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영강에서 꽃핀 부산문화전
청동기시대에서 조선시대까지 부산의 역사
- 내용
회동 수원지 상류에서 안락교를 지나 센텀시티 아래까지 조용히 흐르고 있는 수영강.
얼핏 보기에는 평범해 보이는 이 수영강 유역 일대가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시대까지
우리 부산의 중심지였다는 것을 보여주는 ‘수영강에서 꽃핀 부산문화전’ 이
복천 박물관 기획전시실에서 전시 되고 있었습니다.전시장 안으로 들어서니 제일 먼저 전시장 중앙에 전시되어 있는 금동관이 눈길을 끌고 있었는데요.
모양은 신라 금관 과 비슷하지만 5세기 전반 동래 복천동 지역을 다스리던 수장의 것이라고 합니다.
이 전시는 ‘수영강변 부산의 중심’, 시대별로 변진독로국의 성립, 거칠산국의 성쇠, 동래군과 갑화양곡현,
동래현과 동래정씨, 동래부와 동래읍성 6개 코너로 나누어져 전시 되고 있는데요.
‘수영강변 부산의 중심’ 코너에서는 천성산에서 발원한 수영강 주변에는 부산에서 가장 많은 유적이
분포하고 있어서 청동기 시대부터 부산 문화의 중심지였다는 설명을 읽어보고
‘수영강변 주요 유적 분포도’를 보니 청동기시대 유적 11 개, 삼한시대 유적 6개, 삼국시대 유적16개,
통일신라시대 유적 8개, 고려시대 유적 6개, 조선시대 유적이 15 개로 전부 62개 나 되는 유적들이
수영강변에 몰려 있어서 수영강 유역이 명실상부하게 부산의 중심이었다는 것을 한눈에 알 수가 있었고,
돌칼, 돌도끼 항아리 등 생활도구들이 전시 되어 있었습니다.
‘변진독로국의 성립’ 코너에서는 삼한 시대에 변한의 일부였던 변진 독로국의 중심이 동래 지역 이었고,
동래 패총에서 발굴된 제철 시설과 일본계 토기로 보아 변진독로국이 철을 중심으로 한
대외 교역의 중심지였던 것으로 추정 된다고 하며, 전시된 작은 철검, 철모, 철착, 철부, 철촉 등
철제 유물 들을 보니 오래전 그 당시부터 철을 사용했다는 것이 놀라웠습니다.
‘거칠산국의 성쇠’ 코너에서는 삼국시대에는 부산은 동래 복천동을 중심으로 나라를 형성하고 김해 지역과
합쳐서 금관가야를 형성하였고, 연산동 주변에 거칠산국이 생겼지만 신라로 통합 되었다고 하며,
이 코너의 전시물 중에는 컵4개를 받치고 있는 등잔 형 토기와 높이 30cm정도의 대형토기,
그리고 철검도 길이가 60cm 정도로 커지고 수백 개의 구슬을 이어서 만든 목걸이를 보니 5세기 후반에는
부산의 기술과 문화가 상당히 발전하였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동래군과 갑화양곡현’ 코너 에서는 신라의 삼국통일 후에는 갑화양곡현을 기장현으로,거칠산군으로 불리던 부산을 동래군으로 바꾸어서 동래라는 이름이 이때부터 시작 되었다고 하는데
출토된 유물 중에 기와, 토기 가마가 출토 되고 있어서 이 시기에도 기와집을 짓고 살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동래현과 동래 정씨’ 코너 에서는 고려시대에 부산(동래군)은 울주군 동래현으로 변경이 되고
출토된 유물 중에 정씨 성을 가진 이름이 등장해서 동래정씨의 시작으로 추정 하고 있다고 하며전시물 중에는 커다란 청동 수저가 눈길을 끌고 있었습니다.
‘동래부와 동래 읍성’ 코너에서는 조선시대에 비로소 동래읍성이 만들어 지면서
부산은 다시 우리나라 동남 지역의 중심지가 되었고 임진왜란으로 폐허가 되었던 동래읍성은
1731년 규모를 더 크게 확장 축조 하였다고 하며,
전시물 중에는 분청사기와 백자, 그리고 청동수저와 청동 밥그릇 들이 있어서 생활수준이상당히 높았다는 것을 알 수가 있었습니다.
전시 마지막 부분에는 임진왜란 후 거의 폐허가 되었던 동래읍성을 1731년에 동래부사 정언업이이전보다 더 크게 확장 재건한 것을 기념하는 ‘내주축성비’ 탁본이 전시 되어 있었습니다.
전시기간: 11월 26일 까지 관람료: 무료
관람시간 : 화~금, 일 요일: 9시~ 오후 6시
매주 토요일 과 매월 마지막 주 수요일: 9시~오후 9시
복천 박물관 홈페이지: http://museum.busan.go.kr/bokcheon/index
- 작성자
- 나충/이야기 리포터
- 작성일자
- 2017-10-24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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