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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의무봉(天衣無縫)’의 솜씨…‘자수’ 예술 경지로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자수장’ 지정…전통 자수 맥 잇고 새로운 기법 개척
팔순 중반 나이에도 작품 활동 왕성…‘자수박물관’ 건립, 평생 지녀온 ‘꿈’

내용

‘천의무봉(天衣無縫)’의 경지다. 어디 한군데 흠잡을 곳 없는 완벽한 솜씨다. 바늘과 색실에 혼을 불어넣으며 인생 전부를 오롯이 자수와 함께해 온 최유현 자수장(刺繡匠·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를 예술의 경지로까지 끌어올린 그이는 자타공인 대한민국 최고 자수 명인이다. 부산이 자랑할 보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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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유현 자수장은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국전)에서 1984년 ‘지장탱화’로 문공부 장관상을, 1985년 문화재위원상, 

  1986년 불교대전 동상, 1987년 ‘효제충신도’로 국무총리상, 1988년 ‘만다라’로 대통령상을 받았다.

   1990년 부산시 문화상,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으로 지정돼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사진-권성훈
 

한평생 오롯이 자수와 ‘동고동락’ 

‘심선신침(心線神針)’, ‘마음의 실을 이어 하늘의 수를 놓는다’는 뜻으로 신의 경지에 도달한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刺繡匠) 최유현(崔維玹·85)의 자수 세계를 표현하는 데 안성맞춤이다. 최 자수장은 10대 때 처음 자수와 접한 이후 지금까지 70년 넘게 손에서 바늘과 실을 놓아본 적이 없다. 한평생 자수와 동고동락(同苦同樂)해 왔다.


최유현 자수장은 1936년 전남 보성에서 태어나 목포에서 자랐다. 열세 살 때부터 어머니를 보며 수를 놓았다. 6·25전쟁 당시 서울에서 목포로 피란 온 당대의 자수 대가 권수산 선생의 눈에 띄어 본격적으로 자수 세계를 접한 뒤 동양자수·서양자수·현대자수·생활자수·뜨개질·누비·조화 등 모든 과정을 두루 섭렵했다. 권수산 선생이 동아대 가정학과 학과장으로 부임하자 선생을 따라 부산으로 옮겨왔다. 이후 혜화여고·부산여상·동주여중 등에서 교사로 10여 년을 재직했다.


교사 생활이 익숙해질 무렵, 최 자수장은 자수에만 전념하기 위해 교직까지 사임했다. 그때가 1962년으로 ‘최유현 자수연구원’을 설립해 작품 활동에만 전력했다. 수를 더 잘 놓기 위한 마음은 틀에 박힌 수본이나 일본 자수에서 벗어나 우리 전통 공예예술과 회화 등에서 한국 자수의 기법을 찾고 새로운 길을 개척했다.

묵묵히 자수 외길을 걸은 열정은 대한민국 전승공예대전(국전)에서 1984년 ‘지장탱화’로 문공부 장관상을, 1985년 문화재위원상, 1986년 불교대전 동상, 1987년 ‘효제충신도’로 국무총리상, 1988년 ‘만다라’로 대통령상으로 결실을 본다. 특히 2년여 동안 온 힘을 기울여 수를 놓은 만다라 탱화는 심사위원 만장일치로 수상이 결정됐다. 1990년 부산시 문화상, 1996년 국가무형문화재 제80호 자수장으로 지정돼 최고의 자리에 올랐다.


최유현 자수장-권성훈 (3)

△최유현 자수장의 자수 작품. 사진-권성훈
 

전통자수, 삼국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

자수(刺繡)는 바늘, 실, 바탕천, 수틀 등을 이용해 옷감이나 헝겊 따위에 그림, 글자, 무늬를 수놓는 것이다. 우리 전통자수는 중국이나 일본의 자수와 뚜렷이 다르다. 그림에 예속되지 않고 독자적인 공예로서 문양의 표현과 색상, 기법 등이 독창적인 미(美)의 세계를 구축했다. 색깔이 강하지 않고, 세부 묘사에 얽매이지도 않고 필요에 따라 대담한 생략법을 구사한다. 민화처럼 추상적인 표현에도 거침없으며, 부드러운 선의 조화는 중국이나 일본 자수가 결코 따라올 수 없는 한국 자수의 품격이다.


