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제1804호 전체기사보기

고대 배산성에 사람 얼마나 있었길래…

부산 배산성지서 지름 13m·9.5m 원형 집수지 2기 발굴
식수·방화수 저장시설 … 국내 2번째·영남권 최대 규모

내용

부산시 연제구 연산동과 남구 망미동 일대에 있는 고대 성터 배산성지(盃山城址). 배산의 245m 서봉과 246m 동봉 두 봉우리와 7부 능선을 두르는 길이 110m의 이 산성은 포곡식산성(包谷式山城)이다. 성 내에 계곡을 포함하는 형식으로 계곡과 주변 산세지형을 이용해 성벽을 둘렀기 때문에 수원이 풍부하고 활동공간이 넓을 뿐 아니라 외부에 노출을 방지해 주는 요새다. 특히 부산의 중심지가 대부분 조망되는 중요한 위치에 입지하고 있어 전략적인 요충지였던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부산 고대 성터인 배산성지에서 영남 최대 규모의 원형 집수지(集水址)가 확인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사진은 지난 11월 21일 집수지 발굴 현장에서 학술자문위원들이 회의를 하는 모습.
▲부산 고대 성터인 배산성지에서 영남 최대 규모의 원형 집수지(集水址)가 확인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사진은 지난 11월 21일 집수지 발굴 현장에서 학술자문위원들이 회의를 하는 모습).
 사진제공·부산일보 

 

1972년 6월 26일 부산광역시기념물 제4호로 지정된 이곳에서 고대 유물이 끊임없이 출토되고 있다. 이번에는 영남 최대 규모의 원형 집수지(集水址)가 확인돼 관심이 쏠리고 있다. 집수지는 산성 내 군사들의 식수와 방화수로 사용하기 위해 물을 모아두는 시설물이다.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은 지난 4월부터 배산성지 북문 추정지 일원 발굴조사를 벌인 결과 대규모 원형 집수지 2기의 규모를 확인했다고 지난 11월 21일 밝혔다. 지난해 시굴조사에서 드러난 집수지 2기는 각각 지름 9.5m 깊이 3.2m 크기(1호)와 지름 13m 깊이 4.6m 크기(2호)인 것으로 확인됐다. 2기의 집수지는 모두 원형으로 붕괴 방지를 위해 쌓은 3단의 계단식 호안석축(護岸石築)으로 둘러져 있다. 집수지 구조는 기장산성, 거제 둔덕기성, 남해 대국산성, 남해 임진성 등 남해안 일원에서 7세기 통일신라가 축조한 산성에서 확인되는 집수지 구조와 거의 같다.

 

배산성지 집수지 규모는 국내 원형 집수지 가운데 최대다. 특히 2호 집수지는 굴광(掘壙) 범위를 포함할 경우 지름이 16.5m에 달해 국내 원형 집수지 가운데 충북 청원 양성산성 원형 집수지에 이어 두 번째로 크다. 영남권에서는 최대 규모다.

 

사진은 집수지 2기 발굴 현장을 하늘에서 촬영한 모습. 사진제공·부산일보
▲사진은 집수지 2기 발굴 현장을 하늘에서 촬영한 모습. 사진제공·부산일보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은 이번 발굴조사를 통해 집수지 축조 시 다양한 고대 토목기술이 적용됐다는 사실도 밝혀냈다.

 

집수지 호안석축은 ‘品’자형 쌓기 수법을 적용해 정교하게 축조됐다. 이러한 축조수법은 신라 성곽에서 주로 확인되는 방식으로 잔존 상태도 매우 양호하다. 집수된 물의 유출을 방지하고 벽체의 붕괴를 방지하기 위해 호안석축과 굴광 사이를 잡석과 황갈색 점토를 1.5∼2m 정도의 너비로 두텁게 다져서 ‘뒷채움’ 한 것도 확인했다.

 

집수지에서는 다양한 유물도 출토됐다. 기와와 토기편이 대부분이지만, 목기나 초본류(草本類)도 수습됐다. 그 중에서 바닥 층에서 수습한 묵서(墨書)의 목간(木簡) 편에 2글자가 희미하게 남아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부산에서 처음 출토된 목간의 묵서로, 판독되면 한국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실마리를 제공할 것으로 기대된다.

 

대나무를 가늘게 엮어서 만든 길이 약 1.9m 너비 약 0.9m 크기의 발도 발견됐다. 이 발은 함께 출토된 새끼줄과 더불어 국내에서 출토된 적이 없는 희귀한 유물로 평가된다.

 

집수지 바닥에 낙엽을 두껍게 깔고 그 위에 돗자리를 얹어 다지는 ‘부엽공법’에 사용된 돗자리도 양호한 상태로 남아있어 주목을 끌고 있다. 고대 제방이나 저수지, 성곽 등 구조물의 지반을 강화한 부엽공법의 돗자리가 출토된 사례는 국내에서 드문 경우다. 역시 재료 분석을 통해 당시 식생복원이나 직조기술 등을 알 수 있어 연구자료로서 가치가 높다.

 

부산박물관 문화재조사팀은 "삼국사기 지리지에 신라 경덕왕 16년(757) 12월에 거칠산군을 동래군으로 개명했다고 기록돼 있다"며 "배산성에서 출토된 대부분의 유물이 7세기대가 중심이기 때문에 동래군이 설치되기 이전 거칠산군의 행정기관인 치소성(治所城)으로 보아도 무리가 없을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고 밝혔다.

작성자
구동우
작성일자
2017-11-3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1804호

첨부파일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