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락국 허황후 이야기
- 내용
이윤기의 소설 '뿌리와 날개' 란 소설속에 이런 대목이 나온다
"지금부터 1950여년전 정확히 말하자면 에이디 42년에 김수로라는 분이 한반도 남쪽에다 한 나라를 세웠어요. 이 나라가 바로 한반도의 고대국가, 일본문화에 큰 영향을 미친 가락이지요. 그런데 한국의 고대사를 다룬 역사책은 김수로왕에게 얽힌 재미있는 애기를 전하고 있어요. 무엇인가 하면, 김수로왕의 부인, 다시말해서 가락국의 왕비는 가락사람이 아니라 인도땅 야유타 라는 나라의 프린세스 허 였다는 거예요. 프린세스 허는 도래인이었다는 거예요"
이어서 프린세스 허가 가져온 파사석탑은 닭피를 바르면 피가 마르지 않고 태우면 유황냄새가 난다는 이야기, 10명의 아들 중 한명은 자신의 성을 따서 허씨로 삼았는데 거기서 또다시 인천이씨가 생겨나 가락패밀리를 형성하게 되었다는 이야기, 그리고 이 가락패밀리 중에는 거의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허황후를 닮아 피부가 검고 코가 길고 뚜거운 입술을 가진 자손들이 태어난다는 이야기 등을 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비록 픽션인 소설이긴 해도 거의 사실에 가깝다는 생각이 든다. 그래서 부산에서 경전철만 타면 갈 수 있는 김해 김수로왕릉과 허황후의 능을 한번 찾아가 보았다.
김수로왕릉과 허황후릉은 각기 떨어져 있었다. 허황후릉은 김해시 구산동의 구지봉에서 내려오는 구릉에 위치해 있었다. 능비에는 '가락국수로왕비 보주 태후허씨 릉' 이라 새겨져 있었다.
능 앞에는 그녀가 인도에서 가져왔다는 파사의 석탑이 있었다. 돌 사이에 붉은색이 들어가 있는데 이 돌은 우리나라에서는 발견되지 않고 인도나 중국남부지방에서만 발견된다고 한다. 그것으로 허황후가 인도 사람인 것은 분명하다고 한다.
허황후의 모습을 보려했는데 신위는 김수로왕릉에 가야 볼 수 있다고 해서 김수로 왕릉으로 이동하였다. 김수로왕릉은 산구릉이 아니고 평지에 위치해 있었다. 삼국유사에 의하면 수로왕릉은 대궐 옆에 만들었다고 하니 아마도 지금의 왕릉 옆으로 고대 가락국의 대궐이 있었던 것 같다. 특히 김수로왕은 158세까지 살았다고 하니 요즘 현대인들에 비해 무척 장수했던 왕인 것 같다.
김수로왕과 허황후의 신위를 모신 숭선정에 들러보니 문이 잠겨 있었다. 봄 가을 에 제향을 지낸다고 하는데 그때 이외에는 두분의 모습을 볼 수가 없는 것 같았다. 허황후의 모습을 한번 보려고 했는데 허사가 되고 말아 아쉬웠다.
거의 이천년이 지난 지금도 허황후의 모습을 닮은 가락패밀리들이 생겨난다고 하니 DNA의 위력이 참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인도 여인들 중에는 미인들이 많은데 허황후도 그런 미인이 아니었을까 상상을 해본다.
요즘 우리사회는 다문화 사회라고 한다. 그런데 좀 거슬러 올라가 보니 김수로왕과 허황후도 다문화가정이었다. 가락국과 인도인의 결합이므로. 그렇게 본다면 우리나라의 다문화가정의 역사는 무척 오래되었다는 것을 새삼 깨닫게 된다.
- 작성자
- 정헌숙/부비 리포터
- 작성일자
- 2013-06-18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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