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범어사 석탑의 응원

쿨부산 스토리텔링 공모전 - 가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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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범어사요? 부산에 있는?”

나는 밥을 먹다가 범어사라는 말에 그에게 되물었다.

“네. 가봤어요?”
“대학교 때 한번… ”

그는 불교에 관심이 많았다. 베트남 태생의 유명한 틱낫한 스님이 올해 범어사에 강연을 하러 왔다고 하여 하루 휴가를 내고 범어사로 갔다는 말을 꺼냈다. 범어사… 10여년 전 20대 초반의 풋내기였던 내가 떠올랐다.

나의 대학생활은 참 쉽지가 않았다. 내가 대학에 들어갈 때 즈음 IMF가 터졌다. 부모님은 그 여파로 식당을 시작하셨고 가정형편상 오빠처럼 서울에 있는 대학교를 갈 수 없었던 나는 집에서 버스로 왕복 4시간이 걸리는 국립대를 다녔다. 학교 가기 전과 다녀온 후에는 식당 청소며 설거지, 서빙을 도왔고 학교에 가서는 수업이 없는 시간에 교내 장학생 알바를 했다. 장학금도 놓칠 수 없었기에 시험 때 레포트를 마감 기일까지 내려면 밤을 새기가 일쑤였다. 늘 잠이 부족했고 버스에 타면 자리에 앉아 골아 떨어져 자기 바빴다. 인건비를 아껴야 했기에 식당에서 한 명의 일손 역할을 하다 보니 그 흔한 MT도 한 번 가기가 힘들었다. 수업 외 시간에 자기들만의 시간도 갖고 놀러도 가고 방학 때면 해외여행도 가며 다양한 경험들을 쌓아가는 친구들이 참 여유롭고 부러웠다.

‘나만 왜 이럴까. 이 어쩔 수 없는 상황은 왜 내게만 주어질까?’

누구 탓을 할 수는 없었지만 누구라도 잡고 하소연하고 싶었던 순간이 많았다.

“너 이번 범어사 답사에는 안 빠질 거지? 팀 레포트 과제란 건 알지?”

한국 문화사 수업에서 같은 팀인 동기가 퉁명스럽게 말을 했다. 내가 여러 번의 MT를 빠졌던 터라, 미리 단도리를 하는 거였다. 수업의 일환이라는 명목으로 가는 부산 범어사 여행이었지만 나 또한 좋았다. 팍팍하고 매여 있는 내 일상을 조금이나마 환기시켜주는 기회라 생각됐다.

“물론이지. 이번엔 꼭 참여할게!”

하지만 안타깝게도 여행 당일, 나는 심한 감기에 걸려 기침과 몸살로 몸이 매우 지쳐 있는 상태였다. 아침에 생강, 양파, 배, 마늘 등을 달인 물을 보온병에 넣어 고속버스에 몸을 실었다. 내 옆에 앉은 친구는 그렇게 만날 쫓기듯 하루하루를 버텨내니 몸이 탈이 난 거라며 혀를 끌끌 찼다. 내가 왜 모르겠는가. 하지만 그렇게 하루하루를 살아야 하는 상황은 쉽게 바꿀 수 있는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부산에 내려 범어사로 가는 버스를 타기 위해 가까운 버스 종점에 갔다. 시장은 아니었지만 할머니와 아주머니들이 갖은 나물이며 공예품 같은 것을 팔고 계셨다. 동기들은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아이스크림도 사먹고 재잘대기에 바빴고 목이 아픈 나는 한 켠에 서서 쉴 곳을 찾았다. 어느 가게 앞에 놓인 평상에 앉아 있으려니 역시 범어사로 가시는지 회색 승복 같은 옷을 입은 나이가 지긋한 아주머니가 내 옆에 앉았다. 내가 말없이 말린 나물 파는 아주머니와 할머니를 재밌게 쳐다보고 있으니 그 분이 말을 걸었다.

“범어사에 가시나?”
“아 네. 범어사에 가세요?”
“나는 자주 가지. 아가씨는 범어사에 어찌 가시나?”

갑작스런 질문에 과제 때문에 간다고 하기가 괜시리 멋쩍었지만 솔직히 말씀드렸다.

“절에 가면 내려놓고 오는 게 있어야지. 그래야 얻고 가는 것도 생긴다우.”

아주머니의 아리송한 말씀에 내가 뭐라 답을 드려야 할 지 몰라 가만 있으니 빙그레 인심 좋은 미소를 지으셨다.

내 기분 탓인지는 모르지만 범어사에 오르는 길은 버스를 타고 가면서 휙휙 지나가는 경치만 봐도 뭔가 모를 위로를 주는 듯 했다. 길을 감싸는 듯한 양갈래의 높은 나무들이 그러했고, 순간순간 보이는 암자와 보물들을 가리키는 표지판이 그러했다. 무언가 숨은 이야기가 많은 것 같았다. 다음 번에 오를 때는 버스가 아니라 두 발로 천천히 그 이야기들을 찾아보며 걸어 오르고 싶었다. 금빛나는 물고기가 오색구름을 타고 하늘에서 내려와 놀았다는 금샘의 전설이 깃든 금정산, 그 기슭에 하늘의 물고기라는 뜻의 범어사가 있었다.

