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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한국전쟁의 피란처 ‘문화태마거리’참상을 돌아보다.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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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옛 40계단의 모습

부산시중구에 위치한 40계단 문화태마거리가 있는 일제강점기 부산항은 대륙침략의 교두보를 만들려고 1909년~1912년 사이에 이루었던 일본거점항구였다. 대청로에서 영주사거리까지에 이르는 쌍산(얕은 봉우리두개)을 깎아내린 곳에 해안 절벽이 생겨나고 옛 해안 비탈길 자리에 40계단이 만들어졌는데 오늘날 동광동 새마을금고 앞에 위치하고 있는 계단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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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국전쟁(1950년)의 부산 중앙동의 모습

1950년 6월 25일 발발한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휴전협정이 조인될 때까지 씻을 수 없는 상처와 엄청난 희생을 남겼다. 남북 합하여 600여만 명이 죽음과 상처를 남겼다. 당시 남북인구가 3천여 만 명으로 인구의 20%이상이 희생을 당하는 한국역사 상 오점을 남긴 동족간의 전쟁을 하였다. 당시 피란민들이 부산으로 내려와서 이곳 주변에 천막을 치고 생활을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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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날 40계단의 모습

한국전쟁과 부산역 대화재로 아비규환이었던 중앙동이 오늘날 문화와 예술의 거리로 변천을 해가고 있네요. 예술의 멋을 가미한 40계단은 미래를 위한 문화태마거리로 거듭나고 있습니다. 근데 상처와 아픔을 간직하면서 ‘그래도 살아야겠다, 라는 삶의 의지와 희망을 40계단 중앙에 가수의 애환을 담은 노랫말 가사와 함께 오롯이 남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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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쟁 중에도 배우고자 하는 야외 교육장

전쟁 당시 부산 소재 학생들과 피란을 온 학생들은 구덕산자락과 보수동 뒷산자락 등에서 노천 교실을 열었다. 전쟁 중에도 활활 타올랐던 높은 교육열은 현재 고도경제 성장을 이루게 한 밑거름이 되었을 것으로 확신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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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40계단에서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모습

가수 박재홍의 노래 ‘경상도아가씨’을 아코디언으로 연주하는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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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를 옆구리에 끼고 젖먹이는 모정

큰아이는 걸어가고 작은 아이는 엄마가 등에 업고 아이는 옆구리 끼고 젖을 먹이고 있는 모정은 오늘날도 변하지 않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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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이들의 간식용 뻥튀기 하는 모습

피란민들의 배고픔을 이겨내어야 하는 것으로 미군부대에서 흘러나오는 잔반을 수거하여 다시 끓인 음식을 꿀꿀이 죽이라고 했다 간식용 옥수수뻥튀기를 하는 장소에서 아이는 귀를 막고 있는 모습 그래도 먹어야하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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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모녀가 양동이 물통을 이고 가는 모습

당시 고지대는 수도시설이 거의 없이 산골짜기에 흘러나오는 물을 밤잠을 설치면서 양동이를 한 줄로 세워놓고 물을 받아 이고 가는 엄마와 딸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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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게 품팔이를 하고 휴식을 취하는 어른들의 모습

전쟁 당시 먹고 살기위하여 부산부두나 역 주변에서 무거운 짐을 가지고 오는 사람들의 짐을 지게로 운반해주고 품삯을 받아먹고 살았죠, 지게를 옆에 두고 휴식을 취하고 있는 모습, 요즘 택시역할을 하였죠. 

작성자
황복원
작성일자
2025-04-16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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