

△도시철도 1호선 개통식 모습. 사진 제공·부산도시철도도시철도 1호선 노선도는
부산 근현대사 지도와 닮았다
1호선은 노포역에서 다대포해수욕장역까지 총 40개 역, 39.9㎞. 하루 40만명 이상이 이용한다. 김영남 부산교통공사 홍보실장이 전하는 에피소드 하나.
"1호선 전동차 대부분은 창원에서 만들었어요. 그중 전동차 2대를 다대포에서 제작했는데 노포 차량기지로 옮기는 데에서 문제가 발생했어요. 다대포에서 직접 연결되는 철길이 없었거든요. 그래서 선택한 방법이 바다를 이용하는 거였어요. 완성한 전동차를 바지선에 실어 해상으로 이동했습니다. 선착장에 내려진 전동차는 기존 철도 선로를 따라 동래 방면으로 이동한 뒤 노포차량기지로 최종 입고됐죠."
1호선의 가장 큰 특징은 부산의 역사 축을 따라 달린다는 점이다. 조선시대 동래부, 일제강점기 이후 인구가 밀집한 초량과 원도심, 근현대 상업의 중심인 서면, 1987년 6월 항쟁 때는 직선제 개헌과 민주 정부 수립을 외치던 학생과 부산시민들이 시내를 신속하게 옮겨 다닐 수 있도록 ‘기동력'을 제공하는 데 일조했다. 1호선 노선도를 펼치면 그대로 부산 근현대사 지도가 된다.

△중구 광복지하쇼핑센터의 쉼터.중앙역·남포역·자갈치역-원도심의 세 얼굴
중앙역에서 자갈치역까지는 지하상가가 연결되어 있어서 지상으로 나가지 않고 걸어서 이동 가능하다. 부산 최초의 남포지하상가를 비롯해 3가지 색깔의 지하상가를 구경하는 것만으로도 ‘시간순삭' 코스다.

△중앙역 부산근현대역사관.중앙역 5번 출구로 나가면 부산근현대역사관이다. 일제강점기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이었던 이 건물은 현재 부산 근대사 상설 전시관으로 운영된다. 건물 자체가 유물이다. 무료입장에 에어컨까지. 더위를 피해 역사 공부를 하기에 이보다 좋은 조건이 없다.
남포역 7번 출구와 자갈치역 1번 출구로 나서면 BIFF 광장의 길거리 음식과 부산 먹방의 성지 국제시장·부평깡통시장, 자갈치시장이 기다린다. 여름엔 역시 영양 보충이 중요하지!

△온천천 허심청.온천장역- 특별한 여름 온천 체험
"여름에 무슨 온천이야?" 싶겠지만 ‘목욕 덕후들'의 부산 여행에서 빼놓을 수 없는 문화 체험 중 하나가 바로 온천이다. 여름철 최고의 힐링 비법으로 뜨거운 온천 목욕을 권한다. 뜨거운 탕에 들어갔다가 냉탕에 들어가는 그 순간, 한여름 어디서도 느낄 수 없는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 시원한 기운이 몸 전체를 관통한다. 온천장역. 이름이 곧 목적이다. 신라 무열왕도 즐겼다는 기록이 있을 만큼 동래 온천의 역사는 깊다. 뜨거운 온천욕 후에 시원한 수제 맥주 한 잔!

△부산도시철도 1호선 범어사역을 통해 만날 수 있는 여름 피서지 '용성계곡', ‘범어사 용성계곡’ 숲길.
범어사역- 시원한 나무 그늘 아래 계곡물 소리 콸콸콸
범어사역 5번 출구로 나오면 마을버스 90번이 기다린다. 이것을 타면 10분 만에 범어사 입구에 닿는다. 금정산 자락에서 내려오는 계곡 바람이 절 마당을 식혀준다. 대웅전 기둥 그늘에 앉아 그 바람을 맞으면 에어컨보다 시원하다는 말이 과장이 아니다. 범어사 계곡물에 발을 담그면 시원한 나무 그들이 온갖 번뇌와 근심을 가려준다.
범어사에서 범어사역까지는 걸어서 내려가는 것이 좋다. 울창한 나무들이 햇빛을 가려준다. 길 자체가 그늘이다. 도중에 성보박물관에 들러 에어컨 바람 속에서 불교 문화재를 감상하거나 소설 ‘사하촌'의 문학 현장인 용성댐과 용성계곡을 구경하며 내려오는 걸 추천한다.

