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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그림자가 끊어지는 섬…

역사 속의 부산을 얼마나 아시나요? ①

내용

‘부산’하면 어떠한 단어가 생각이 날까? 저는 해운대, 광안리, 용두산 공원의 부산타워, 동래 온천 등이 떠오른다. 하지만 이러한 관광지 등이 많은 이들의 여가활동을 위한 목적으로 존재한 것은 아니다. 따라서 단순한 즐거움으로 우리 지역의 곳곳을 지나치는 것은 등산을 할 때, 마주하게 되는 사찰을 무심코 바라보기만 하는 것과 같은 이치.

나라를 사랑한다는 것은 과거의 역사를 이해할 때에 비로소 가능하다는 말이 있다. 하물며 대한민국의 일부인 부산을 사랑한다는 것 또한 당연하지 않을까? 시민들이 부산의 역사를 알고, 기억할 때에 우리 지역을 더욱 사랑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역사의 흐름과 더불어 부산의 역사에 대하여 알아보는 시간을 가져본다.

 

부산은 해양도시라고 불릴 만큼 바다와 친숙한 관계에 있다. 그래서 부산 시민들은 바다를 항상 접하면서 지내는데, 필자는 친숙하면서도 거리가 있는 영도를 찾았다. 영도는 빼어난 경관을 자랑하는 절벽, 바다를 볼 수 있는 태종대를 찾기 위해 많은 이들이 찾는 곳이다. 하지만 부산의 시민들은 영도라는 지명의 유래가 어디서 출발을 하였으며, 영도가 부산에 속하였기에 고려시대에는 부산의 위상이 현재와는 비교되지 않을 만큼 낮은 위치에 있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영도의 본래 이름은 ‘절영도(絶影島)’이다. 절영도라는 뜻을 풀이해 보면, ‘그림자가 끊어지는 섬’이다 그러면 여기서 그림자는 대체 무슨 그림자였을까? 바로 말의 그림자이다. 당시 영도에는 말이 사육되고 있었는데, 그 말의 빠르기가 얼마나 빨랐던지 달릴 때 그림자가 보이지 않을 정도였다고 한다. 말에서 비롯된 절영도라는 이름은 일제하 우리말 이름으로 지명을 고치면서 ‘절’자를 빼고 ‘영도’라는 이름으로 불려졌다.

오랜만에 찾은 영도에는 ‘절영산책로’라고 하여 해안을 산책할 수 있는 길이 마련되어 있었다. 산책로를 따라 한 걸음 한 걸음 움직이면서 과거에는 말을 키우기에는 최적의 장소임을 느낄 수 있었다.

내륙에서 말을 방목하면 말이 달아날 수도 있고, 주변의 짐승에게 상처를 입을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영도는 섬이라는 특성 때문에 이런 우려는 없었다. 그리고 영도의 말은 가파른 산비탈을 마음껏 뛰어다닌 결과 튼튼한 다리를 가지게 되었음은 당연하다. 또 사람의 발길이 닿지 않은 자연 그대로의 목초를 먹이로 했음으로 영양상태도 좋았으며, 털과 살갗도 바다 바람에 단련되어 윤기가 흐르는 명마의 위용을 자랑했다.

따라서 신라시대에는 이 영도의 말이 모든 사람들에게 귀하게 여겨져서 이 말을 왕으로부터 받은 사람은 시기의 대상이 되기도 하였다고 한다. (부경역사연구소,『시민을 위한 부산의 역사』, 선인, 2003)

후삼국시대에는 후백제의 견훤이 영도 지역을 자신의 세력 하에 복속시키면서 고려의 왕건에게 영도의 말을 선물로 보낸다. 자신의 세력을 자랑하기 위함인 것이다. 이는 부산의 역사에서 불행한 부분으로 작용하였다. 새롭게 등장하는 고려에게 부산 지방은 후백제의 지역이라는 꼬리표로 작용한 것이었다.

태종대는 영도의 일부이다. 숲 속의 나무만을 보기보다는 숲 전체를 보면서 우리 지역의 역사에 대해서도 알아보고, 관광지를 더욱 깊게 이해할 수 있기를 바란다.

작성자
이원석/부비 리포터
작성일자
2011-03-14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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