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탠로드를 걸으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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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운대에 가면 두 가지를 즐길 수 있다. 하나는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햇빛을 받으며 몸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선탠이고, 또 하나는 달맞이 언덕에서 달빛을 받으며 마음을 건강하게 할 수 있는 문탠이다. 문탠을 즐길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길이 ‘문탠로드’다.
문탠로드의 나들목.지난 주말 해운대에서는 문탠로드 걷기 행사가 있었다. 오후 6시 해운대 해수욕장에서 집결해서 간단한 몸풀기를 한 뒤 달맞이 언덕으로 향한다. 십여분 언덕을 오르다 보면 달 모양의 무늬가 있는 두개의 기둥을 만나게 된다. 그곳이 문탠로드의 나들목이다.
문탠로드의 숲길에는 수십개의 램프들이 수풀사이에 심어져 있다. 이 램프는 일몰에서 11시까지, 새벽 5시에서 일출까지만 켜진다. 이 램프가 켜짐으로서 문탠로드의 길은 열린다.
훤칠하게 자란 소나무 숲속으로 꼬불꼬불 난 길을 따라 램프들이 일제히 불을 밝히고 그 길을 따라 사람들이 천천히 걸어간다. 주위는 컴컴한데 길 밑에서는 파도 부서지는 소리가 꿈속처럼 들려오고, 길 위로는 둥근 달이 환하게 길을 밝히고 있다. 달기운도 받고, 바다의 기운도 받고, 소나무 숲의 기운도 받으면서 어둠속을 걷다보면 일상의 피로는 어느새 사라지고 문득 이곳이 꿈길은 아닌가 하는 의심마저 들기도 한다.
문탠로드는 5개의 길 이름을 가지고 있다. 설레는 마음으로 달빛을 맞이해 보자는 달빛꽃잠길, 은은한 달빛 속에 마음을 정리해 보자는 달빛가온길, 달빛에 몸을 맡겨 새로운 나를 만나보자는 달빛바투길, 나와 달빛이 하나가 된다는 달빛함께길, 아쉬움에 다시 오길 약속한다는 달빛만남길이다. 모두다 달빛과 한 몸이 되어보자는 정겨운 스토리가 담긴 길 이름들이다.
간이정자와 체육공원에서 잠시 달빛의 기운을 받아들이는 기체조를 하면서 쉬엄쉬엄 사십여분 걷다보면 문탠로드의 종착지인 어울마당이 나온다. 이곳에서는 연주회가 열린다. 문탠로드와 가장 잘 어울리는 '문리버'를 비롯해 '티파니에서 이 아침을', '닥터지바고' 등의 주옥같은 명곡들이 색소폰 선율에 실려 달맞이 언덕으로 퍼져나간다.
어울마당 뒤편의 청사포 바다는 완전히 어둠에 싸여있다. 몇 개의 불빛만이 그곳이 바다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다. 봄날의 하룻밤이 그렇게 가고 있다. 모처럼 만의 오붓한 시간을 가져보고 싶은지 중년부부들이 많이 참가했다. 허망해지는 삶의 길목에서 한순간 추억을 만들어 볼 요량으로 참가했다고 옆자리의 어느 아주머니가 귓가에 속삭인다.
문탠로드는 부산시가 내건 슬로시티의 표본이다. 가족들과 혹은 좋아하는 사람들과 어울려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며 달빛과 파도소리와 바람과 숲 향기를 맡으면서 느림의 미학을 한껏 체험해 볼 수 있는 문탠로드는 해운대 달맞이 언덕만이 빚어낼 수 있는 명품 관광 상품임에는 분명한 것 같다.
- 작성자
- 정헌숙/부비 리포터
- 작성일자
- 2010-04-26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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