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컬푸드같은 문학, 깊고 소박한 맛을 음미하다
도요문학무크 세 번째 책 출간 '불안한 현실, 더 불안한 미래'
- 내용
- 도요문학무크를 이끌고 있는 최영철 시인.
부산을 대표하는 중견시인인 최영철 시인이 찾아왔다. 한쪽 발은 깁스를 한 채였다. 어눌한 말투로 "산길에서 넘어졌다"며 대수롭지 않게 말하는 그의 몸에서는 산골 냄새가 확확했다. 부산 인근의 산골(김해시 생림면 도요리)에 들어가 도요창작스튜디오를 만들고 운영한지 어언 3년. 그의 몸은 이미 도요마을의 바람소리와 물소리, 매캐한 흙냄새가 스며들어있었던 것. 시인의 손에는 책 한 권이 들려있었다. '불안한 현실, 더 불안한 미래'. 도요창작스튜디오에서 만든 문학무크지 세 번째 책이 나온 것이다. 문학은 동시대의 성감대라고 하지 않던가. 언제 발밑이 꺼질지 모르는 불안의 시대를 살아가는 동시대인들의 모습을 만날 수 있겠거니 짐작했다. 예상대로였다.
이 책에는 ▷윤후명 ' 대관령의 시- 돌의 말을 듣다(1)' ▷조갑상 '목구멍 넘어' ▷이상섭 '재첩의 맛' ▷정인 '호수 근처' ▷조명숙 ' 하하네이션' ▷표명희 ' 바닥' ▷한수영 '지금 어디쯤이에요? ' ▷허택 ' 텅 빈 입안' 등 불안에 관한 8편의 신작소설이 실렸다.
조갑상의 '목구멍 넘어'는 일류대학을 나오고도 공무원 시험에 계속 떨어지는 아들을 놓고 갈등하는 장년 부부의 내면을 다룬다. 이상섭의 '재첩의 맛'은 세 남녀의 어긋난 사랑을 다룬다. 한수영의 '지금 어디쯤이에요? '는 세 가지 유형의 도벽으로 나타난 불안의 징후를 예리하게 포착한다. 허택의 ' 텅 빈 입안'은 성형 중독에 빠져 괴물로 변한 딸의 불안을 섬뜩하게 묘사한다.
윤후명을 제외한 작가 일곱 명이 부산 경남에서 활동하는 작가들이다. 8편의 작품을 관통하는 주제는 역시 '불안'. 단절에 대한 불안, 관계에 대한 불안, 염치와 체면에 대한 불안으로 아등바등하는 우리의 모습이 쉽게 겹쳐진다.
이미지의 시대에 종이책은 이미 한물간 유물이다. 이런 시대에 지방에서 출판업을 한다는 것은 그야말로 미친짓이다. 아무도 읽지 않는(설령 읽더라도 아주 소수의 독자만 읽는) 문학 무크지를 고집하는 최 시인에게서 시대의 불안을 건너는 답이 있을지 모르겠다.
"크고 화려한 것만 좋습니까. 이렇게 사는 사람도 필요한거지요. 그게 문화의 다양성 아닙니까."
절룩이는 걸음으로 돌아가는 시인의 뒷모습을 보며 로컬 푸드를 생각했다. 건강한 생명을 지키는 바른 먹거리로서의 로컬 푸드의 가치가 재조명받고 있지 않은가. 도요문학무크를 보며, 집 앞 텃밭에서 키운 싱싱한 상추와 쑥갓을 떠올린다. 우리 땅에서 자란 바른 먹거리가 우리의 몸과 정신을 살찌우듯, 지역작가들의 글은 우리 삶을 풍성하게 만들어 준다. 책장을 넘기는 투박한 질감이 손끝의 감각을 일깨우는 재생용지로 만든 종이책의 질감이 정겹다. 지역시인과 소설가가 만든 우리 지역의 책이 문화의 다양성과 가치를 지켜낼 것임을 도요문학무크는 소리 없이 전해준다. 그 힘이 따스하다. (055-338-1986)
- 작성자
- 김영주
- 작성일자
- 2013-01-23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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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이라좋다 제1561호
-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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