△소설 사하촌의 배경이 된 용성댐.
2호선, 부산의 동서를 달린다
부산 도시철도 1호선이 남북으로 달린다면 2호선은 동서로 달린다. 공사 과정이 험난했다. 차량기지 공사 지연, IMF 외환위기로 공사 중단이 겹치며 전 구간 완전 개통은 2002년 8월에야 이뤄졌다.
2호선은 장산역에서 양산역까지 총 43개 역, 45.2㎞. 부산도시철도 중 가장 긴 노선이다. 연두색 차체의 전동차가 하루 수십만 명을 실어 나른다. 2호선의 가장 큰 특징은 신도시와 함께 자랐다는 것이다. 해운대 신시가지, 화명동 신도시, 양산 물금 신도시. 이 도시들이 커지면서 2호선도 함께 커졌다. 2호선은 부산 시민들의 생활 동선 그 자체다.

△화명생태공원.화명역-낙동강 강바람을 맞으며
화명역 1번 출구를 나선다. 낙동강 방향으로 걷기 시작하면 10여 분 후 완전히 다른 세계가 나타난다. 화명생태공원이다. 공원에 들어서는 순간 바람이 다르다. 한여름 도심의 열기에 찌든 텁텁한 바람이 아니라 시원하고 담백한 강바람이 가슴까지 시원하게 한다.
해지는 저녁 무렵이 이 공원의 황금 시간이다. 낙동강 너머 서쪽 하늘이 붉게 물든다. 강물 위로 노을이 길게 깔리고, 그 빛이 수면 위에서 일렁인다.
강바람을 맞으면서 노을빛 강변 산책로를 걷는 것, 화명역에서 받을 수 있는 고귀한 선물이다.

△한 여름의 구포시장. 그늘진 천장 덕에 여름에도 시원하게 시장 구경이 가능하다.덕천역- 서쪽의 진짜 부산을 맛보다
덕천역은 2호선과 3호선이 만나는 환승역이다. 화려하지 않지만 상가와 골목이 빽빽하다. 인근 양산의 주민들도 도시철도를 이용해서 이곳을 찾기 때문에 젊은이들로 북새통을 이뤄 마치 서면을 방불케 한다.
덕천역은 구포시장의 관문. 역 출구에서 구포시장 방향으로 5∼10분이면 시장에 닿는다. 구포시장은 자갈치, 부전과 함께 부산 3대 전통시장 중 하나로 꼽힌다. 낙동강을 따라서 경남 각지에서 모인 물산이 구포나루에 내려져 거래됐던 포구다.
채소, 과일, 생선, 정육, 건어물, 반찬, 의류, 약재, 농기구와 모종·씨앗까지 없는 것이 없지만 구포시장에서 빠뜨릴 수 없는 것이 구포국수다. 예로부터 부산을 대표하는 국수로, 소금기가 있는 낙동강 바람을 맞으면서 건조한 면이 쫄깃쫄깃한 특유의 식감으로 유명하다.

