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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부산의 자긍심을 깨운 청년, 박재혁 의사의 발자취를 담은 <박재혁 거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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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 좌천동과 범일동의 좁은 골목길 사이에는 일제강점기 당시 부산경찰서 폭탄 투척 의거로 민족의 기개를 드높였던 박재혁 의사(1895~1921)의 숭고한 숨결이 층층이 쌓여 있습니다. 의사는 부산진보통학교와 부산공립상업학교를 졸업한 후 무역업에 종사하며 여러 독립투사와 교류해 왔으며, 1920년 의열단장 김원봉으로부터 부산경찰서를 파괴하라는 임무를 부여받고 고서 상인으로 위장해 침투하는 대담한 거사를 성공시킨 인물로 "내 뜻을 다 이루었으니 지금 죽어도 아무 한이 없다"는 의연한 유언을 남긴 채 대구형무소에서 혹독한 고문 속에서도 왜적의 손에 죽지 않겠다며 9일간의 단식 끝에 순국한 그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게 깊은 울림을 전해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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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러한 의사의 항일 호국정신을 기리기 위해 부산 동구청은 지난 2012년 범일동 조방로 일대 약 630m 구간을 ‘독립운동가 박재혁 거리’로 명명하였으나 실제 현장의 모습은 도심의 번잡함 속에 가려져 아쉬움을 남깁니다. 범일역에서부터 이정표를 따라 걷다 보면 고개를 높이 들어야만 보이는 도로명 주소 판이 이곳의 정체성을 겨우 알리고 있으며, 이정표가 가리키는 방향을 따라가도 실제 기념물이 있는 위치를 단번에 찾기가 쉽지 않아 표시된 지점에서 조금 떨어진 길목을 세심하게 살펴야 합니다. 특히 이 거리를 자주 지나는 시민들조차 이곳이 박재혁 거리임을 모르는 경우가 많아 안내판 하나가 덜렁 놓여 있는 현재의 조성 방식보다는 더 적극적인 홍보와 관리가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높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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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걸음을 옮겨 좁은 골목 벽면으로 들어서면 비로소 의사의 생애와 의열단 활동 기록이 담긴 다양한 안내판과 조형물들을 마주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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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는 거사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뿐만 아니라 박재혁 의사와 함께 뜻을 모았던 범일2동 출신의 이광우 애국지사에 대한 기록도 함께 수록되어 있어 이 일대가 부산 항일 운동의 뜨거운 거점이었음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의거 전 친구와 함께 찍은 사진이나 옥중에서의 투쟁 기록은 지나가는 이들의 발길을 멈추게 하지만 여전히 많은 행인은 이곳의 역사적 가치를 미처 발견하지 못한 채 분주히 스쳐 지나가고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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탐방의 마지막 행선지인 박재혁 의사의 생가터는 기념 거리에서 약간 떨어진 곳에 자리하고 있으나 과거의 요람은 사라지고 현재 좌천동 가구거리 공영주차장으로 변모해 있었습니다. 이곳이 의사의 탄생지임을 알려주는 표식은 주차장 입구에 설치된 가벼운 안내판이 전부이며, 일반상업지역으로 분류된 탓에 별다른 보존 조치 없이 방치되어 있어 영웅의 탄생지를 찾는 이들에게 쓸쓸한 풍경을 안겨줍니다.


- 부산 동구 김동우 




작성자
김동우
작성일자
2026-04-3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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