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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독교선교사 부산 중앙동에 첫발을 내딛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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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복로엔 화려한 불빛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가 많은 관광객을 불러 모으고 있다. 19세기 말 부산은 홍콩과 일본을 거쳐 한국으로 기독교가 유입되는 관문이다. 1876년 개항 이전까지는 중국대륙, 만주를 거쳐 의주 등으로 기독교가 들어왔지만 1876년 강화도 조약 이후 스코틀랜드 성서공회, 영국성공회, 미국 북장로교, 호주장로회를 중심으로 일본을 거쳐 부산으로 들어왔다. 또한 근대식 병원과 우편제도, 전기전화의 설치, 수도 시설 등 개화문물이 서울보다 앞서 유입됐다. 개화 물결과 함께 각 선교단체들이 부산에 관심을 갖게 되면서 복음의 씨앗도 뿌려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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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최초로 복음 전파를 시도했던 선교기관은 스코틀랜드 성서공회로 알렌이 1884914일 남포역 5번 출구 쌈지공원에 내리면서 출발했다. 2000권의 복음서를 반포되고 1년 후에는 언더우드와 아펜젤러 목사까지 모두 부산항을 통하여 한국에 들어왔다. 당시 외국에 개항된 항구는 부산항 뿐이어서 부산을 거쳐야 제물포로 갈 수 있었던 것이다. 쌈지공원의 기독교 선교사 이 곳에 첫발을 딛다비석에 알렌, 언더우드, 아펜젤러를 새겨 놓아 크리스마스트리문화축제를 더욱 환하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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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더우드는 1887년 조선에서의 첫 장로교 교회인 정동교회(현재 새문안교회)를 설립했고 순 한글판인 그리스도신문도 창간했다. 또한 오선지 악보 찬양가, 한국 최초의 기독교 서적 출판사 조선셩교서회도 만들었다. 묘비명이 "한국에서 나서 한국에 묻히어 한국의 흙이 된 고 아펜젤러 선생의 묘"라 할 정도로 한국을 사랑한 아펜젤러는 한국선교회 및 배재학당을 설립하고 1887년 한국선교부 감리사로 있으면서 학교와 병원 등에 복음전도의 여러 사업을 맡았다.

 

작성자
김홍표/이야기 리포터
작성일자
2016-12-03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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