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로길로 걸어 당도한 청사포에서 듣는 이야기
- 내용
- 내가 사랑하는 사람
나는 그늘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그늘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그루 나무의 그늘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햇빛도 그늘이 있어야 맑고 눈이 부시다
나무 그늘에 앉아
나뭇잎 사이로 반짝이는 햇살을 바라보면
세상은 그 얼마나 아름다운가
나는 눈물이 없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눈물을 사랑하지 않는 사람을 사랑하지 않는다
나는 한 방울 눈물이 된 사람을 사랑한다
기쁨도 눈물이 없으면 기쁨이 아니다
사랑도 눈물 없는 사랑이 어디 있는가
나무 그늘에 앉아
다른 사람의 눈물을 닦아주는 사람의 모습은
그 얼마나 고요한 아름다움인가
<정호승 시인 ‘외로우니까 사람이다’ 시집 중에서>외로운 사람의 고독한 여행지 중의 하나가 한적한 작은 바닷가 마을이 아닐까 한다. 부산의 해운대 너머 해안가 마을을 끼고도는 동해남부선의 외로운 선로 위를 걷다보면, 쭉 뻗은 일자 길도 있지만 심한 굴곡으로 꺾어지는 길도 나온다. 땡볕에 햇살을 오롯이 맞아야 하는 길도 있지만, 거대한 바위가 벽을 이루어 선선한 그늘아래 걷는 길도 나온다. 인생은 그렇게 철로위를 걷는 것처럼, 레일 위를 달리고 있는 것은 아닐까?
슬로시티(Slow City) 부산의 맛에 취해볼 수 있는 장소 중에 옛 동해남부선 철로에 놓인 청사포를 들러보았다. 해운대 미포를 지나 송정사이 청사포가 위치해 있다. 철로 길과 함께 마을길로 내려가 보면 더 많은 풍경과 이야기를 접하게 된다.
해운대 청사포 마을 당제는 이야기를 품고 있다. 300여 년 전 이 마을이 생기기 시작할 무렵부터 처녀와 총각이 서로 사랑하게 되었다. 이들은 혼인하여 금실 좋은 부부로 살았다. 남편이 고기를 잡으러 가면 아내는 저녁때 바닷가 바위에 앉아 남편을 기다리다가 돌아오면 반갑게 맞았다. 정답게 살던 부부도 이제는 나이가 들어 영감과 할머니가 되었다.
어느 날 영감이 고깃배를 타고 바다에 나갔다가 거센 풍랑에 배가 파선되고 영감은 물속으로 사라졌다. 할머니는 남편이 틀림없이 돌아올 것이라 믿고 지금의 당집 뒤에 있는 큰 소나무 위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며 하염없이 기다렸다. 이미 죽어 바닷 속 용궁에 들어가 있던 영감은 아내가 매일 소나무위에 올라 바다를 바라며 애타게 기다리는 걸 보고 안타까워한 나머지 이 사정을 용왕에게 알렸다. 용왕도 이를 가상히 여겨 자기가 부리는 청사(靑蛇)를 보내 그의 부인을 용궁으로 데려오게 하였다.
오늘날 청사포란 지명은 여기서 비롯된 것이라고 한다. 처음에는 청사포(靑蛇浦)라 하다가 이곳 바닷가의 맑은 모래가 좋아 사람들은 모래 사(沙)자를 넣어 청사포(靑沙浦)로 바꾸어 불렀다고 한다.
청사포의 소나무에 얽혀 있는 또 다른 이야기도 있다. 할머니가 돌아오지 않는 남편을 날마다 기다리다가 지쳐 죽었다. 사람들은 그녀가 올라가서 바다를 바라보며 기다리던 그 소나무를 망부송이라 부르게 되었다. 할머니가 기다리던 그 자리에 소나무가 돋아나서 오늘날의 망부송이 되었다는 설도 있다. 할머니가 죽은 뒤 마을 사람들은 할머니가 남편을 기다리며 앉아 있던 바위를 망부석이라 불렀고, 할머니가 올라가서 기다리던 그 소나무를 망부송이라 부르게 되었다. 그리고 할머니의 애처로운 넋이 서려 있다 하여 그 아래에 당집을 지어 할머니를 제사하게 되었다고 한다.
나무를 깎아 만든 거릿대와 관련한 거릿대장군에 대한 전설도 있다. 마을 앞으로 항해하던 배가 풍랑을 만나 난파되었다. 배를 타고 있던 사람들은 수장되었다. 며칠 뒤 그때 죽은 남자의 시신 하나가 파도에 밀려 지금 거릿대 자리에 당도하였다. 마을 사람들이 모여 의논한 결과 마을이 생기고 나서 처음 있는 일이라 시신을 후하게 장사 지내 주는 것이 마을을 위해 복이될 것이라고 여겼다. 마을 사람들은 이 시신을 걸신이나 잡신의 우두머리로 칭하고 마을을 위해 좋은 일을 해 주는 신이 될 것을 염원한 나머지 후하게 장사 지낸 뒤 손장군(孫將軍)이라 호칭하였다. 그리고 처음 시신이 당도한 곳에 손장군의 제당을 마련하고 나무를 깎아 거릿대를 세웠으며, 손공장군 비석도 세우게 되었다고 한다.
이렇게 청사포라는 지명, 망부송의 전설, 거릿대 장군의 이야기는 다들 외롭게 살았던 사람들의 애닮은 이야기, 갑작스런 죽음을 맞은 사람들에 대한 따뜻한 시선을 파도처럼 잔잔히 들려주고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의 인생인 것이다.
파도를 맞지 않는 등대가 어디 있겠는가? 수없이 부딪혀 오는 파도에도 굴하지 않고, 꿋꿋이 서서 어둔 밤배들이 난파하지 않도록 빛을 비춰주는 등대처럼 우리도 그렇게 살아가야 하리. 등대하나에 또 다른 등대가 곁에 있어 준다면 외로움도 덜하리. 청사포의 붉은 색 등대와 우윳빛 등대가 서로 마주보며 말을 건네는 듯하다.
* 참고자료 : 국립민속박물관 한국민속신앙사전(마을신앙 편)
- 작성자
- 김광영/부비 리포터
- 작성일자
- 2014-07-01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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