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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흑의 장군이 가장 두려웠다

내용

6월 3일은 음력으로 4월 14일이다. 이날은 420년 전에 임진왜란이 일어난 날이다. 14일 새벽 부산포 우암으로 왜적들이 쳐들어와 부산진성이 함락되고 성의 첨사였던 정발장군과 천여명의 군민들이 희생된 날이다.

정발장군을 모시고 있는 정공단에서는 장군이 전사한 음력 4월 14일 제향행사를 열고 있다. 이날도 공무원, 학생, 인근 주민 등 많은 사람들이 참석했다. 오전 11시에 시작된 제사는 한시간 정도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에서 행해졌다.

단의 한가운데는 정발장군의 비석이 서있고, 왼쪽에는 장군의 막료였던 이정헌의 비석이 서 있다. 정발장군은 검은색의 갑옷을 입고 있어서 흑의장군이라 불려졌는데 왜군이 쏜 조종에 머리를 맞고 전사하였다고 한다. 당시 장군의 용맹이 얼마나 대단했는지 전쟁이 끝난 후 왜군들은 “흑의장군이 가장 두려웠다” 라고 말했다고 한다.

이정헌은 전쟁에 참여하고도 그 공을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가 누군가의 꿈에 나타나 억울함을 하소연 하고 나서야 비로소 제사을 지내게 되었다고 한다. 당시 이정헌과 같은 처지의 사람이 어디 이정헌 한사람뿐이었을까 싶다.

단의 동쪽에는 정발장군의 첩이었던 애향의 비가 세워져 있다. 장군이 전사하자 애향도 뒤따라 자결을 했는데 당시 애향의 나이 18세였다고 한다. 그 나이에 절개를 지키기 위해 스스로 목을 메었다고 하니 전쟁이란게 무엇인지 싶다.

단의 남쪽에는 전쟁에 참가했던 군인들과 백성들의 비석이 있다. 부산진성 전투는 임진왜란이 시작된 첫번째 전투임에도 불구하고 패배한 전투라서 그런지 많이 알려져 있지 않는 것 같다. 좀더 많은 사료들을 발굴해서 부산진성 전투가 제대로 평가되었으면 좋겠다.

단 아래에는 장군의 충복이었던 용월의 비가 있다. 장군이 전사하자 분함을 참지 못하고 적진에 뛰어들었다가 희생되었다고 한다.

제사를 끝내고 정공단 주변을 한번 돌아 보았다. 정공단은 임진왜란 당시 부산진성의 남문에 해당되는 곳이라 한다. 신록이 짙어가는 지금 정공단 근처는 조용하고 평화로웠지만 420년 전에는 얼마나 처참했을까 하는 생각도 든다.

임진왜란이라는 역사를 돌아보다 보면 늘 떠오르는 생각이 있다. 왜 좀더 정치를 잘하지 못하였을까.... 그리고 무능한 임금, 무능한 국가는 결코 백성들의 안위와 생명을 보호해주지 못한다는 생각들이다. 역사로부터 교훈을 얻는다고 한다. 임진왜란이야말로 우리가 백번 천번 되새겨보아야 할 역사의 교훈이 아닌가 싶다.

작성자
정헌숙/부비 리포터
작성일자
2012-06-05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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