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르고 싶은 이름 ‘엄마’ 이제야 써 봅니다
양달마을행복센터 어르신 한글교실 ‘눈길’
한글 배워 편지쓰기 상 받고 글모음 책 엮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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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일 불볕더위가 이어지는 여름. 남구 우암동 양달마을 행복센터 2층은 30여명의 할머니들로 가득 찼다. "이가 튼튼이에요? 탄탄이에요?" "광고는 봤는데 글은 기억이 안 나네." 양달마을 어르신들이 받아쓰기에 열중하고 있었다.
어르신 한글교실이 시작된 것은 지난 2009년. 2012년 양달마을 행복센터가 개관하면서 이곳으로 옮긴지 벌써 3년째이다. 수강생은 70대 초반부터 후반의 할머니 30여명. 수업을 들은 기간은 길게는 7년 차에서 아직 1년도 되지 않은 분까지 다양하게 있다. 가정 형편 탓에 일찍부터 생업에 나서거나 동생에게 배움의 기회를 양보하는 등 저마다 다양한 사연을 가진 할머니들은 늦게나마 한글을 깨칠 수 있어서 매우 좋다고 입을 모은다.
양달마을 행복센터 어르신 한글교실에서는 70대 초반부터 후반까지 30여명의 할머니들이 학업에 열심이다. 지난해에는 할머니들이 쓴 편지를 모아 책도 엮었다(사진은 양달마을 한글교실 할머니들).진정현(75) 할머니는 글을 몰랐을 때는 병원에 가서 '처음 오셨죠?'라는 말이 가장 힘들었다고 한다. 이름과 주소를 써야 했기 때문이다. 그때마다 눈이 침침해 글을 못 쓰니 대신 써 달라고 부탁하곤 했다고. 지금은 한글을 배워 병원이나 은행에 가도 직접 글을 쓸 수 있고 손주들과 문자로 연락도 주고받는다. 김금연 할머니(77)는 "글을 배운 후 손녀가 소설책을 다섯 권이나 사 왔는데 다 읽었다"고 활짝 웃으며 말했다. 김한이 할머니(76)는 "공장에서 일할 때 남이 쓴 글을 보고 쓰느라 힘들었다. 이제는 내 이름과 주소도 쓸 수 있어서 봉사가 눈을 뜬 것 같이 너무 행복하다"고 말했다.
양달마을 한글교실에는 특별한 과정이 있다. 바로 '가족에게 편지쓰기'다. 2009년부터 어르신 한글교실을 담당하고 있는 박지영 선생님은 어르신들께 좀 더 실질적으로 도움이 되는 방법을 고민하다 편지쓰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남편·아들·손주·며느리에게 한 자 한 자 눌러쓴 소중한 편지는 선생님이 사진으로 찍어 대신 보내주고 있다. 편지를 받고 감동받은 아들이 다시 장문의 편지를 보내와서 모두 눈물바다가 된 적도 있다고 한다.
할머니들이 쓰신 편지를 모아 지난해에는 글모음 책을 발간했다. 사별한 남편에 대한 그리움을 담은 이금옥(73) 할머니의 편지가 SNS에 소개가 되어 화제가 되기도 했다.
지난 7월에는 한국문해교육협회가 주관하고 275개 기관 6천270명이 참가한 '제11회 성인문해 학습자 편지쓰기대회'에서 김성자 할머니(70·우수상) 김표순 할머니(71·장려상) 조월선 할머니(72·늘배움상)가 상을 타기도 했다. 어머니가 일찍 돌아가신 후 가사도우미 생활을 하며 보고 싶은 '엄마' 글자라도 써보고 싶었지만, 글을 몰라 못 썼다는 김성자 할머니의 글은 많은 사람의 눈시울을 적셨다.
김성자 할머니의 '엄마'.양말마을 행복센터 1층에서는 할머니들이 쓴 편지들을 전시하고 있다. 글은 유려한 표현이나 형식보다 내용이 중요하다고 한다. 또박또박 인생을 눌러 쓴 할머니들의 글이 소중한 이유다.
하또서분 할머니(왼쪽), 김한이 할머니의 글.
- 작성자
- 하나은
- 작성일자
- 2015-08-12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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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1692호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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