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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고산을 품은 ‘황학대’ 역사가 증명하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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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학대로 올라가는 경사 형 목재 덱 길

부산광역시기장군 죽성읍 두호마을(두모포)에 들어서면 가장 먼저 들어오는 것이 낮은 산이 하나있다. 산꼭대기에는 큰 소나무 몇 그루가 자생을 하고 있다. 고산 윤선도가 유배되었던 황학대이다, 누런 황새가 날개를 펴는 모습과 닮았다고 하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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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 윤선도의 동상의 모습

옛날 선비들이 이곳을 중국 양자강에 있는 ‘황학루’경치와 비슷하여 ‘황학대’라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이곳 기장에서 고산은 6년간 유배생활을 하였다. 조선시대 윤선도, 정철, 박인로 등과 함께 3대 가인으로 시조 문학의 최고봉을 이룬 윤선도는 1616년 당시 국사를 전횡하던 집권세력들의 죄상을 밝히는 ‘병진소’를 올린 것이 화가 되어 함경도 경원으로 유배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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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담한 두호마을에 고산 윤선도의 이배지

또다시 이곳 기장으로 이배되었다. 고산은 유배생활을 하는 동안 이곳을 찾았으며, 마을 뒤에 있는 남산(봉대산)에 올라 약초를 캐어 병마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보살피곤 했는데 당시 이곳 사란들은 고산을 서울에서 온 의원님이라고 불렀다고 구전으로 내려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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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산선생의 이배지에서 남긴 시 

고산선생은 조선시대 공조좌랑, 한성부서윤, 사헌부지평 등을 역임한 문신이자 문인으로 명성을 떨친 요인입니다. 1587년(선조20)에 출생하여 1671년(현종 12)에 돌아가셨다. 고산선생은 유년시절인 성균관 때부터 권신을 규탄하는 소를 올려 유배되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도 강력한 집권세력과 맞서 싸우다가 유배생활20년과 은거생활 19년이나 하면서 거작 ‘어부사시사’라는 문학작품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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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00년 훌쩍 넘긴 곰솔의 모습

두호마을에는 자연유산인 곰솔 한그루가 400년 이상 자연과 마을 주민을 위해 모진 바람과 눈. 비를 맞으면서도 버텨왔지요, 그러나 식물인지라 사람의 손길이 잘 미쳐야 곰솔도 편하게 잘 클 수 있지만 가지가 많아서 바람 잘 날 없는 가 봅니다. 나뭇가지는 지면과 맞닿아서 사람의 손길로는 이미 가지에서 뿌리를 내릴 것 같아요. 원뿌리는 시멘트가 덕지덕지 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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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입구에 홀로선 해녀 형상화 

두호마을 입구에도 바닷가 작고 물살이 얕은 어촌이라서 그런지 해녀 복을 입은 여성의 형상화가 눈에 들어옵니다. 아마도 이곳에도 해녀들이 물질을 하는가 봅니다. 하지만 해녀가 황학대 등지고 포즈를 잡고 있으니 한층 어촌 냄새가 물씬 묻어납니다. 뭍에 올라온 어선이 바다가 조용하기를 기다리고 있어요, 파도가 잔잔해야 바다로 나가서 고기를 잡아야지요. 

작성자
조분자
작성일자
2025-11-08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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