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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부산의 국제자매도시 ‘아시아의 진주’ 프놈펜을 다녀오다.

내용

국제화시대, 작년 우리나라의 외국을 방문한 사람이 1500만명 정도로 추산된다. 이젠 우리는 그야말로 ‘우물 안 개구리’의 시대를 넘어서, 세계속의 부산, 부산속의 세계를 보아야할 시대가 온 것이다.

우리의 도시 부산이 국제자매도시로 결연하고 있는 도시가 몇 개나 될까? 2011년 1월 현재 20개국의 23개 도시이며, 우호협력도시도 4군데이다. 그 중에 '프놈펜(Phnom Penh)'이 부산과 자매도시를 맺었다는 사람이 많지 않은 것 같다. 프놈펜은 캄보디아 수도로 1920년대 ‘아시아의 진주’로 서방에 알려졌으며 현재 국제공항과 메콩강을 통한 내륙항만을 가지고 있는 교통의 요충지이다.

앙코르와트.

1432년 앙코르에서 도읍지를 옮기며 조성된 오랜 역사를 가진 도시로 전통적 미를 살리며, 현대적 인프라를 갖추기 위해 노력하고 있는 중이다. 캄코시티도 건설중인데, ‘캄보디아-코리아’의 약칭으로, 두 나라가 끈끈한 유대로 묶어짐을 상징하는 신도시가 건설되고 있다.

캄보디아의 심장 프놈펜의 시장이 2008년 9월5일에는 방문하여 양 도시 관계증진을 위한 비망록 작성했으며 2009년 6월11일에는 부산시장, 부산상공회의소회장, 부산시교육청부교육감 등 캄보디아 프놈펜시청에서 자매도시 협정 체결했다고 한다.

이런 도시간 협정이 체결되는 것도 중요하지만, 사실 '민간외교'가 우리에게 더 피부로 와 닿는 것이다. 이번 구정기간 프놈펜공항에 도착하여, 프놈펜의 캄보디아 사람들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호산나학교.

캄보디아 프놈펜공항 근처의 부산출신 한 선교사님이 운영하는 호산나학교를 방문해 보았다. 그리고, 호산나 학교가 10년전에 처음 세워졌다는 ‘써떵미멈츠이’ 마을 또한 방문했다. ‘써떵미멍츠이’라는 이름 뜻이 ‘승리가 있는 시내’라고 하지만, 우리가 만난 그곳은 그 이름과는 너무도 대조적인 가난한 빈민가였다.

빈민가에서.

수상가옥이라는 말도 있지만, 부서질듯 빈약한 나무를 대어 나무집을 지었고, 그 아래는 온갖 오물과 쓰레기가 가득했고, 악취가 입구로부터 코를 찔렀다. 그 위에 사람들이 살고 아이들이 뛰어 다니고, 생활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캄보디아인들이라면 누구든지 좋아하는 ‘끄라우마’라는 다용도 머플러를 선물했다. ‘끄라우마’는 손에는 수건, 머리에는 두건, 허리에는 앞치마, 옆으로 매면 애기띠도 된다고 한다. 이렇게 그들에게 작은 선물을 건네니 해맑은 웃음으로 때묻지 않는 순수한 마음으로 받아들었다. 건기에는 그나마 오물들이 아래로 내려왔지만, 배수시설이 전혀되어있지 않는 그곳에 우기가 되면 거의 마루까지 차오른다고 하는데 그곳의 자녀들에게 푸른 꿈을 심어주는 곳이 호산나학교였다.

캄보디아 아이들.

호산나학교가 그곳에 지어지면서, 유치원이라는 곳을 처음 온 아이들은 3층건물에 처음 올가 보고서 자신이 오른 가장 높은 건물이라고 했다. 그곳에서 자신의 마을 처음 내려다 보며 세상을 보는 눈을 새롭게 갖게 된 것이다.

이젠 호산나학교도 프놈펜의 공항옆으로 옮겨졌고, 아이들도 트럭을 타고 ‘쓰떵미멍츠이’빈민가에서 여기까지 등하교를 한다. 이젠, 호산나학교에서는 배움의 터전에서 내일을 꿈꾸는 캄보디아 아이들이 보인다. 콩나물 시루같은 교실에서 나와 자기네들끼리 즐겁게 놀고 트럭과 봉고가득 주렁주렁 매달리듯 타고 학교를 나가는 아이들이다.

