잊지 말아야 할 역사 가슴으로 배우는 곳
일제 강제동원 증언하는 사진 · 기증자료 전시 … 역사 의식 고취, 생생한 교육의 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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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 한국과 일본을 잇는 교통수단이었던 관부연락선을 닮은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지난해 12월 문을 열었다. 남구 대연동 당곡공원 언덕배기에 꼭 기억해야 할 과거를 싣고 항해를 시작한 것이다. ‘위대한 여정, 새로운 도약’이란 플래카드가 바람에 펄럭인다.
힘차게 닻을 올린 까닭은 일제에 강제동원된 군인, 군무원, 노무자, 일본군 위안부의 실상을 제대로 알리고, 치유하고, 책임지기 위해서다. 기억이 행동으로 이어질 때 역사는 어둠 속에서 걸어 나올 수 있다.
광복 귀환선 가장 먼저 도착한 부산에 개관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고난의 역사를 총 7개 층으로 나눠 전시한다. 이곳에 건립한 이유는 일제강제동원 피해자들의 주요 출발지이자 귀환선이 가장 먼저 도착한 곳이 부산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12월 10일 개관한 역사관은 4층 상설전시실Ⅰ, 5층 상설전시실Ⅱ와 상징조형물, 6층 기획전시실로 구성돼 있다. 7층은 하늘광장과 추모공원으로 꾸미고 있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의 전시는 기억(memorial)·치유(redress)·책임(responsibility)의 순서로 구성했다. 왜곡된 역사를 바로 세우고 무관심 속에서 침묵했던 피해자들의 아픔을 치유해 줄 공간이다. 4층 상설전시실Ⅰ에는 일제강제동원의 기록을 담았다. 일제강제동원의 개념에 대해 자세하게 전시했고, 강제동원의 시작에서부터 그 실체, 광복과 귀환, 마무리되지 않은 피해자들의 상처를 날것으로 전달한다. 잘못 알려졌거나 잘 알려지지 않은 역사의 진실을 유물·사진자료·다큐영상·애니메이션과 피해자들이 기증한 귀한 편지로 전시하고 있다.
일제는 물자에 한정해 사용되는 ‘공출’이라는 용어를 조선 민중에게 거리낌 없이 사용했고, 민족성 말살을 위해 일왕 숭배, 일장기 게양, 기미가요 제창, 궁성 요배(일왕이 있는 방향으로 고개를 숙여 절하는 것), 신사참배를 강요했다. 그리고 조선인의 의식과 역사를 무너뜨리기 위한 교육을 시행했으며 우리말 사용을 금지시키고 창씨개명까지 요구했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지난해 12월 남구 대연동 당곡공원 내 개관했다(사진은 일제강제동원 현장을 체험할 수 있도록 만들어진 탄광 모형 내부).
감언이설로 속여 조선 젊은이 강제 동원
먼저 ‘기억의 터널’을 통과하면서 과거로 거슬러 올라간다. 터널 입구에는 초가집을 배경으로 강제 징집되는 피해자의 가족사진이 걸려 있다. 죽을지 살지 모르고, 언제 돌아올지도 모르는 행렬. 터널의 검은 벽에는 하얀 그림자가 심연 속으로 무거운 발걸음을 옮기고 있다. 그림자에서 그림자로 이어지는 세월, 장중한 음악이 낮은 절규처럼 아물지 않은 상처를 만진다.
