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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부산 광복의 역사를 한눈에

부산광복기념관을 다녀와서

내용

내고장 부산에는 어떤 항일 독립운동들이 있었으며 어떤 애국지사들이 있었을까?

신문이나 방송 등을 통해 부분적으로 알고 있는 이야기들도 있지만 좀더 체계적으로 알 수가 없어서 갑갑한 면이 있었는데 민주공원 내의 부산광복기념관에 가보니 그것들을 한눈에 볼 수가 있었다.

민주공원은 처음 가보았는데 생각보다 공원분위기가 좋았다. 영주동의 높은 곳에 위치해 있다보니 공기도 좋을뿐만 아니라 수목들도 우거져서 많은 시민들이 벤치에 앉아 무더위를 식히고 있었다. 공원 앞에는 종탑모양의 충혼탑이 서 있고 뒤쪽에는 4.19광장과 부산광복기념관이 있었다. 중앙공원 조각공원에는 많은 조각품들과 함께 무궁화와 배롱나무의 꽃들이 만발해서 공원의 정취가 한결 아름답게 느껴졌다.

부산광복기념관은 1876년 부산항이 개항한 이후 1945년 8월 15일 광복이 될 때까지 일본의 침략상과 그에 항거한 부산지역 항일독립투쟁의 역사적 유물을 전시해 놓은 곳인데 2000년 8월 15일 개관했다고 한다.

2층 전시실로 올라가 보니 부산독립운동사가 시대별로 잘 정리되어 있었다. 부산항이 개항하고 얼마후 1876년 4월 26일에 일본군함 봉상함의 침투사건이 있었는데 이때 동래부민들이 일본해군함장을 투석전으로 저지했다고 한다. 이것이 개항후 최초의 부산 항일투쟁이라고 한다.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이 전국적으로 번지자 부산에서도 만세운동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만세운동은 1919년 3월 11일 일신여학교 독립만세운동이라고 한다. 그 뒤로 3월 13일에는 동래고보 장터의거, 18일에는 동래범어사학생의거, 29일에는 구포장터 독립운동, 4월 3일에는 부산진거리의 독립만세운동, 4월 5일과 8일에는 기장, 일광, 좌천지역에서 만세운동이 차례로 일어났다. 그리고 4월 10일과 11일에는 명지면의 명호 시장의거와 가덕진의거도 뒤따라 일어났다. 이듬해 1920년 9월 14일에는 박재혁의사 의 부산경찰서 폭파사건이 일어났는데 그 기사가 당시 부산일보의 호외로 전시되어 있었다.

1920-30년대에는 노동운동이 전개되었었던 시기였다. 부산에서는 부두노동자들, 조선방직 근로자들, 삼화고무 근로자들이 임금불만과 민족차별 등의 이유로 동맹 파업을 벌이기도 했었다.

1930년대 이후에는 민족자본 형성기로 이 시기에는 백산 안희제선생의 활약이 큰 것 같았다. 시간이 나면 광복동의 백산 안희제선생의 기념관도 한번 찾아가 보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1940년대에 들어와서는 많이 알고 있는 동래고보의 노다이 사건이 있었고 조선 독립당, 순국당 등 비밀결사운동들이 태동하기 시작하다가 1945년 해방이 된 것이다.

전시실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항일 독립유공자들의 위패봉안실이 있었고 그 옆으로 부산독립운동 유적지를 표시한 그림도 보인다. 강서구, 금정구, 동래구,중구, 남구, 기장군 등 부산의 각 지역마다 항일유적지가 없는 곳이 별로 없다. 그만큼 부산지역의 항일독립운동의 강도가 세었던 것 같다.

학창시절의 역사공부란게 입시위주의 교육이다 보니 정작 내고장의 역사에 대해서는 무지 할 수 밖에 없다. 3.1절이나 광복절을 기해 잘 몰랐던 내고장의 역사를 한번 챙겨보는 것도 의미있는 일이 아닌가 싶다.

작성자
정헌숙/부비 리포터
작성일자
2012-08-20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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