피란길에서 만난 아이,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유엔평화기념관 특별기획전
- 내용
“오월은 푸르구나~ 우리들은 자란다. 오늘은 어린이날 우리들 세상~”
어릴 적 ‘어린이날’ 노래가 문득 생각난다. 방정환 선생은 왜 ‘어린이날’을 만든 것일까? 그의 호인 소파 (小波) 는 작을 ‘小’ 파도 ‘波’를 써서 잔물결인 작은 파도가 큰 물결을 이루어내길 바람이었다. 일제강점기 우리의 노래와 말을 빼앗긴 시절, 어린이들이야말로 미래의 한국의 독립된 정체성을 유지할 마지막 희망임을 믿었던 소파였다.
그가 어린이 날을 만든 건 불과 22살 천도교 소년회를 조직하면서 부터였다. 1923년에 어린이만을 위한 잡지 『어린이』를 창간하였는데 이것은 우리나라에 아동문학이란 새 장르를 만드는 데 크게 일조한 것이다. 그가 아이들에게 남긴 동화와 동요가 550여 편이라고 한다. 그는 탁월한 이야기꾼으로도 잘 알려져 있다. 그런 기억의 전승과 함께 민족의 얼과 넋을 말해줄 사람들은 오늘날 누구일까?
아이들에게 또한 해방 후 불과 5년의 시간 후 "6·25전쟁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일까요?" 물어본다면, 6·25전쟁 이후 65년이 흐른 세월만큼이나 전쟁을 겪지 못한 이들에게는 낯선 이야기일지 모른다.
유엔평화기념관에서 올해 ‘피란길에서 만난 아이, 지금은 무엇을 하고 있을까?’ 특별기획전을 열었다. 그곳에 아이들에게 기억의 전승을 경험할 시대의 이야기와 현장이 고스란히 담겼다.
서울에서 부산으로 오는 열차를 타야했던 소년 소녀들. 온 나라가 전쟁통에 남으로 남으로 와야 했던 그 외롭고 서글픈 여정을 모형기차를 통해 느끼게 된다. 그 기억의 터널에서는 차디찬 얼음의 형상을 통해 역사적 냉전의 시기 냉기의 세월을 살아남아야 했던 추억을 떠올려 보게 한다.
어렵게 도달한 낙동강 이남, 부산이 그들의 새로운 터전이었다. 기와집도 아닌 오래되고 누추한 판자촌 따닥따닥 붙어 살아가며 40계단 138계단 그 고단한 여정을 오르내리며 우물을 길어가며 매일을 전쟁터처럼 생존해야 했던 아픔이 우물터에 새겨졌다. 당시에 물이 귀해서 ‘밥은 한 그릇은 줄 수 있어도, 물은 한 그릇 주지 힘들다.’는 말이 있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 생존의 틈바구니에서도 학구열은 뜨거워 노천천막에서 한글을 깨치고 산수를 풀고, 공부를 통해 미래를 준비했던 흔적들이 빛바랜 책들과 노트가 말해주는 듯하다. 국제시장을 비롯한 전쟁통 시장은 낯선 이들이 새롭게 정착해야할 숙명적 삶의 치열함을 보여주는 듯하다. 그 곳에서 ‘소’ 그림으로 알려진 천재 화가 이중섭은 부산항 부두 노동자로 막일을 하며 담뱃값의 ‘은지화’에 아이들 그림을 그려 국밥 한 그릇의 밥값으로 내어 주었다고 한다.
그 당시에 불려졌던 노래들,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 정거장’ ,‘비목’, ‘보리밭’, ‘과꽃’, ‘섬집 아이’ 다들 피란시절의 이별과 아픔 그리고 삶의 의지를 노래하며 탄생한 곡들이다.
한국전쟁이 일어나고 많은 예술가들이 부산으로 피란 왔어도 창작활동은 지속되었다. 백영수 화백은 1951년 ‘밀다원’에서 전시회를 열고 방명록에는 화가 김환기, 이중섭, 영화배우 황정순, 만화가 김용환 등의 당대 예술가들의 글이 담겨있었다.
‘어린이날’은 지났지만, 아이들과 함께 하면 좋겠다. 옛 시절의 기억을 더듬는 교육과 만남의 장으로 소파 방정환 선생처럼 도란도란 이야기 나누며 이곳에 들러봄은 어떠할까?
- 작성자
- 김광영/이야기 리포터
- 작성일자
- 2016-05-10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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