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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신선의 발자취가 살아 숨쉬는 신선대(神仙臺)

손짓 발짓으로 소통한 한·영 최초 만남의 현장

내용


신선이 내려와서 풍류를 즐길 만큼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의미를 지닌 신선대는 거제. 속초, 상주, 서산, 광양, 담양, 서울, 여수, 원주, 보은, 신청, 청송, 부안 등 전국에 수없이 많다. 공통점은 신선이 즐겨찾는 아름다우며 모두 돌 바위가 있는 곳이라는 점이다.

 

신선대 표지석

▲ 신선대 입구 표지석 


우리 부산의 신선대(神仙臺)는 우암반도의 끝자락인 용당포에 있으며, 해식애와 해식동, 병풍처럼 선 기암절벽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알려져 있다. 또한 보리수나무 등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며 바도에 파도가 치면 구르는 자갈소리는 아름다운 음악소리처럼 들렸다고 한다. 신선대의 정상인 무제등(無際燈, 170m)에 올라서면 오륙도와 영도 등 부산항의 내항과 외항의 아름다움을 조망할 수 있다.


신선대 정상(무제등)

 신선대 정상 무제등 안내표지판 


신선대 정상 부산항
 신선대 정상 무제등 바위 흔적


신선대 산봉우리에 있는 무제등이란 큰 바위에는 신선의 발자국과 신선이 탄 백마의 발자취가 있다하여 신선대란 이름이 유래된 것으로 전해지고 있으며 신라시대 대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이 신선대의 경관을 즐기면서 바위에 신선대라는 진필각자를 남겼다고 전해오는데 오랜 세월의 풍상속에 마멸되어 그 흔적을 알 수가 없고 현재는 입구 무제등 공원에 그 현장(바위)을 재현해 선보이고 있다.


무제등

 무제등 재현 바위(무제등 공원) 


부산 남구에서 신선대를 널리 알리고자 무제등 공원을 조성하였으며, 과거(1995~2005) 쓰레기 소각장이 운영되던 곳으로 각종 쓰레기를 태워 매연을 내뿜는 혐오시설에서 주민들이 휴식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 할 수 있는 공원으로 님비(NIMBY)시설에서 핌피(PIMFY)시설로 탈바꿈한 보기드문 사례다.


무제등공원(안내판)

 무제공원 입구(신선대 주차장앞)


무제등공원(전경) 

 신선대 입구 무제등 공원 전경

 

신선대 일대에는 울창한 송림으로 덮여있으며, 이 숲을 이루고있는 수종으로는 사스레피나무, 봄보리수나무, 섬쥐똥나무, 송악, 마삭덩굴등의 상록활엽수와 상수리나무, 떡갈나무, 자귀나무, 굴피나무 등의 낙엽활엽수가 혼재되어 있다. 또 이들 숲에는 멧비둘기, 떼까치, 검은멧새, 굴뚝새, 황금새, 바다쇠오리, 갈매기 등 많은 새들이 지금도 날아든다고 지역 주민들은 귀뜸한다.


신선대 전망대서 본 영도

 신선대 정상서 본 영도, 조도(한국해양대학교)


전망대서 본 부산항

 신선대 정상서 본 부산항, 부산항 대교,구덕산


신선대 부산항
 신선대 정상서 본 컨테이너화물

 

신선대 주변에는 이기대, 오륙도, 부산 박물관과 유엔기념공원 그리고 당곡공원, 문화회관, 동명불원 등 시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또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는 여러 시설들이 산재해 있다. 또한 신선대의 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오륙도와 조도 (한국해양대학교 소재), 부산항(부산항대교), 신선대 부두 그리고 맑은 날에는 수평선 멀리 나타나는 대마도의 전경을 관망할 수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부산의 손꼽히는 명승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오륙도

 신선대 정상서 바라본 오륙도  


1797년 북태평양을 탐사중이던 영국의 동인도회사 소속의 프린스 윌리엄 핸리호가 식수와 땔감을 구하려고 용당포에 잠사 들른 일이 있었다. 신선대에 올라 항박도를 그렸던 브로우틴 선장은 영국으로 귀국하여 '북태평양 항해기"를 펴냈는데 손짓 발짓으로 채록한 우리말 38단어와 함께 부산항(용당포)이 서양세계에 최초로 소개되었다.


한영만남 기념비
▲  한·영 첫 만남 기념비(신선대 정상)
 

1997년에는 엘리자베스2세 여왕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앤드류 왕자(요크 공작)가 한국과 영국이 만난 지 200년을 맞이하여 신선대 무제등공원에 기념식수를 하고 신선대 정상에 ·영 첫 만남 기념비를 세워 보존 관리되어 오고 있다

 

경상도 관찰사 이형원은 그당시 상황을 다음과 같이 적어 조정에 올렸다.(조선왕조실록)

 

이상한 나라의 배 한척이 표류하여 동래 용당포 앞 바다에 닿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코가 높고 눈이 파랬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들에게 국호와 표류하여 닿게 된 연유를 한나라, 청나라, 왜국, 몽고의 언어로 물어보았으나 모두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붓을 주어 글로 써보라고 하였더니 글자의 모습이 구름이 낀 산과 같았고 그림을 그려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개방되지 않고 외국과 교류가 없어 언어 의사소통이 어려웠던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을 조금이나마 이해하는데  도움이 되었다우리의 소중한 역사의 현장 신선대!!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주 찾지 못했던 신선대!! 시간 나시는 이야기리포트 독자님들 한 번 찾아주셨으면 한다.


김동균(金東均)

작성자
김동균
작성일자
2022-01-16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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