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제202308호 전체기사보기

교과서 속 역사 눈앞에 … 부산 과거 오늘 연결하다

피란수도 부산 그 흔적을 찾아서 ③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부산지방기상청

내용

12_2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1층에 자리한 부산서가.


한때는 부산의 중심지였다가 지금은 대표 관광지가 된 남포동. 그곳에서도 특히 중심이 되는 삼거리를 지나 대청동 방향으로 올라오다 보면 커다란 아치형 창문이 인상적인, 조금 오랜 듯한 건물이 길모퉁이에 있습니다. 지난 3월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태어난, 옛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이자, 미국대사관이자, 미문화원이자, 부산근대역사관입니다. 이름만 들어도 사연이 가득할 것 같지 않나요? 자, 이제 내 이야기를 들려드릴게요.


글·하나은/사진·권성훈


부산 중심 남포동, 질곡 역사 겪은 산 증인

12_1 

사진 왼쪽은 오늘날의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 왼쪽은 1934년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사 시절 모습(사진제공:부산출판협회)


멀끔한 겉모습을 보고 20~30년쯤 되었나 생각하실지도 모르지만, 사실 나는 1929년에 태어나 거의 100년 가까이 이 거리를 지키고 있는 토박이입니다. 오랜 세월 한자리를 지키고 있다 보니 내가 보아온 역사도 적지 않지요.


처음 내가 태어났을 때가 기억납니다. 이 거리, 아니 온 부산에서도 내놓으라 할 만한 멋진 모습을 자랑했습니다. 외벽은 화강석, 바닥은 대리석으로 사용하고 외벽 중앙에는 넝쿨 문양, 창문 주변에는 연꽃 모양의 부조를 장식해 화려하고 기품이 넘쳤습니다. 그러나 아름다운 모습과 달리 나는 별로 사랑받지 못했어요. 당시 내 이름은 동양척식주식회사 부산지점. 맞아요. 일제가 영국과 네덜란드의 동인도회사를 본떠 조선의 땅을 착취하기 위해 만든 곳이었죠. 나 때문에 많은 조선인이 강제로 땅을 잃고 소작농으로 전락했으며, 높은 소작료를 내며 눈물을 흘려야 했어요. 조선의 양곡은 이 땅의 사람들을 배 불리지 못하고 일본으로 반출됐죠. 어떤 이들은 나를 보며 이를 부득부득 갈았고, 어떤 이는 두려움에 떨었습니다.

1945년 8월 15일. 드디어 광복을 맞이하면서 내 신분도 바뀌었습니다. 이번에는 미국이 나를 관리하게 되었어요. 미군 주둔지로 잠시 평화로운 한때를 누리고 있을 무렵, 호랑이보다 무서운 전쟁이 찾아왔습니다. 다행히 이 거리에는 포탄이 떨어지지 않았지만, 대신 수많은 피란민이 보따리를 메고, 아이의 손을 잡고 피곤과 절망, 희망이 섞인 모습으로 몰려들었습니다. 그리고 그즈음 나는 다시 미국대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승격했습니다. 부산이 피란수도라는 이름으로 불리던 기간, 6·25전쟁의 극복과 재건을 위한 중대한 결정과 회의가 나와 함께 이뤄졌습니다. 나는 마치 역사라는 무대의 중앙에 선 듯 스포트라이트를 받았습니다.

휴전 후 수도는 다시 서울로 돌아갔습니다. 나는 미국에 무상 임대돼 미문화원(미국 공보원)이라는 이름으로 불리었습니다. 당시 나는 전국 최초의 복합문화공간으로 영화를 상영하거나 각종 전시를 개최해 많은 사랑을 받았습니다.

격동의 80년대가 되자 거리에서는 민주화를 위한 시위가 연이어 펼쳐졌습니다. 그 화살은 나에게도 돌아왔습니다. 1982년 부산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났고, 나의 반환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습니다. 그리고 1999년 4월 30일. 나는 마침내 한국 정부로 반환되며 다시 한번 소속이 바뀌었습니다. 같은 해 6월 10일 부산시로 이관된 뒤 2003년 7월 3일 부산근대역사관이라는 이름으로 시민과 만나게 됐답니다. 나는 커다란 옛 부산 모형을 품고 관람객들에게 개항기부터 6·25전쟁기까지 부산의 역사를 알려 왔습니다. 부산의 근현대와 오늘을 더 잘 연결하고 원도심의 역사자원을 활용하기 위해 지난 2021년 부산근현대역사관이라는 이름으로 다시 변신, 올해 3월부터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으로 여러분과 만나고 있습니다.


도서관으로 변신한 역사관

12_3
1층 입구에 자리한 책으로 쌓은 탑. 부산근현대역사관에 바라는 시민 소망이 달려있다.


부산근현대역사관 별관이 된 이후 나는 기존 역사관과 조금 달라졌어요. 원래 나의 역할이던 전시는 오는 12월부터 이웃한 옛 한국은행 부산본점 건물이 맡을 거고요, 나는 여러분이 좀 더 친숙하게 다가올 수 있도록 책을 읽고 역사를 배울 수 있는 복합문화공간으로 변신했답니다.