문헌으로 남아 전하는 우리 자수의 역사는 삼국시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고구려의 동맹(東盟) 때 의복에 금수(錦繡)를 놓아 장식했으며, 신라 진덕여왕 때 비단에 수를 놓아 당나라에 보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고려와 조선시대를 거치면서 직조술과 염색술, 복식 기술의 발달에 따라 기법과 분야가 다양해졌다. 


특히 조선시대는 궁중에서 공조서(供造署)에 소속된 자수장과 수방상궁에 의해 정형화된 수본을 바탕으로 궁중 특유의 격조 높은 자수를 제작했다. 하지만 우리 고유의 전통자수는 일제강점기를 거치면서 일본 자수와 혼합되고 광복 후에는 서양자수에 밀리기 시작했다. 1960∼70년대는 서양풍 기법이 유행하면서 겨우 명맥만 유지해왔다. 전통자수를 다시 되살려낸 이가 최유현 자수장이다.


최유현자수장-부산일보

△최유현 자수장은 전국의 사찰을 돌며 탱화에서 자수의 소재를 찾았는데 이른바 ‘불화자수’다.    부산일보 자료사진


전통에서 소재 찾고 ‘불화자수’ 새 영역 개척

최유현 자수장의 작품은 정교하게 그린 그림이나 실물을 찍은 사진보다 생동감과 입체감이 더 흘러넘친다. 오랜 연륜만큼 시기별로 작품세계도 변화를 거듭했다. 20대에는 규방 전통문화에 바탕을 둔 수를 놓았으며, 30대는 자수를 생활 소품에 응용하면서 수묵화와 서양화 등을 자수로 표현했다. 40대에 들어선 1970년대 후반부터는 우리 민화와 도자기 같은 유물에 깃들어 있는 다양한 문양과 조형을 완성도 뛰어난 자수작품으로 발표했다. 해외 활동이 어려운 시기와 여건에도 외국 전시를 다섯 차례나 열어 한국 자수의 우수성을 널리 알렸다.


이후 최 자수장은 전국의 사찰을 돌며 탱화에서 자수의 소재를 찾았는데 이른바 ‘불화자수’다. 불화자수는 대부분 대작으로 한 작품을 완성하는데 짧게는 3∼4년, 길게는 10년 정성으로 완성하는 것도 있다. 최 자수장은 지금까지 100여 점이 넘는 불화를 자수로 옮겼는데 불화자수는 손기술만으로 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깊은 신앙심과 혼이 깃들어야 제대로 된 작품을 만들 수 있다.

최 자수장은 “수는 글을 짓는 것과 같아서 한 올이라도 잘못 놓으면 기맥을 그르쳐 버립니다. 촘촘하여지려면 수 놓는 실에 천만 가닥이라도 갈라지거나 빈구석이 없어야 합니다. 자수는 수많은 점이 모여 선을 이루고 선이 모여서 작품이 됩니다. 수행하는 마음이 있어야 합니다”라고 말한다.


최 자수장은 작품 제작을 위한 그림을 선택하고 수를 놓기 위해 수실을 꼬는 준비단계부터 완성된 작품을 온전하게 보관하는 마무리까지 모든 과정에 완벽함을 추구한다. 규모가 큰 작품은 자신이 직접 고안한 자수틀을 말아 중간부터 시작해 점점 풀면서 수놓는 기법을 사용한다. 전통에 대한 고집은 제작과정에서도 고스란히 드러나 다양한 실을 사용하면서 기법과 색상, 굵기를 달리한다. 따라서 많은 기법을 창작하고 자신만이 할 수 있는 색상으로 다른 자수에서는 결코 보지 못한 독창적인 창작 세계를 열었다는 평가이다.


