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첫 승 일궈낸 대형 태극기 어디 갔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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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두들 지난 3·1절에 태극기 다셨나요? 3·1절에 거리 곳곳에 태극기가 휘날리는 모습을 보면서, 우리나라 국기인 태극기가 참 아름답다는 생각을 새삼 했습니다. 외국에 오래 사신 분들은 우연히 태극기를 보기만 해도 가슴이 뭉클하고 코끝이 찡해진다지요. 태극기가 갖는 상징적 의미가 그만큼 크기 때문일 겁니다.
2002한·일월드컵 당시 부산에서 펼친 폴란드 전에 등장한 대형 태극기.외국에 살지 않아도 그런 경험을 할 때가 있습니다. 꼭 10년 전이네요. 대한민국이 4강 신화를 이룬 2002한·일월드컵 말입니다. 그때는 정말이지 태극기만 봐도 가슴이 뭉클했습니다. 압권은 경기장에서 붉은악마가 선보인 대형 태극기였죠. 경기를 앞두고 긴장한 태극전사들을 위해 ‘보란 듯이’ 대형 태극기를 펼치는 장면. 웅장한 애국가와 어우러져 그야말로 감동의 도가니였습니다. TV로 지켜만 봐도 가슴이 벅찼는데 선수들은 어땠겠습니까. 최근 한 방송에서 들은 말입니다만, 4강 신화의 주역 김남일 선수는 “뒷머리가 쭈뼛 서는 느낌”이었다더군요. 그 뿐이었겠습니까. 태극전사 모두가 온 몸에 피가 솟는 느낌을 받았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서야 그렇게 ‘미친 듯이’ 잘 할 수 있었겠습니까.
폴란드 전에서 첫 골을 터뜨린 황선홍 선수.부산은 대한민국 월드컵 도전사에 빠질 수 없는 도시입니다. 아시다시피 2002한·일월드컵에서 대한민국이 첫 승을 올린 곳이 바로 부산입니다. 폴란드 전에서 황선홍, 유상철의 연속 골로 48년간 풀지 못한 ‘월드컵 첫 승’의 한을 푼 곳이자 4강 신화의 출발점이 바로 부산입니다. 부산역 광장에 응원 나왔던 시민들이 승리의 순간 모두 얼싸안았던 기억이 나네요. “선배들이 품었던 한을 후배들이 풀었다”며 울먹이던 신문선 축구해설위원의 멘트도 귓가에 생생합니다. 그 날 경기에 등장한 대형 태극기, 기억나세요?
폴란드 전에서 중거리 쇄기골을 터뜨리고 있는 유상철 선수.다시 김남일 선수 말을 빌자면, 폴란드와 첫 경기를 펼친 그날 대형 태극기가 우리 선수들 경기력에 엄청난 영향을 미쳤다더군요. 부산 아시아드 주경기장에서 대형 태극기가 펼쳐지는 모습을 보고 소름이 확 돋더라는 겁니다. 온통 붉은 물결 속에 선명하게 보이는 대형 태극기를 본 순간, 뒷머리가 쭈뼛 서며 경기 내내 뛰어도 지치지 않고, 태클을 당해도 아픈 줄 몰랐다고 합니다. 부산에서 폴란드 전을 승리하지 못했다면 월드컵 4강 신화는 어려웠다는 그의 말대로, 붉은악마의 대형 태극기 응원은 중요한 경기에서 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그 대형 태극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아세요?
폴란드 전 승리 후 환호하는 태극전사들.지난 1월 13일 허남식 부산시장 트위터에 글이 하나 올라왔습니다. 붉은악마 부산지회 김성열 팀장이 올린 것이었죠. 그는 명예 붉은악마인 허 시장에게 간곡한 부탁을 했습니다. 내용인 즉, 월드컵 응원에 사용했던 대형 태극기를 그동안 자체적으로 보관하고 있었는데, 무료로 사용하던 보관 장소를 공사 때문에 비워줘야 할 형편이다. 대형 태극기를 보관할 곳을 백방으로 구하고 있지만, 무료로는 힘들다. 혹시 부산아시아드나 사직실내체육관에 작은 공간을 협조해 줄 수 없느냐는 겁니다.
