죽기 전 이름 부르고 죽는 ‘닥나무’ 마을관광지 되다.
- 내용
부산광역시서구 동대신 2동에 위치한 닥(딱)밭골은 옛적 이 마을(대신여중 뒤편)은 닥(딱)나무가 많이 자라고 있었으며, 나무 이름을 따서 오늘날 닥 밭골 행복마을이라고 부른다. 마을은 쾌적한 주거환경을 조성하고 벽화, 사진 등 도시미관 개선사업을 통해서 유명세를 탄 서구 관광지로 이름을 올리고 있다. 닥나무는 낫으로 베면 딱하고 자기이름을 부르고 꺾이면서 죽는다.
이 마을은 고려에 저항하는 신라인들은 신라인의 후예들의 꿈과 개척정신이 살아 숨을 쉬는 곳이었다. 닥 밭골의 원래 이름은 고분도리이었습니다. 신라 멸망 후 고려가 창건하자, 투항한 사람들과 격리시키기 위해 유배지로 적합하다고 결론내리고 고리짝을 만드는 노역 형에 처했다. 그 당시 이곳의 지명은 고분도리였다. 고리(짝)은 키버들의 가지나 대오리로 엮어서 상자같이 만든 물건을 말한다.
신라인의 후예가 사는 고분도리가 닥 밭골이라는 지명을 가지게 된 것은 그로부터 몇 해 뒤였다. 이 마을에 왕실 호위무사를 지냈던 춘보라는 신라인이 살고 있었다. 춘보는 고운 최치원 선생이 신라조정에 관직을 내려놓고 은둔을 위해 지리산으로 가던 중 이 마을 뒷산에 숲을 이루고 있는 닥 나무에 반해 이곳에서 몇 일간 머문 적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었다.
그 닥 나무가 한지종이 원료로 매우 적합하다는 선생의 말을 들은 적 있는 춘보는 제2 고향으로 삼기로 한 이 마을의 융성을 위해 고리짝 생산뿐만 아니라 닥 종이도 생산해야 한다는 것을 사람들에게 알렸다. 그 후 이곳에서 생산된 닥 종이는 한때 유배지였던 마을을 외지인들이 부러워하는 부자마을로 탈바꿈시켜 놓았다. 지명은 고분도리에 닥 밭골로 바뀌었다고, 구전으로 전해오고 있습니다.
닥 나무를 이용한 한지를 만드는 과정을 간단하게 적으면, 닥나무를 베어서 한곳으로 모은 후, 닥나무껍질을 벗깁니다. 벗긴 닥나무를 옷을 만드는 쌈 굿에 넣고 푹 삶기를 합니다. 삶은 닥나무 껍질을 방망이로 두드린 후 닥 풀 풀기를 합니다. 물에서 뜨는 닥 가루를 한지종이 규격으로 만든 틀에 뜹니다. 뜬 것을 말리면 한지 종이로 변하게 됩니다.
한지는 우리의 민족성처럼 강인함과 부드러움이 있다. 깨끗하고 은은한 정감을 지니고 있다는 공통점도 있으며, 가볍고 기름이나 먹물을 잘 빨아들여 글을 쓰거나 그림을 그리기에 매우 좋다. 옷에 넣어 방한용으로도 사용한다.
한편 한지원료인 닥나무를 쪄서 껍질을 벗겨내는 과정에서 껍질은 피 닥이라고 하며 껍질은 겉에 붙은 흑피 혹은 청피를 몇 번 벗겨낸 후 속에 있는 흰 피를 말린다. 일반 종이의 원료인 목재펄프에 비하여 섬유가 길며 강인하고 보존성이 매우 좋다.
찾아가는 길은 도시철도 1호선 동대신동역 5번 출구를 나온다. 구덕운동장 방향으로 가다가 첫 골목에서 영주동 방향골목길 영주터널이 나올 때까지 도보로 걷는다. 영주터널 나오는 교차로를 건너 대신동 방향으로 400m정도 가면 들머리를 만난다. 만약에 길을 물을 때 닥 밭골이라고 하지 말고 딱 밭골이라고 물으면 주민들은 다 안다.
- 작성자
- 조분자/이야기 리포터
- 작성일자
- 2017-09-04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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