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낮은데로 임한 사진’
- 내용
최민식 선생이 작고했다는 소식을 접했다. 언제까지나 부산 사람들의 모습을 카메라에 담을 분이라고 생각했었는데 갑작스런 비보에 실감이 잘 나지 않았다.
나는 사진에 대해 잘 알지 못한다. 요즘은 디지털카메라로 간편하게 사진을 찍지만 예전에만 해도 카메라는 까탈스럽고 조심스러운 물건이라 쉽게 친하고 싶지 않았다. 그러니 사진에도 별로 관심이 없었다.
그런데 어느 날 선생의 사진을 보면서 가물가물하던 옛 기억들이 환하게 살아나는 것을 느꼈다. 아, 바로 사진의 가치가 이런 것이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그때부터 선생의 사진에 조금씩 끌리기 시작했다.
전시회를 가거나 신문, 잡지 등에서 본 그의 사진들이 머리속에 떠오른다. 국자에 설탕을 넣어 과자를 만들어 먹는 아이들의 모습, 물동이가 나열되어 있는 풍경, 을숙도에서 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 사람들의 모습, 자갈치 시장에서 장사하는 여인들의 모습, 삶이 고단한 노인들의 표정들....
문득 이렇게 그냥 있을게 아니라 책이라도 한번 사봐야겠다는 생각에 서점으로 가봤다. 동네 서점에 그의 책이 있을리 없다. 인터넷으로 목록을 찾아 책 한권을 주문했다. 책제목은 '낮은데로 임하는 사진'.
책속에서 그는 '가난한 사람들을 발견하는 순간에 본능적으로 촬영을 한다'라고 한다. 타고났다는 생각이 든다. 그가 사진의 배경으로 삼은 곳은 주로 자갈치, 부전역, 을숙도, 판잣집, 태종대 등이었다. 또 그는 사진예술의 기본미학으로 사실주의를 말하고 있다. 현실을 직시해 접근해야 참다운 아름다움을 발견할 수 있다는 것이다. 공감되는 이야기다.
책 중간에는 그의 사진들이 몇편 편집되어 있다. 거리에서 국수를 먹는 어린소녀, 아무데서나 단잠에 빠진 어린 소년, 비 오는 날 비닐을 둘러쓰고 생선을 파는 아낙, 단속원에 끌려가는 아주머니, 갈 곳을 정하지 못한 일가족 등등....
그의 사진을 보고 있으면 인간이 지닌 오감이 총출동하는 것 같다. 잊고 있었던 모습을 보니 반갑기도 한데 다른 한편에서는 아프고, 고통스럽고, 안쓰럽고, 슬프고 눈물이 나기도 한다. 이렇게 다양한 인간의 감정을 자극하는 그의 사진이야말로 진정한 예술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
그는 부산이 낳은 부산의 사진작가이다. 부산 사람들의 모습을 누구보다 많이 표현한 예술가다. 그래서 우리는 그를 기억해야 할 것 같다. 지금이라도 아담하고 소박한 그의 전용 갤러리가 하나 있었으면 좋겠다.
- 작성자
- 정헌숙/부비 리포터
- 작성일자
- 2013-02-19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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