허 시장은 “월드컵의 감격을 떠올리면 붉은악마 여러분의 한결같은 정성을 존경하지 않을 수 없다”며 “대형 태극기를 좋은 장소에 보관할 수 있도록 나서보겠다”고 흔쾌히 민원(?) 해결에 나섰습니다. 곧바로 수소문한 결과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 지하에 적당한 장소가 있다는 것 확인하고 무상으로 빌려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그런 과정을 거쳐 대형 태극기는 지난 2월10일부터 안락한 곳에서 편안하게 지내고 있습니다.
2002한·일월드컵에서 ‘진공청소기’로 불리며 큰 활약을 한 김남일 선수가 박지성 선수와 훈련하는 모습.우리를 감동시킨 대형 태극기가 잘 있는지, 붉은 악마들은 보관 장소를 마음에 들어 하는지 궁금하더군요. 그래서 쿠웨이트와 월드컵 예선전인 열린 지난 29일 김성열 팀장에게 전화를 걸었습니다. 그날, 그는 역시 서울에 있었습니다. 2014브라질월드컵 본선에 나가기 위해서는 반드시 승리해야만 하는 쿠웨이트 전 응원을 준비하느라 낮부터 목소리가 쉬어 있었습니다. 대형 태극기 보관 장소가 어떠냐고 묻자 “회원들이 이용할 수 있는 빈 창고를 옮겨 다니며 보관해 왔는데 그것마저 어렵게 돼 고민이었다”며 “백방으로 보관 장소를 찾다가 허 시장님께 협조를 요청했는데 너무나 좋은 장소를 제공해 주셔서 깜짝 놀랐다”고 하더군요. “큰 숙제를 마친 기분”이라네요. 그런데 의외의 말을 했습니다. 부산아시아드에 보관하는 대형 태극기가 2002한·일월드컵 때 사용하던 태극기가 아니라는 겁니다. 이게 웬 말? 2006년 부산시민들이 만들어 준 대형 태극기였다는 걸 본인도 나중에서야 알게 됐다네요. 그럼, 2002년 한·일월드컵 대형 태극기는? “국립중앙박물관에 보관하고 있는 걸로 안다”고 했습니다.
2010남아공월드컵에 출전한 태극전사들을 응원하기 위해 부산아시아드 주경기장에 모인 부산시민.김이 좀 새긴 했지만, 부산시민들이 만들어 준 태극기를 잘 보관하게 됐나니 그것도 다행한 일이라 생각했습니다. 그나저나 2002년 한·일월드컵의 상징인 대형 태극기가 정말 잘 있나 궁금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에 문의를 했죠. 그런데 “없다”는 겁니다. 이 무슨 청천벽력 같은 소리! 이 곳 저 곳 알아본 결과 그 대형 태극기는 국립민속박물관에 보관 중이었습니다. 2002한·일월드컵 직후인 7월2일 붉은악마 서울지회가 기증, 국립민속박물관의 쾌적한 수장고에서 10년째 잘 지내고 있답니다. 덩치가 가로 60m, 세로 40m, 무게 1.5t이나 된다고 하네요. 부산아시아드에 보관 중인 대형 태극기는 가로 40m, 세로 30m로 조금 작은 ‘동생’이랍니다. 형이 쉬는 동안 동생이 열심히 우리 태극전사들에게 힘을 불어 넣어줬던 겁니다. 이제 편안한 집도 얻었으니 더 좋은 기를 태극전사들에게 전했으면 합니다. 쿠웨이트 전 2대0 승리처럼 시원한 경기 펼칠 수 있도록 말이죠.
- 작성자
- 구동우(사진제공: 국제신문)
- 작성일자
- 2012-03-06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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