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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미동에서 구름처럼 쉬고 왔습니다!

바람도 구름도 쉬어간다는 전망대와 비석마을을 다녀와서

내용

서구 일대의 멋진 풍경을 보는것과 깜찍한 전망대의 캐릭터


부산 아미동 감천문화마을 오르다보면, 바람도 구름도 쉬어간다는 '전망대'가 있었습니다.

그곳에 올라가보니, 부산 서구 일대의 멋진 풍경을 보는것과 깜찍한 전망대의 캐릭터와 인증샷을 찍는것까지

뜻깊은 시간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묘지위에 세워졌다는 마을'비석마을'도 덤으로 구경하고 왔습니다.

서구 일대의 멋진 풍경을 보는것과 깜찍한 전망대의 비석 인증샷


비석문화마을은 일제강점기에 조성된 일본인들의 공동묘지가 있던 곳이었답니다.

묘지앞에 세워졌던, 비석을 건축 재료로 하여  그 위에 집을 지었다는것이 참으로 신기하고 독특했습니다.

마을에는 이러한 비석을 디딤돌로 집을 짓거나 계단이나 축대로 사용하여 집을 세운 흔적이 남아있습니다.

'비석마을'의 골목을 찾아다니면서, 찾아보는 '비석찾기'도 재미있었습니다.

비석마을의 비석 찾기 사진 

지금은 비석이 많이 없어져 찾기가 쉽지는 않다고 마을 주민들이 말씀하셨지만, 

마을 여러곳에 존재하는 비석을 보며 무섭기도 했지만 우리 역사의 아픔도 함께 있는 곳이라는 생각이 들자 왠지 숙연해졌습니다.

아미동 산 19번지 일대는 감천고개에서 산상교회 주변으로 이어지는 지역으로서, 일제강점기 시절에 조성된 공동묘지가 있었던 곳이었다. 1950년 6.25전쟁 발발 이후 열차로 부산에 도착한 피난민들은 부산역 일대를 중심으로 피난촌을 꾸려 나갔다. 아미동의 경우 16,17,18,19등 일대에 집중적으로 피난밈ㄴ들이 분포하기 시작했는데 일본인들의 공동묘지였던 이 지역은 피난민들의 움막으로 채워져 나가기 시작했고, 공동묘지의 비석들은 건축자재로 사용했다. 집을 지을 마땅한 재료가 없던 시절, 비석과 상석은 축대를 쌓고 계단을 만드는 건축자재로 쓰였다. 지금도 아미동 일대의 계단이나 담장에는 이때 피난민들이 사용했던 비석들이 곳곳에 박혀있는것을 확인할 수 있다. 한국 근대사의 큰 아픔을 겪고 죽음과 슬픔의 장소로 남을수도 있었지만, 지금은 강인한 생명력으로 다시 일어난 사람들의 흔적만이 남아있다. 현재 서구청의 적극적인 자원과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가 어우러져 비석이라는 부정적인 이미지를 탈피하고, 도시재생,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 등으로 인해 소통과 화합의 희망적인 밝은 마을로 바뀌어가고 있다.

아미동 산복도로가 오르막이라 올라가는데 힘이 들었지만,   용두산 타워 와  부산항까지 한눈에 들어와 전망대에서  가슴이 탁 트인 시원함을 느껴보니 역시 오길 잘했구나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따뜻한 봄날에 아이들과 함께,  숨어 있는 비석과 묘비를 찾아보시고 '전망대'에서 바람과 구름처럼 쉬고 오시면

어떨까싶습니다. 

바람도 구름도 쉬어가는 전망대 

작성자
권대열/이야기 리포터
작성일자
2018-03-27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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