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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화가 이중섭 진면목 알 수 있는 <이중섭 문화거리>

내용

이중섭은 박수근과 함께 한국 근대 서양화의 양대 거목으로 불리는 화가죠. 화풍은 강인하고 굵은 선이 특징이죠. 한국의 대표적인 서양화가로 국내 근대미술을 대표한다고 할 수 있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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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가 이중섭의 체취나 일대기를 그대로 느낄 수 있는 곳이 있어서 눈길이 가네요. 그곳은 바로 부산 동구 범일동에 자리한 이중섭 문화거리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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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동구는 지난 2014년 이중섭 화가의 예술혼이 깃든 범일동 일대를 이중섭 문화거리로 조성했답니다. 이중섭 문화거리는 이중섭 갤러리에서 시작하죠. 천재 화가의 작품과 인생이 담벼락과 보도를 따라 펼쳐진 길이자 야외 갤러리는 거리미술관 범일동 풍경을 거쳐 희망길 100계단으로 이어지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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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망길 100계단에선 가파른 층계를 하나 오를 때마다 이중섭이 마사코에게 보낸 애절한 편지 구절이나 그림을 갤러리 형식으로 구경할 수 있습니다. 계단 난간에는 작은 액자를 활용해 이중섭의 작품을 꼼꼼히 전시해 놓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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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루 알다시피 화가 이중섭은 1916년 평안남도 평원에서 태어나 오산학교 재학 시절부터 화가의 길을 걷기 시작했습니다. 1937년 일본 유학 중 평생의 연인인 야마모토 마사코(남덕)를 만났고, 이후 백년가약을 맺었습니다. 이들의 삶은 고난의 연속이었죠. 6·25전쟁이 터졌을 때 두 아들과 부산 남구 우암동 피란민 수용소에 머물렀습니다. 1951년에는 제주도로 갔다가 그해 겨울 다시 부산으로 돌아와 동구 범일동 귀환 동포 마을 변전소 인근 판잣집에서 가난하게 살았습니다. 이듬해 마사코는 결국 영양실조에 걸린 두 아들을 데리고 일본으로 귀국해야만 했습니다. 홀로 남은 이중섭은 아내와 두 아들을 그리워하며 화가와 부두노동자로서의 삶을 이어가다 1956년 서울에서 쓸쓸하게 생을 마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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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중섭의 작품 세계에서는 가 높은 비중을 차지하죠. 가장으로서, 남자로서, 우직하게 인생을 개척하고 이끌어야 했던 그의 삶을 녹여낸 듯 강인하고 역동적인 소들은 작품에서 다양한 표정과 형태로 드러난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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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간 나면 부산 동구 범일동 이중섭 문화거리를 찾아가 화가 이중섭의 흔적이나 다양한 작품을 감상해 보면 어떨까 싶네요. 도시철도 1호선 범일역에서 범곡교차로 방향으로 도보로 15분 걸으면 찾을 수 있습니다. 이중섭 문화거리는 좁은 골목 주택가여서 주차할 곳이 마땅찮아 대중교통 이용이 낫습니다.

 

작성자
박정도
작성일자
2022-02-13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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