전통자수 외면하는 현실 안타까워

우리 전통자수의 세계는 들여다볼수록 넓고 깊다. 수젓집과 복주머니 같은 생활 속 일상 용품부터 양반가의 병풍과 혼례복, 왕실의 복식에 이르기까지 우리 역사와 함께하며 계승, 발전해 왔다. 하지만 모든 것이 빠르게 돌아가고 진행 과정보다 결과만을 좇는 사회 분위기 탓에 젊은이들이 오랜 수련을 필요로 하는 전통자수를 외면하는 것이 현실이다. 최 자수장은 자수인구가 날로 줄어드는 현실이 너무도 안타깝다. 자신의 호주머니를 털어 문하생이나 이수자, 전수장학생 등을 받아들이고 길러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88년도 만다라

△최유현 자수장은 작품 제작을 위한 그림을 선택하고 수를 놓기 위해 수실을 꼬는 준비단계부터 완성된 작품을

  온전하게 보관하는 마무리까지 모든 과정에 완벽함을 추구한다(불화자수 ‘만다라’).
 

“어머니의 솜씨를 물려받아 자연스레 바늘을 잡던 전통이 사라진 지 오래입니다. 자수가 아름답고 마음을 다스리기에 좋다는 것을 알면서도 그 과정을 익히는 것이 너무 힘드니까 선뜻 배우겠다고 나서는 사람이 드뭅니다.”

최 자수장은 자수 대중화를 위해 자수문화연구소이자 지도자 교육기관인 ‘중수원(中繡院)’을 설립해 작품 활동과 함께 후학 양성, 일반 시민을 대상으로 한 자수 보급에 힘쓰고 있다. 중수원은 ‘수를 놓음에 있어 넘치지도 모자라지도 마라’는 평소 최 자수장이 강조하는 중용의 마음을 담은 이름이다.


최 자수장은 중수원 운영과 함께 자신의 작품을 사진과 해설로 정리한 도록 1천200여 권을 제작, 도서관이나 자수에 관심을 가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 있다.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이후 20여 년 가까이 해마다 ‘아름다운 우리 자수’를 주제로 전수자, 이수자들과 전시를 열고 있다. 부산대학교 복식문화연구소에는 석좌교수와 겸임교수로 10년간 출강, 후학을 길러냈다.


부산전통예술관1-부산일보

△2019년 8월 부산 수영구에 자리한 부산전통예술관에서 열린 ‘아름다운 우리 자수’ 작품 전시회.    부산일보 자료사진
 

자수 인생 담은 ‘자수사’ 연말 발간 예정 

대한민국 최고의 자수 명인이지만 최 자수장의 작품은 전시나 도록, 부산전통예술관의 전시 공간이 아니면 만나볼 기회가 많지 않다.

최 자수장은 여러 차례 공개 시연회와 전시회를 열었지만, 인간문화재로 지정된 이후에는 작품을 일절 판매하지 않는다. 작품 대부분은 문화재청의 도움을 받아 전북 전주에 있는 국립무형유산원 수장고와 작품 창고에 보관하고 있다. 작품 하나를 완성하는 데 길게는 10년 이상이 걸리는 대작이 많아 작품 수량 자체가 귀하기도 하지만 작품을 잘 보존해서 전시회를 자주 갖는 것이 자수 대중화를 위해서는 더 바람직하다는 것이 신념이다. 물론 부산시나 정부, 대학, 기업체 같은 곳에서 반듯한 전시실(자수박물관)을 내어 주고 잘 관리해 준다면 지금 당장이라도 모든 작품을 내어놓을 생각도 있다.


최 자수장은 얼마 전부터 자신의 자수 인생 모든 것을 담은 ‘최유현의 자수사’를 집필하고 있다. 올 연말 발간이 목표이다. 자수사에는 한평생 수를 놓으며 개발한 기법에서부터 전통자수의 명맥을 잇기 위해 걸어온 자수 예술세계의 모든 것을 담을 계획이다. 여든을 넘긴 나이에도 늘 새로운 자수 기법을 연구하고, 힘들게 개척한 자신의 자수 세계를 후배에게 아낌없이 내어 주는 최유현 자수장. 평생을 자수와 동고동락해 온 최 자수장의 자수를 대하는 마음은 한 땀 한 땀에 정성을 쏟은 10대 때의 초심 그대로이다.


※참고 자료

부산전통예술관 발간, 부산의 무형문화재 최유현 편

한국민족문화대백과, 자수장 설명 풀이

작성자
조민제
작성일자
2021-09-28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다이내믹부산 제202116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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