범어사의 일주문을 지나 대웅전으로 향할 때는 넓은 경내에 따뜻한 기운이 가득 모이는 것 같았다. 날씨가 화창해서인지 아니면 사찰 구조가 그걸 의도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대웅전으로 이르는 계단에 서서 뒤돌아보니 따뜻한 햇빛을 한 움큼 안은 듯한 느낌이었다. 우리는 수업 때 교수님이 언급했던 대웅전 내 불단이며, 당간지주, 팔작지붕, 팔상전, 굴뚝, 불이문 등을 유심히 살피고 사진으로 찍어 기록을 남겼다. 범어사는 몇 시간이 아니라 하루를 보내어 봐도 될 만큼 구석구석 보고 느끼고 감탄할 만한 유산들이 많았다. 우리 일행은 그나마 수업을 듣고 와서 ‘아 이런 거였구나. 실제로는 이렇구나.’ 확인해보고 감상을 할 수 있었지만 그저 관광을 와서 사진만 찍고 가는 사람들을 보니 안타까운 마음이 들었다. ‘아는 만큼 보인다’는 말처럼 아는 만큼 감탄할 수 느끼고 감탄할 수 있지 않을까 생각이 들었다.

한참 범어사 여기저기를 살펴보다가 나는 일행들을 먼저 보냈다. 동기들과 보폭을 맞추기에는 내 몸 상태가 좋지 않았기 때문이다. 열이 오르고 진땀도 나고 몸이 가라앉는 것만 같았다. 혼자 대웅전 계단에 앉아 햇빛을 쐬다 뒤따르겠다 했다. 사찰 안을 다니는 사람들을 살펴봤다. 내외국인 할 것 없이 모두 즐거워보였다. 그 때 가족 단위의 관광객들이 눈에 띄였다. 오롯이 햇빛을 받은 그들의 함박웃음이 빛나 보였던 것 같다.

‘우리 가족은 언제 한 번 다 같이 여행이란 걸 갈 수 있을까…’

부지런히 일을 해도 늘 힘에 부친 생활을 하는 부모님 생각에 나도 모르게 한숨이 나고 눈물이 터져 나왔다.

“한창 젊은 사람이 부처님 앞에서 웬 깊은 한숨일까?”

깜짝 놀라 소매로 눈물을 훔치니 한 스님에 내 오른쪽 옆자리에 털썩하고 앉았다. 아무 것도 아니라며 손사래를 쳤지만 스님의 말솜씨는 내가 속이야기를 털어놓기에 충분했다. 아무에게도 쉽사리 털어놓지 못 하는 내 이야기를 누군가에게 토로하고 싶었던 것도 같다. 스님은 내 이야기를 다 들은 후, ‘음~’하고 입을 다무시는 듯 하시더니

“저기 탑은 돌아봤어요?” 하셨다. 아직 안 돌아 봤다고 하니 같이 가보자고 하셨다.

범어사 내 삼층석탑은 오랜 세월의 흔적을 여과없이 드러내고 있었다. 스님이 한 번 돌아보라 하시기에 탑을 돌았다. 다 돌고 나니 특별한 게 있냐고 물으셨다. 잘 모르겠다고 하니 스님은 말없이 돌아온 길을 되돌아가셨다. 그리고 잠시 후에 물을 담은 그릇을 들고 오셨다.

“잘 보세요.”

그러고는 물을 탑의 기단부에 뿌렸다. 예상하지 못 한 행동에 영문을 몰라 어리둥절해 하니 다시 탑을 살피라 했다. 스님이 물을 뿌린 부분에 아까는 보이지 않던 곡선이 드러났다. 가만히 보니 꽃모양을 간단히 새겨 놓은 것이었다.

“단단한 돌에 새긴 꽃이랍니다. 저 단단한 탑에 새겨져 비바람 다 견뎌내고 여태 있지요. 이렇게 비를 맞거나 하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지만 참으로 강하고 그래서 더 아름다운 꽃이지 않아요?”

나는 스님이 내게 하시려는 말씀이 무엇인지 알 것만 같았다. 가슴이 먹먹해 오면서도 소소히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는 것도 같았다.

‘내려 놓고 가는 것이 있어야 얻어가는 것도 생기지.’
버스 종점의 그 분의 말씀도 떠올랐다.  

범어사를 다녀온 후, 나는 내가 즐겁게 웃는 날이 오늘이 아닐지라도 불평하지 말자는 마음으로 남은 대학 시절을 보냈다. 가끔 또 눈물이 차오르고 힘에 겨울 때는 나를 닮은 꽃이 새겨진 범어사 석탑이 나와 같은 시간을 견디며 나를 응원하고 있을 거라 믿으면서.

“언제 범어사 한 번 가볼래요? 템플스테이도 있던데.”
그가 내게 물었다.

“물론이지요. 꼭 다시 가보고 싶어요.”

작성자
방소현
작성일자
2013-11-25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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