△최근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문화공간 포디움다이브 내 서점 모습.금련산역-골목길에서 만나는 푸른 바다
광안리해수욕장 가는데 금련산역에서 왜 내리냐구요? 부산사람도 잘 모르는 아기자기 예쁜 골목상권이 많기 때문이다.
금련산역 1번 출구로 나가서 광안리해수욕장으로 이어지는 골목이 그렇다. 핫플이 많은 골목이다. 그 중에 독립서점 밤산책방은 24시간 운영하는 무인 서점이다. 밤 산책하듯이 차분하고 조용히 혼자만의 시간을 가지고 싶다면 들러보길.
골목 끝에 도달하면 포디움다이브 건물이 보인다. 건물과 건물 사이로 광안대교와 파란 바다가 액자처럼 보인다. 카메라 셔터가 저절로 눌러진다. 포디움다이브는 지하에 서점과 소품샵, 갤러리, 카페가 있는 신생 핫플 복합문화공간이다. 세련되고 이국적인 느낌이다.
수천 개의 조명이 밝히는 화려한 빛 옷으로 갈아입은 밤의 광안대교를 사랑하는 사람과 함께 바라보는 것, 이것이 광안역에서 내려야 하는 가장 극적인 이유다.
△광안리해수욕장에서 주말마다 펼쳐지는 ‘광안리 차 없는 문화의 거리' 모습.센텀시티역- IMF가 멈춰 세운 역, 지금은 세계적인 역
센텀시티(Centum City)는 라틴어로 100을 뜻하는 ‘센텀'과 ‘시티'의 합성어다. 100% 완벽한 첨단 도시를 의미한다. 예전에는 수영비행장이 있던 자리였고, 컨테이너 야적장으로 쓰던 곳에 센텀시티를 조성했다. IMF 외환위기로 공사가 중단되기도 했고, 2002년 역이 개통됐지만 역 밖은 썰렁한 공터였다. 이용객이 없었다.
2009년 신세계 센텀시티가 문을 열었다. 기네스북에 세계 최대 백화점으로 등록됐다. 센텀시티역 이용객이 수직으로 급등했다. 센텀시티역에서 신세계백화점과 롯데백화점 지하층으로 직통 통로가 연결된다. 영화의전당, 벡스코, 시립미술관, 영화영상, 창업 관련 주요 공공기관이 거의 다 있다. 한여름 부산 여행에서 가장 시원하게 시간을 보낼 수 있는 역이다.

△센텀시티역 내 백화점 연결 통로.해운대역-관광도시 부산 심장 뛰게 하는 곳
열차 문이 열리는 순간 느낌이 다르다. 여행 캐리어를 끌고 가는 외국인들로 역이 북적인다. 공항 대합실로 착각할 정도다. 해운대해수욕장은 외국의 주요 언론사들도 세계 3대 해수욕장이라 평가할 정도니 외국인 관광객들이 많이 방문할 수밖에.
△해운대 구남로 고운바다길 분수.
도심 한복판에 대한민국 최대 규모와 면적을 자랑하는 해운대해수욕장이 있다는 것만으로 해운대역에 내려야 하는 이유가 된다.
해운대역 입구에서 해수욕장으로 이어진 구남로와 해운대전통시장은 볼거리와 먹거리가 다양해 더위 따위는 중요하지 않다.
△도시철도 2호선 해운대역에서 갈 수 있는 엘시티 앞 분수에서 어린이들이 물놀이 하는 모습.
저녁이 되면 마린시티 고층 빌딩들에 불이 들어오고, 미포 선착장에서 유람선을 타고 바다 위에서 야경을 즐기는 것도 아주 감동적인 체험이다.
주황과 초록, 어느 역에서 내리느냐에 따라 다른 부산이 기다린다. 터널 어둠 속에서 바람이 밀려온다. 열차가 온다. 여름의 뜨거운 열기가 저 멀리 사라진다. 부산도시철도 1호선과 2호선, 주황과 초록. 이 두 색깔이 부산 지하 세계를 남북으로, 동서로 가른다.
1호선을 타면 부산의 근현대 역사가 발아래로 흐른다. 2호선을 타면 지금의 부산 모습이 그대로 열차 창밖으로 지나간다.
주황과 초록 어느 색을 선택하느냐, 그리고 어느 역에서 내리느냐에 따라서 다른 모습의 부산이 그대를 기다린다. 어느 곳에 내리든지 행복하기를!
글 원성만
- 작성자
- 조현경
- 작성일자
- 2026-08-14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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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202608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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