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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낙동강나루터, 형산진과 녹산 수문 바로알기

내용

녹산교 이미지
 

부산광역시 강서구 녹산동 형산은 성산마을의 옛 이름으로 서낙동강 하류 동남쪽에 있는 갯마을이다. 서낙동강이 바다로 유입되는 들머리에 해당하는 곳으로 녹산 제일의 마을이다. 녹산은 녹산면(송정·화전·녹산·신호)과 태야면(생곡·구랑·지사·미음·범방)을 병합하여(1914) 일컬은 행정구역이다. 1989년 부산광역시에 편입된 후 이들은 행정 동으로 각기 독립한다. 녹산의 처음 한자이름을 ‘鹿山’이었다가 ‘菉山’으로 고쳤다고 기록하고 있다.

 

조선왕조실록에는 순조 11년(1811)의 염전관계 기사에 ‘명록양도’라 하여 ‘녹도’ 지명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장황한 풍수설 보다 ‘녹도’에서 연유한 지명으로 보아야 옳을 것 같다. ‘녹도’는 오늘날의 성산 앞에 녹산 수문과 맞닿은 노적봉으로 보는 견해가 유력하다. 이곳에 염전이 있을 입지적 조건이 전혀 되지 못하므로, 아마 당시 노적봉을 암초의 조그마한 섬이었을 것으로 추정한다면, 순조의 염전 기록에서 보이는 녹도는 이곳을 기점으로 한 주변 일대를 지칭하는 것으로 볼 수 있다.

  

성산마을 입구 이미지
 

이후의 기록에서 ‘녹산’이라는 지명을 찾을 수 없으나, 순조 32년(1832)에 간행된 ‘경상남도 읍지’ 의 ‘김해부 방리조(金海府 坊里條)’에 ‘菉山面 在府南五十里’라 하여 녹산 이름이 비로소 보인다. 이로 보아 18세기 후반 19세기 초의 어느 시기에 태야면의 남부가 녹산이라는 면 단위로 편제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서낙동강 하류 남해에 유입되므로 강의 유속이 느리고 이에 따라 강과 함께 흘러온 퇴적물이 쌓이면서 지금의 녹산동 일원이 되었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녹산은 지금의 다리를 중심으로 강 위쪽이 성산1구, 강 아래쪽 바다 연안은 성산2구로 편성되어 있다.

 

경상도 사투리에서 ‘형님’을 ‘성님’이라 부르듯이 ‘荊’ 자를 ‘星’ 자로 고쳐서 ‘성산’이라 바뀐 이름일 것이라는 추측도 있다. 

 

‘새벽에 떠나 가덕에 이르니 웅천은 왜적이 움츠려들어 나와서 항전할 엄두도 내지 못했다. 우리 배 가 김해 강(낙동강을 일컬음)하류 독사리 목으로 가고 있는데 우 부장이 변고를 알려 왔다. 모든 배들이 돛을 달고 즉시 달려가 조그마한 섬을 둘러싸고 보니… ’

 

 노적봉 이미지

 

이순신 장군 난중일기에서 ‘독사리목’은 형산진의 이름이며, 조그마한 섬은 임진란 때 노적가리로 위장했다는 노적봉이다. 이 독사리목에서 왜군의 잔병을 전멸시켰다는 역사현장이 형산진이다.

 

그래서 녹산 제2수문공사를 하면서 솔밭공원을 만들어 ‘난중일기’ 의 ‘서해어룡동맹산초목지’(誓海漁龍動盟山草木知)라고 새긴 서맹비(誓盟碑, 1992)를 세웠다. 이렇듯 서낙동강 하구 형산진나루를 거점으로 하여 마을이 형성되기 시작하였을 것으로 보는 것이다.

 

 낙동강 하류 이미지

 

낙동강 둑이 쌓여지던 1934년 이곳에 녹산수문(녹산배수갑문)이 설치된다. 노적봉에서 녹산에 이르는 강 하구를 막은 녹산 수문은 준공 당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큰 개폐식 수문이었다. 수문 곁에 놓인 녹산교(성산다리)는 일본식 이름 ‘시메끼리’라고도 불렀다. 오늘날에도 통용한다.

 

녹산 수문이 건설하면서 마을의 위용이 커지고 광복 후에는 성산장이 5일장으로 크게 번창하였다. 하중도에서 생산되는 채소들이 나룻배을 타고 성산장에 모였다. 채소 수확기에는 성산장이 파시를 이루었다. 그러나 생곡로를 확장하면서 마을의 주택들이 많이 철거되어 성산1구의 동세가 볼품없이 축소돼버렸다. 5일장도 겨우 명맥만 유지하고 있을 따름이다. 1990년대 초에 노적봉에서 명지 쪽으로 제2녹산교가 추가로 개설되어 기존의 제1녹산교와 일직선으로 왕복 4차선의 새 다리가 놓였다.

 

  녹산마을 선착장 이미지 

 

노적봉은 강심(江心)에 솟은 일점 봉우리가 되어 강과 바다를 아우르는 절경지로서 강서 팔경의 제1경 ‘해강일점노적봉’(海江一点露積峰)이지만 1934년 녹산 수문이 가설되기 전에는 육지(성산)에 붙은 산자락 끝 봉이었다. 그러던 노적봉의 산자락을 잘라서 수문 공사하여 강물이 흐르도록 강류를 변경하므로 지금과 같은 섬 모습이 되고 말았다.

 

 능엄사 입구 이미지

 

형산진 나루터는 노적봉의 ‘능엄사’로 들어가는 길목에 있었다. 능엄사 표지판에서 골목으로 접어들면 마주치는 7~8m높이의 큰 바위덩이가 있고 능엄사는 이 바위를 돌아 들어가야 한다. 이 바위덩이의 동쪽은 바다였고 나루터는 여기에 있었다. 지금은 제2수문을 축조하여 주택이 들어서면서 바다는 메워졌지만 이곳바다로 향해 열려 있었고 건너 명지 섬으로 다니는 나룻배 길이었다.

 

일부 자료출처 : 부산민학회 순례지

 

 

작성자
황복원
작성일자
2019-09-0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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