효도는 백행의 근본, <영양 천씨 정려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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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로부터 ‘효도는 모든 행실의 근본’이라고 했다. 우리 겨레의 오랜 미풍양속인 이러한 효도의 덕목을 기리고 후세에 알리는 사당이 해운대구 석대동에 있어서 눈길을 끈다. 영양 천씨 정려각이라는 문화유산이 바로 그것이다.
부산 해운대구 석대동 '영양 천씨 정려각' 안내문과 전경.부산 해운대구 석대동의 영양 천씨 가문은 효자와 효부를 많이 배출하였는데 석대동 상리마을에는 영양 천씨 정려각(潁陽千氏旌閭閣)이 있어서 효행의 마을로 이름이 높다. 이 정려각은 석대동 영양 천씨 가문의 다섯 효자와 한 효부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건립됐으며 다른 명칭으로 ‘오효자일효부정려각(五孝子一孝婦旌閭閣)’이라고도 불린다.
영양 천씨 정려각 기와 지붕 전경.이곳에 세워진 여섯 비석은 효자 천성태(千聖泰,1725~1789), 천성태의 아들 천세모(千世慕,1743~1810), 천세모의 아들 천술운(千述運,1767~1835), 천술운의 아들 천상련(千相摙,1795~1855), 천상련의 아들 천우형(千禹炯,1843~1886)과 천우형의 아내 효부 김해 김씨(金海 金氏)의 효행을 기념하는 비석이다.
다섯 효자 비석.
한 효부 비석.이들은 조선조 21대 영조부터 고종에 이르기까지 140여 년동안 효도를 실천하여 후세의 본보기가 되고 있다. 이들 효자들은 부모 섬기기를 지극히 하여 부모가 병에 걸리면 손가락을 자르거나 허벅지 살을 베어 힘써 구원하였고, 부모 별세 후에는 3년간 시묘(侍墓)하며 예를 표시하였다.
효자들이 부모 묘소에서 시묘할 때마다 호랑이가 나타나 호위해 주었고, 묘소 부근에서 샘물이 솟아나 시묘의 불편을 덜어 주었는데, 시묘가 끝나면 호랑이도 가 버리고 ‘효자천’이라 불리는 샘도 말라 버렸다고 한다.
지붕 밑에 쓴 오효자 정려각.
지붕 밑에 쓴 효부 김씨 정려각.그 당시 오랫동안 이어진 이들의 효행을 기리기 위해 도처에서 포상을 천거하였다. 뜻이 있는 많은 지역 사림들이 100여 회에 걸쳐 이들의 효행을 조정에 알렸으며 효행 천거와 사실 조사에 관련된 기록이 후대까지 보존돼 있다.
이러한 사실 기록은 조선시대의 효행과 관련된 정책을 알 수 있는 소중한 자료로써 문중에서 기증하여 현재는 부산시립박물관에 보관돼 있다.
이 정려각은 영양 천씨 가문의 다섯 효자와 효부를 통해 우리 고유의 덕목인 효행사상을 다시 한 번 고취할 수 있으며 지역사 복원과 지역민의 긍지를 키울 수 있는 우리 지역의 자랑스러운 문화유산이다.
시설물은 정면 2칸, 측면 1칸 규모의 기와 맞배 지붕 건물로, 정려각 안에 6기의 돌로 된 기념비가 일렬로 세워져 있고 바로 앞에 안내판을 설치해 놓았다. 현재 영양 천씨 정려각의 소유자 및 관리자는 영양 천씨 석대 문중이다. 영양 천씨 석대 문중은 매년 양력 5월에 영양 천씨 정려각에서 제향을 올려 조상의 효행을 추모하고 있다.
부산 해운대구 석대동으로 가는 길이라면 영양 천씨 정려각에 잠시 들러 우리 겨레 최대의 정신 자산인 효를 실천한 사람들의 행실을 보고 삶의 본보기로 삼아 보면 어떨까 싶다. 해운대구 반송로 643-24에 자리하고 있다.
- 작성자
- 이옥출
- 작성일자
- 2024-06-09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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