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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워커하우스의 비밀과 변천사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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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날 워커하우스 전경



부산광역시남구 부경대학교 정문을 들어가면 본관 옆 동쪽에는 돌담으로 건물을 지은 지붕은 특이하게 건설된 건물 한 동을 만날 수 있습니다 이 건물이 6.25한국전쟁 당시 미8군사령부와 유엔군지휘본부로써 사령관이었던 워커중장과 그 참모들이 머물면서 낙동강 방어선인 워커라인을 지휘하였던 역사적인 현장입니다. 당시 유엔지상군사령부(8사령부)가 이곳으로 이전한 이유는 군의 통신장비를 보호하기 위함이었습니다. 당시 미8군사령관이었던 윌턴 워커 장군이 18일간 집무실 및 지휘소로 머물던 장소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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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워커하우스전경


북한군의 대공세속에 대구에서 부산으로 이전하여 이곳에서 연합군 희생의 골든타임을 지켜내고 전세 역전의 발판을 만들었던 역사적인 장소입니다. 건물의 구조는 자연석과 콘크리트와 혼합 돌집의 형태로 건축하였으며, 전쟁을 치른 후 부경대학교 학생식당으로 사용하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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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커하우스 옆 전경


한국전쟁 초기인 19507월 말에 형성된 낙동강전선은 매우 위태로웠습니다. 대한민국의 운명은 그야말로 백척간두에 처해있었습니다. 19508월 인민군의 대공세에 밀려 9월 초 낙동강방어선은 붕괴 직전까지 몰렸고 망명정부 수립이 거론 될 정도 위기까지 있었습니다. 당시 한국전쟁을 진두지휘한 미8군사령관은 워커중장이었습니다. 낙동강 방어선을 삼랑진, 마산으로 잇는 데이비슨라인으로 후퇴하자는 말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워커장군은 이를 철회하고 대구에 있는 사령부를 부산수산대학(현 부경대학)교내로 옮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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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오는 날 전쟁당시 워커하우스


워커하우스는 낙동강방어선이 가장 위급했던 시기에 미군전쟁지휘소로 역할을 담당했던 곳이었습니다. 그러나 건물이 지휘소 역할을 담당했던 기간은 96일부터 불과 18일 동안이었습니다. 이유는 915일 연합군의 인천상륙작전으로 전세가 역전되면서 지휘소는 부산에서 대구로 924일 이전했습니다. 건물은 대한민국을 지킨 마지막 보루였던 곳으로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다는 사실입니다.

한국전쟁이 역전되어 북진을 하고 난 후 지휘소는 옮겨갔고, 그로부터 2019630일까지 건물은 부경대학교 학생식당으로 이용을 하다가 최근에는 부경대학교박물관으로 다시 탄생을 하였습니다. 충분한 가치가 있는 건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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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관에 붙은 부경대학교박물관



※ 워커하우스변천사

* 19506.25전쟁 당시 유엔군 및 미군의 임시사령부 부속건물사용.

* 1953년 휴전상태 이후 비워진 상태로 유지.

* 1960년 이후 부산수산대학교의 부속건물로 사용.

* 19815~대학동아리 방으로 사용.

* 1990년 여름화재로 외부의 벽을 제외한 내부 소실됨.

* 1995929일 지붕을 포함하여 긴급으로 복원됨.

* 2019630일 학생식당 업무종료.

* 20208월 워커하우스 원형복원 완료추진.

* 현재 부경대학교 박물관.

 

 

작성자
황복원
작성일자
2022-03-12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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