터널을 빠져 나오자 커다란 유리관이 방문객을 맞는다. 유리관에는 피해자들이 기증한 사진과 군인 수첩, 노무자신분증이 가득 들어 있다. 1942년 당시 조선의 총 인구수가 200만명 정도였는데, 조선인 강제동원 총수가 78만명을 넘었다니 그 규모가 엄청나다. 또 다른 곳에는 삼엄한 검열에 걸려 검게 칠해진 군사우편이 전시돼 그 당시의 암흑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일제에 충성을 다짐하는 선동의 문구가 적힌 머리띠와 어깨띠를 보니 감언이설에 속은 순진무구한 조선 청년들의 눈망울이 떠올라 먹먹했다. 죽음으로 끌려가는 조선 청년들에게 억지 전송식을 열어주며 지역 유지와 관변단체장들이 일왕을 위해 목숨을 바치는 고귀한 일이라고 미화했다. 진열품들은 조선의 청년들을 고통의 나락으로 빠뜨린 친일파 지식인들에게 참회를 촉구하는 듯 보였다. 여고생으로 보이는 학생 2명이 영상실에 전시된 유골함 앞에서 조용히 묵념을 하고 있다. 끝내 그리운 고국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굶주림과 추위로 한줌의 재가 된 피해자들에게 이제라도 따뜻한 위로가 되길 빌어본다. 이 유골함은 일본 후쿠오카현 지역에서 수습된 조선인 희생자의 유골함을 바탕으로 실물 재현한 것이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 전경.
일본의 ‘조선 징벌’ 야욕 고스란히 드러난 유물 전시
조선인 524명의 목숨을 뺏은 ‘우카시마 호’의 폭침 사건은 아직도 미제인 채로 전시돼 있다. 광복을 맞아 ‘오미나토항’을 출발해 부산으로 돌아오려던 배였다. 꿈에 그리던 고향으로 돌아가려던 조선인들을 일본정부가 의도적으로 폭침했다는 의심을 받고 있는 사건이다.
‘무토 아키이치’라는 ‘일본 군인의 일기’ 전시물 앞에서는 심장이 얼어붙는 느낌을 받았다.
“1937년 2월 21일. 오늘은 즐거운 외출 날이다. 이시키와 둘이서 먼저 조선 징벌을 하러 갔다. 내 순서는 네 번째다. 그 다음은 중국을 징벌하러 갔다. 약간의 소동이 벌어졌고 치에코가 울었다. 너무 불쌍했다.”
그들은 ‘징벌’이란 용어로 침략자들의 욕망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었다. 이 일기는 가해자인 일본군 아버지를 그의 아들인 ‘다나카 노부유키’ 씨가 설득해 사죄하는 마음으로 기증한 것이다.
강제 동원된 피해자들의 이름과 사진액자를 촘촘하게 걸어 둔 벽을 지나 다리를 건너면 5층 상설전시실Ⅱ에 닿는다. 5층은 일제강제동원의 현장을 체험하는 공간이다. 관람객이 간접적으로나마 일제강제동원 피해자의 심경을 공유할 수 있도록 구성한 것이 특징이다. 강제동원 현장인 조선인 노무자 숙소, 탄광, 서부 태평양 전선, 일본군 위안소 등을 만들어 놓았다. 끝으로 ‘시대의 거울’은 거울을 통해 관람객이 직접 일제강점기라는 암흑기를 산다면 어떤 마음이 드는지 내면 체험해 볼 수 있는 전시물이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은 젊은 세대의 역사교육 현장이다.
강제동원 현장 재현 … 직접 체험하며 배우는 역사
탄광 사고를 재현한 모형 전시품 옆에는 해외로 끌려가 노예처럼 일하는 앳되고 비쩍 마른 조선 젊은이가 낙담한 표정으로 곡괭이를 들고 있다. 열악한 숙소에서 구타와 학대가 이뤄졌다는 악명 높은 노무자 숙소는 일명 ‘타코베야’(たこべや, 문어방)라고 불렸는데, 감금시설에 갇혀 문어처럼 흐물흐물해질 때까지 구타를 당했다는 의미다.
수확한 곡식을 공출당한 배고픈 젊은이들은 일본으로 가면 돈을 벌 수 있다는 솔깃한 꼬임에 넘어갔다. 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전시실에는 일본으로 가는 여비와 임금, 숙소와 먹고 자는 문제에 대해 묻고 답한 수첩이 전시돼 있었다. 그러나 답을 해 준 약속은 지켜진 것이 단 한 가지도 없었다. 일제는 침구를 구입하는 것부터 배고픔을 참지 못해 국수를 사먹은 돈까지 임금에서 착취했다.
