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덕사지의 창건과 ‘당간지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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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북구 만덕동에 있는 ‘만덕사지’는 문화재 지정 부산광역시기념물 제3호는 1972년 06월 26일 지정한다. 즉 만덕사지라고 하는 것은 고려시대 절터였다. 동래 온천동에서 구포로 넘어가는 만덕고개의 서쪽 산중턱에 있는 이 절터의 주위에는 사기寺基(절터)부락이라는 마을이 있어 이전부터 대규모의 절터가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만덕사지는 부산의 진산 금정산 상계봉 아래 자리 잡고 있다. 창건은 1351년 고려 주충정왕 3년이다. 고려 풍수지리설에 근거하여 고려 28대 충헤왕의 아들 석기왕자가 삭발 출가한 국찰國刹(국가 절)이다.
1973년 만덕로가 동서로 관통하면서 주위가 대규모 주택단지로 개발되어 절터의 옛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만덕사지의 내력에 대한 확실한 문헌자료는 없다. 불교사전에 ‘만덕사 경상남도 동래군 우이면 만덕리에 있는 절, 1391년(고려 충정왕 3년) 창건’이라는 근거는 명확하지 않다.
고려 충혜왕의 서자 석기의 머리를 깎아 만덕사에 가두었다는 기사가 있어 이 기록으로 만덕사가 만덕동의 만덕사로 추정될 뿐이다. 만덕사라는 이름을 가진 절이 전국에 다섯 군데가 있어 만덕동의 절터가 만덕사인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이 절터에서 출토된 각종 기와, 석조유물, 주춧돌, 기와의 양식으로 보아 창건 연대는 고려 초 또는 통일신라시대 말일 가능성이 있다. 폐사에 대한 기록은 없다. 조선 초기의 지리지에 기록이 전혀 없으므로 시기는 고려 말일 가능성이 있다. 금동사라는 소암자의 석탑과 석등, 분청사기의 출토로 마지막 폐사는 임진왜란 때로 추정한다.
만덕사지에 있는 당간지주는 만덕사가 창건은 고려 초기에 세워졌다. 당간은 절에서 행사나 의식이 있을 때 당이라는 깃발을 매달아두는 길쭉한 장대이다. 당간을 양쪽에서 지탱해주는 두 개의 돌기둥을 당간지주라고 한다. 만덕사지 당간지주는 한쪽만 남아있다. 2014년에 한쪽을 복원하여 현재의 모습으로 보존한다.
당간지주의 바깥면 가운데 선이 한줄 도드라지게 새겨져 있다. 맨 윗부분은 안쪽에서 바깥쪽으로 둥글게 깎여져 있는데 2단으로 굴곡이 있다. 인근의 범어사 당간지주와 비교할 때 돌을 다듬은 솜씨가 우수하다. 장식수법도 뛰어난 것으로 평가된다.
이 당간지주는 만덕사 ‘국장생표’와 더불어 만덕사지의 역사와 경계를 알려주는 좋은 자료가 된다. 국장생표는 고려시대의 절소유의 논이나 밭에 세웠던 경계선 표시를 말한다. 교통편은 도시철도 3호선 만덕 2번 출구서 도보 10여분 거리에 있다.
- 작성자
- 황복원/이야기 리포터
- 작성일자
- 2016-10-10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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