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18일의 지휘본부 ‘워커하우스’
- 내용
부산광역시남구 대연동에 위치한 국립부경대학교 경내는 우리 국민이 알고 있는 6.25사변 즉 한국전쟁의 가장 긴박했던 18일 동안의 지휘본부가 있는 곳이다. 건물의 명칭은 ‘워커하우스’이다. 전쟁당시 미 8군사령부의 지휘본부입니다.
이 건물은 미 8군 사령관인 워커 장군과 참모들이 머물렀던 곳이다. 한국전쟁이 낙동강전선까지 내려왔을 때 전쟁을 지휘했던 역사의 현장입니다. 전쟁 중 가장 치열했던 18일 동안의 전쟁지휘본부로 사용했던 장소입니다.
건물의 벽은 자연석으로 돌담장을 쌓았다. 외부로 침략을 막는 역할을 했습니다. 벽 두께가 넓어서 당시의 화력으로는 담장 벽을 뚫을 수 없었다고 하니 장비보호를 위해 얼마나 튼튼한 벽을 만들었다는 사실을 알 것 같습니다.
한때 워커하우스는 부경대학교 학생들의 식당으로 운영하다가 지금은 식당 겸 카페로 운영을 하고 있습니다. 전쟁이 낳은 부산이야기의 한 건물입니다.
거슬러 올라가면 1950년 9월 부산 방어권은 거의 무너질 듯 위험한 상황을 맞고 있었습니다. 미 8군 참모들은 삼랑진과 마산을 잇는 전선을 후퇴하자는 논의까지 있었다. 당시 워커장군은 총탄세례를 받으면서 진두지휘했다고 합니다.
하지만 워커장군은 계획을 철회하고 8군사령부만을 대구에서 부산으로 당시는 부산수산대학교였던 이곳 현 부경대학교로 이동을 하여 전쟁을 지휘한 장소이다. 이유는 정확히 모르지만 당시 귀중한 통신장비를 보호하기 위함이었다고 합니다.
만약 그 통신장비가 파손되어 적군의 수중에 들어가면 극동지역에서 그 장비를 구입할 만한 곳이 없었다고 하니 얼마나 소중한 장비인지 짐작을 해봄직 합니다.
한편 워커장군은 1950년 12월 23일 미 모 사단에 복무 중인 아들의 대위진급 계급장을 달아주려고 가던 도중 차량 전복사고로 안타깝게도 유명을 달리하셨습니다. 워커장군의 운명 3일 전 이승만대통령은 낙동강사수의 주역인 장군에게 무공훈장을 수여한 바 있습니다. 서울의 워커호텔도 장군의 이름으로 명명되었습니다.
- 작성자
- 황복원/이야기 리포터
- 작성일자
- 2016-01-27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