“일본의 패전소식을 전해들은 조선인이 귀환을 서둘렀으나 고향으로 돌아오는 길도 순탄치 않았다. 강제동원된 조선인의 귀환은 일본의 몫이었으나, 일본은 방관하였고 귀환을 도와야 할 조국도 무정부상태였다. 스스로 귀환 길을 나서다가 폭풍과 사고로 많은 사람이 죽거나 다쳤다. 가족이나 동료의 유해를 끌어안고 고향으로 오는 길은 기쁨과 슬픔이 교차하는 안타까운 여정이었다”는 글귀가 적혀 있다.
피해자들의 구술 증언으로 꾸며진 공간에는 손바닥을 올리면 참상의 생생한 증언이 쏟아진다. 일본이 아무리 미화하고 감추려 해도 생존해 돌아와 증언한 목소리를 지울 방법은 없을 것이다. 그리고 일본이 2015년 7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시킨 하시마 섬, ‘군함도’는 조선인들이 불구가 돼야 나올 수 있었다는 ‘죽음의 섬’이다.
한쪽은 ‘북해도 고락가’ 영상이 흐른다. ‘북해도 고락가’는 강삼술 옹이 고향을 떠나 훗카이도에 도착하기까지의 험난한 과정과 고된 탄광생활을 가사형식의 글로 상세히 기록한 것이다. 4·4조의 운율에 맞춰 마치 노래를 읊조리는 듯 당시의 서글픈 심경과 외로움이 시적으로 표현돼 있다.
▲일제강제동원 노무자의 생활 모습을 재현한 조형물을 관람하는 시민 모습.
UN평화문화특구 내 인권·평화 공간 상징
꽃다운 나이에 끌려가 일본군을 상대했던 위안소의 방 안을 재현한 전시모형 앞에선 눈이 뜨거워졌다. 딱딱한 침대와 얇은 모포 한 장. 소녀들의 부푼 꿈을 무자비하게 찢은 만행에 대해 일본의 진심어린 사죄가 없는 이상 한이 풀리지 않을 것이다. 그리고 위안부 모집에 관여했던 조선 내 협력자들도 제대로 밝혀야 할 것이다. 일제에 당한 피해는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고 우리의 후대에서도 멈춰서는 안 된다. 두 번 다시 비극적인 역사를 되풀이 하고 싶지 않다면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지 말아야 한다.
한 쌍의 풋풋한 연인이 열심히 전시관을 관람 중이다. 요즘 젊은이들 사이에 역사 탐방 데이트가 유행이라고 하더니 그나마 다행이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이 불운한 시대를 살다간 청춘과 현대사회의 청춘들이 시공간을 넘어 조우하는 열린 장이 돼 줄 것을 기대해 본다.
4층 전시실을 나오면 탁 트인 전망이 펼쳐진다. 황홀한 풍경에도 가슴은 아려온다. 황령산과 금련산, 저 멀리 오른쪽으로 장산이 우뚝 보인다. 특히 이 부근은 UN기념공원을 중심으로 UN평화문화특구로 지정돼 UN평화기념관과 함께 평화와 인권의 역사를 기억하고 체험하는 명소로 발돋움하는 중이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 관람시간은 오전 10시∼오후 6시이며 관람료는 무료다. 매주 월요일은 휴관이다. 도시철도 2호선 대연역 5번 출구로 나와 오르막 도보 약 10분 거리에 있다. 차량을 이용해 방문할 때는 내비게이션에 ‘부산시 남구 홍곡로 320번길 100(대연동 산 204-1)’으로 찾으면 된다.
- 작성자
- 이영옥 시인
- 작성일자
- 2016-01-29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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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부산이야기 통권 제112호(2016년2월호)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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