문을 열고 들어오면 다양한 책을 갖춘 서가와 책으로 만든 탑이 여러분을 맞이할 거예요. 책탑에는 나에게 시민들이 바라는 점이 가득 걸려 있어요.

“좋은 날을 기억하고 싶을 때면 이곳에 들리겠습니다.” “아이들에게 친숙한 공간이 되길 바라며, 지역사회의 랜드마크가 되길 기원합니다.”

12_4 

독립신문, 황성신문, 대한매일신보 등 역사교과서 속 옛 신문이 자리한 서가.


부산시민의 바람에 어깨가 무거우면서도 슬그머니 미소가 떠올라요. 나도 앞으로의 내 모습이 기대되거든요. 1층에는 부산근현대사 관련 도서를 포함한 1만 여권의 장서가 있어요. 곳곳에 숨어서 책을 읽을 수 있는 공간이 마련돼 있어서 구석을 좋아하는 아이나 조용한 쉼을 원하는 어르신 등 누구나 즐기기 좋답니다.

내가 추천하는 곳은 오른편에 자리한 2층까지 이어진 기다란 서가에요. 두껍고 어두운 표지가 마치 재미없는 백과사전 같지만, 자세히 이름을 살펴보면 놀랄걸요. 독립신문, 매일신보, 황성신문…. 역사교과서에서 단지 이름으로 존재했던 흔적들을 눈으로 확인할 수 있거든요. 한글과 한자가 섞인 모습에 머리가 어질어질하지만, 한 글자 한 글자 차분히 읽다 보면 과거와 현재가 이어진다는 것을 알 수 있답니다. ‘시일야방성대곡’ 같은 교과서 속 명문을 찾을 수 있을지도 모르겠군요. 옛 신문들 옆에는 ‘주한 미군사고문단 문서’ ‘미발간 극비사료’ 등 제목만 봐도 두근두근한 책이 가득하니 비밀탐험을 해봐도 좋겠네요.

12_5 

사진 왼쪽은 2층에서 책을 읽는 시민, 오른쪽은 1층 서가.


1층에서는 ‘부산의 책-시대의 감정, 지역의 얼굴’을 주제로 특별 전시도 열리고 있어요. 전시 기간은 오는 6월 15일까지. 1950년대 부산에서 출판됐거나, 부산을 다룬 단행본과 잡지 등 40여 권의 희귀도서를 만날 수 있으니 꼭 들러주세요.
자, 이제 2층으로 올라가 봅시다. 2층에서는 동양척식주식회사부터 지금에 이르는 나의 역사를 만날 수 있고요, 책을 읽거나 사색에 잠기기 좋은 다양한 의자와 책상이 있어요. 오후의 햇빛이 길게 들어오는 창가에 앉아 옛 부산의 이야기를 읽는다니 너무 멋지지 않아요?

남포동 거리를 걷다가 잠시 쉬고 싶을 때, 부산을 좀 더 알고 싶을 때 나의 문을 열어주세요. 지금까지 그래왔던 것처럼 나는 이 거리를 지키며 과거와 오늘과 그리고 미래를 바라보고 있을 테니까요. 


13_1

100년 관측소 … 부산기상관측소


부산근현대역사관에서 횡단보도를 건너 꼬불꼬불 언덕길을 오르면 세계기상기구 주관 ‘100년 관측소’에 선정된 부산기상관측소와 만난다.

부산기상관측소는 1904년 3월 광복동 일원에 임시로 설치됐다가, 1905년 4월 보수동으로 이전 후, 1934년 1월 이곳 복병산으로 옮겨왔다. 1939년 7월 조선총독부 기상대 부산측후소, 정부 수립 후 1948년 8월 국립중앙기상대 부산측후소, 1981년 부산지방기상대로 이름을 바꾸었다. 1992년 3월 부산지방기상청으로 승격됐다. 피란수도 당시 하루 24회 기상관측을 하며 군 작전을 지원하고, 해운업자와 어업자 등에게 기상정보를 제공했다.

지난 2002년 부산지방기상청 청사가 동래구 명륜동으로 이전한 뒤 외부는 기상관측, 건물 내부는 기상전시관으로 꾸며 활용 중이다. 외관은 금방이라도 항해를 떠날 듯한 배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근대기에 도입한 표현주의 건축 양식이 잘 보존돼 있다. 월·수·금요일은 외부만 개방하며, 화·목요일에는 내부 관람도 할 수 있다. 사전 출입 신청을 해야 한다.


부산국제건축제가 진행하는 ‘뚜벅뚜벅 부산건축투어’ 원도심 코스에 참여하면 부산기상관측소, 부산근현대역사관, 백산기념관 등 원도심에 자리한 역사적 건물을 한 번에 돌아볼 수 있다.
※부산기상관측소 관람예약: 051-718-0216


 

작성자
하나은
작성일자
2023-05-0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308호

첨부파일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