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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애환의 영도다리 해체 현장을 가다

다리 밑으로 통통배… 교각만 덩그렇게

내용

1934년 11월 23일 개통 되었던 영도다리가 해체작업에 들어갔다.

사람으로 치면 일제시대에 태어나서 해방과 6.25 전쟁을 겪고 4.19와 산업화를 거치면서 21세기를 십년정도 산 파란만장한 노인이라고나 할까.

지난 토요일 영도다리를 찾아가 보았다. 난간뿐만 아니라 상판까지도 거의 제거되어 코끼리 다리 같은 다리 부분만 덩그렇게 남아 있었다. 77년을 시퍼런 바다 속에 발을 담구고 있던 다리의 모습이 스산하다. 전쟁 후 뿔뿔이 헤어졌던 가족들의 만남의 장소로 이용되었던 영도다리가 민족의 애환을 안고 역사 속으로 사라지고 있었다.

영도다리 하면 생각나는 게 몇 가지 있다.

60년대만 해도 영도다리는 하루에 두 차례, 오전 10시와 오후 4시 그렇게 두 차례씩 다리가 들어 올려졌다. 당시에는 시계가 흔하지 않던 시절이라 시민들은 다리가 들어올려지는 것을 보고 시각을 알기도 했다. 그런 도개기능은 1966년 8월 31일 이후부터는 중단되고 말았다.

또 영도다리에는 전차가 다니기도 했는데 다리가 들어 올려지면 전차와 사람들이 모두 멈추었다가 다리가 제자리로 돌아가면 그때서야 움직이던 기억이 나기도 한다. 전차가 없어질 무렵 전차 요금이 5원이고 버스 요금이 6원이었던 기억도 얼핏 스쳐 지나간다.

또 영도다리 밑에는 유난히 점집들이 많이 있었다. 그 중에서 '봉선화 점집'이 가장 유명해서 일본에서도 점을 보러 오기도 한다는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다. 지금은 주인이 바뀐 채 누군가가 그 자리에서 점을 보고 있다. 문 앞에 신발들이 가지런히 놓여있다.

또 다리 밑에는 허름한 옷차림의 남자들이 삼삼오오 모여 담소를 하거나 낚시를 하는 모습들도 기억나는데 아마도 일자리가 없던 사람들이 시간을 보내기 위해 다리 밑으로 모여들었던 것 같다. 지금은 지나가는 사람 하나 볼 수가 없었다. 예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것은 다리 사이로 통통배가 지나가는 모습뿐이다.

만 77살의 영도다리는 이제 해체되어 새로운 현대식 다리로 거듭난다고 한다. 국내에서는 유일한 도개식 영도다리가 어떤 모습으로 재탄생 할지 궁금해진다.

작성자
정헌숙/부비 리포터
작성일자
2011-02-2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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