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농업의 선구자 우장춘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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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기하라박사의 ‘씨 없는 수박’ 육종 이론을 근거로 우리 나라에서 최초로 씨 없는 수박을 생산한 사람이 바로 우장춘 박사다. 동래구의 ‘우장춘박사 유적지’는 원래 1950년 원예시험장이었다가 수원으로 이전하게 되어 1973년부터 우장춘 박사 동상을 건립하여 유적지를 만들어 보존하고 있다. 1953년 일본에 계신 어머니의 임종을 못 본 우장춘 박사는 위령제를 지내고 조의금으로 ‘자애스런 어머니의 젖’이란 뜻으로 ‘자유천’을 세운다.
우장춘은 한국인 아버지와 일본인 어머니 사이에서 태어나 학창 시절 또래들에게 따돌림을 당했고 정체성을 겪는다. 또한 훗날 아버지 우범선씨가 명성황후 시해 사건에 깊이 간여한 사실을 알게 되면서 사랑했던 여학생과 이별하게 되고, 자신의 논문마저 의문의 화재로 불에 타고 만다. 그의 이런 불운은 태생부터 안고 살아가야 했을 비극 때문이었을까? 하지만 우장춘은 ‘짓밟혀도 또 일어서서 꽃을 피우는 민들레처럼’ 어린 시절 어머니에게 배운 끈질긴 생명력을 마음에 새기며 시련을 견뎌낸다. 이 후 우장춘은 한국을 아버지의 나라라 부르며 1950년 홀로 한국에 돌아온 그는 한국의 농업 근대화에 헌신한다. 하지만 이승만 정권의 감시 속에서 일본에 있는 가족을 만나지도 못하고 쓸쓸히 연구에 골몰했다. 훗날 어머니가 편찮으시다는 소식에도 발만 동동 구르다가 끝내 어머니의 임종을 지키지 못한 채 한국에서 따로 장례를 치러야만 했다. 그 이후에도 우장춘 박사는 죽을 때까지 한 번도 일본에 갈 수 없었다고 한다.
광복 이후 한국농업과학연구소 초대 소장으로 부임하여 육종 지식과 경험을 이용하여 한국 원예 발전의 초석을 다진 우장춘 박사의 업적을 기념하기 위하여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1999년에 ‘우장춘기념관’을 세웠다. 기념관 1, 2층 전시실엔 박사의 업적, 활동모습, 유품이 전시되어 있고 매년 8월 10일에는 추모행사가 열린다. 가족들과 함께 한국 농업의 선구자 우장춘박사를 만나러 우장춘박사 유적지로 꼭 놀러 오세요.
- 작성자
- 김홍표/이야기리포터
- 작성일자
- 2016-03-05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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