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산복도로에서 본 부산 도심 야경
그 거리엔 어떤 이야기가 숨어 있을까.
엉기적엉기적 버스도 힘겹게 오르는 오르막길.
산복도로는 산 중턱에 자리한 도로라고 해서 지어진 이름인데 덩치 큰 버스도 힘겨운 길인가 보다.
산복도로에는 우리네 다양한 이야기가 숨어있다.
일제강점기 당시 부산항이 개항된 이후부터 해방 후 50~60년대까지, 그리고 급격한 개발이 이루어졌던 70년대와 80년대 굴곡진 역사를 담고 있는 길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 수많은 크고 작은 집들에 불이 켜져 있는 모습.
부산역에서 나와 차이나타운을 거쳐 위로 올라간다.
그러다 보면 168계단이 나온다.
168계단은 윗동네와 아랫동네를 이어지는 지름길인데, 보기만 해도 숨이 가파르다.
그래도 다행인 건 계단 옆에 무료 모노레일이 생겼다는 점이다.
예전에는 숨 가프게 오르던 길을 이제는 단숨에 올라간다.
하지만 우리는 계단을 선택했다. 사실 오후 6시 이후면 운영하지 않기 때문에 선택의 기로가 없었다.
그렇게 길을 오르면 부산역과 부산항이 한눈에 내려다보이는 전망대가 나온다. 가파른 길을 오른 보람이 있다.
△ 산복도로에서 바라보는 부산항 야경.
탁 트인 시야에 기분도 좋아진다. 여행이라고 생각하면 이 가파른 계단도 단숨에 올라올 수 있지만, 생활자라고 생각하면 정말 아찔한 오르막이다.
매일 아침과 저녁, 어른들은 출근과 퇴근길에 이 길을 오르락내리락, 아이들은 등하교를 위해 이 길을 오르락내리락. 비가 오는 날엔 우산 하나 들고, 한 손에 지지대를 잡고 타박타박 오르락내리락. 눈이 내리는 날엔 길이 미끄러우니 더 조심스럽게 오르락내리락했을 길이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노레일에게 새삼 고맙다.
그렇게 오른 덕분에 더 멋진 야경을 볼 수 있다. 산복도로 곳곳에는 버스 정류장이 있기 때문에 버스를 타고 올라와도 좋다. 네모난 박스 속에 새어 나온 불빛, 길을 스쳐가는 자동차의 궤적, 그리고 곳곳에 세워진 가로등이 밤 하늘의 수를 놓는다. 하늘에서 반짝이는 별 보다, 땅에서 반짝이는 삶의 이야기가 카메라에 더 멋지게 담긴다.
찰칵.
공기마저도 가볍게 가라앉는 차가운 겨울, 주머니에 찔러둔 손을 꾸역꾸역 꺼내서 카메라에 순간을 담는다. 찰랑이는 파도처럼 불빛이 도시의 밤을 휘감고 있다. 빛은 없지만, 어둡지 않는 밤이다.
능수능란하게 커다란 카메라를 삼각대에 연결하고 자리를 탁하니 잡는 남성분, 흰색 잠바가 밤에도 눈에 띄는 한 커플, 그리고 먼 지역에서 놀러 온 것 같은 여성분 두 분.
이렇게 몇 명이 전망대를 오고간다. 부산을 이렇게 잘 표현하는 곳이 있을까.
주변은 산이고, 보이는 건 촘촘하게 들어선 집들이고, 그 너머에는 항구다.
김이 모락모락 나는 흰밥과 보글보글 끓는 찌개가 생각나는 그런 밤이다.
새어 나오는 불빛에 그런 이야기가 숨어 있을 것만 같다. 추운 공기에 발걸음을 재촉하는 사람들, 그래서 그런지 왠지 겨울엔 산복도로가 더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