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일독립운동가 ‘박 차정’ 생가 방문하다.
- 내용
부산광역시동래구 명륜로 98번길 129-10(칠산동)에 위치한 항일여성독립동가이신 박 차정의사(이하 의사)를 만나러 동래고등학교주변 생가를 찾아갔다. 의사는 1910년 5월 8일 동래구 칠산동 319번지(지번주소 복천동 417번지)에서 태어났다.
의사는 1910년 항일독립운동가인 아버지 박 모 씨와 어머니 김 모 씨의 3남2녀 중 넷째로 태어났다. 집안의 위로 두 오빠의 영향을 받아 어릴 적부터 자연스럽게 항일 민족의식을 키웠다. 1925년 동래일신여학교에 입학하면서 항일의식과 남녀평등 사상은 고조되어 일신여학교 동맹휴업을 주도한다. 문학에 소질을 가졌기에 ‘일신’교지에 항일민족의식을 표출하는 문학작품을 남겼다.
오늘날 생가복원은 1929년부터 국내에서 여러 항일운동에 주도적인 역할을 한다. 일제에 의해 옥고를 치른다. 1930년 중국으로 망명하여 항일전투에 직접 참전하는 등 1944년 34세로 순국하기까지 한국여성 독립운동의 거목으로 인정한다. 광복 50주년을 맞아 대한민국건국훈장 독립상을 수상한다. 의사의 숭고한 넋을 기려 생가를 2005년에 복원한다.
의사의 생가 안방에 액자에 있는 한자 네 글자가 눈에 들어온다. 간단명료하지만 네 글자 속에는 의사의 전생을 짐작 할 수 있다. 국충가효國忠家孝 즉 국가에 충성하고 집안어른에게 효도하다, 라는 항일독립여성운동가의 나라사랑과 집안어른에게 효도 짧고 굵게 살았다.
의사가 작사 작곡한 것으로 알려진 조선혁명 군사정치 간부학교 교가 중에서 이런 가사를 발견한다. ...조선에서 자란 소년들이여 가슴에 피 용솟음치는 동포여 울어도 소용없는 눈물을 거두고 결의를 굳게 하여 모두 일어서라 한을 지우고 성스러운 싸움으로 필승의 의기가 여기서 뛴다...일본에게 나라 바친 서러움을 그대로 나타나게 한다.
의사가 남긴 글
개구리소래
천궁天宮에서 내다보는
한 조각 반월半月이
고요히 대지 우에 비칠 때
우리 집 뒤에 잇는 논가온데는
뭇 개구리 소래맛처 노래합니다.
이 소래 들을 때마다
넷 기억이 마음의 향로에서 흘너넘처서
비애의 눈물이 떨어 짐니다.
미지의 나라로 떠나신 언니
개구리소래 듯기 조화하드니
개구리는 노래하건만
언니는 이 소래 듯지 못하고 어뒤갓을까!
박의사는 동래일신여학교(현 동래여고)를 졸업하고, 항일운동 근우회 중앙상무위원 등 핵심운동을 하다가 일경에 검거 후 보속으로 출소하여 중국망명을 한다. 중국 남경에서 약산 김원봉과 결혼을 22세 어린나이로 했다. 생가관람은 무료이며, 매주 월요일은 휴관한다.
- 작성자
- 황복원/이야기 리포터
- 작성일자
- 2016-09-01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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