우리에는 아직 어색한 캄보디아말인 크메르와 영어를 섞어가며 이름을 묻고(츠무어 어붜이) 나이를 묻고(아유 뽄만) 사는 곳을 묻는다. 그들과 우리사이에는 어떤 간격이 있는 것일까? 60-70년대 우리나라보다 더 잘 살았던 이 땅이다. 한국전쟁 때는 물자로 우리나라를 지원할 만큼 잘 살았다. 하지만, 이젠 우리가 이 땅에 와서 물자를 나누고 꿈을 나누고 교육의 기회를 나누어 주고 있다. 그들은 우리의 과거의 모습을 공유하고 있기에 더욱 마음이 아픈 땅이다. 언젠가 이들도 더 어려운 나라를 돕는 자리에 서게 될 것이다.

프놈펜에는 우리에게 영화 ‘킬링필드’로 잘 알려진 1975-1979년 대학살의 현장이 있다. 다름아닌 ‘뚤슬랭’감옥인데, 바로 폴 포트 공산정권시절의 아픈 현대사를 고스란히 보여주었다. 1975-1979년 사이에 800만 인구 중 1/4정도를 학살했다는 흔적은 캄보디아 온 땅은 덮은 해골로 상징되고 있다. 감금소와 고문현장, 그리고 그림전시 등이 있었는데 참혹한 아픔의 현장이었고, 이곳에서 살아난 생존자 4명중 한명이라는 생존자가 자신의 잘려나간 손가락이 있는 손을 보여주며 그 아픔의 역사를 방문자들에게 증언하고 있었다.

거리 한가운데 총을 녹여 구부러진 총모양을 지닌 상징탑이 있는데, 폴포트 정권같은 피비린내나는 역사를 반복하지 않고자 다짐하고 있었다.

현재 캄보디아는 남한 1.8배의 땅에, 1400만인구이다. 수도 프놈펜은 한때 200만의 인구가 있었으나 폴 포트 독재정권시절 농촌이주 정책으로 10만정도만 남은 유령도시가 되었다가 현재는 140만 정도 거주한다.

캄보디아 노동부의 통계에 의하면 2006년 이후 한국에 입국한 캄보디아 사람이 7천명가량된다고 한다. 그들이 태국과 말레지아에 해외노동자로 가는 것 보다 한국으로 오는 것이 4배정도의 임금이 된다고 한다. 한국행은 곧 엄청난 외화수입과 가정경제에 엄청난 변화를 주는 것이다. 한국노동자로 입국하기 위해 한국어 시험을 치루는데 600명 모집에 2만4천명이 지원했다는 이야기를 왕궁 옆 대학교에서 한국어를 가르치는 부산외대에서 파견된 박재희 교수를 통해서 들을 수도 있었다. 이렇게 코리안 드림이 캄보디아에는 살아있다. 우리가 머무는 숙소에서도 한국음악이 나오고, 드라마가 나와서 한국인들이 와서 그렇게 틀어 주나 했더니, 이곳은 한류문화에 큰 영향을 받고 있었다. 프놈펜에서 ‘한글학교’를 하시는 부산출신 한 선교사님과의 만남에서도 한국어를 배우고자 하는 캄보디아인들의 열정과 캄보디아 땅에 있는 한인자녀들의 모국어 교육에 대한 열정을 읽을 수 있었다.

태권도복 입은 아이들.

현재 캄보디아는 75%가 30대 이하의 젊은이들이며 매년 10%의 경제성장을 이루며 죽순처럼 쑥쑥 자라가는 젊은 나라이며, 도시 프놈펜에는 특히 젊은이들로 넘쳐나고 있다.

캄보디아를 과일에 비유하자면, 이 땅에서 나는 과일의 여왕이라 불리우는 ‘뚜리안’이라고 감히 말하고 싶다. 뚜리안의 특징은 냄새가 엄청 지독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그 냄새를 뚫고 과일을 맛보면 전혀 새로운 맛을 느끼게 된다. 처음 먹을 때는 적응하기에 힘들지만, 두 번째 부터는 한번 맛본 사람은 뚜리안을 다시 찾게 된다. 킬링필드의 아픈 역사와 OECD의 원조를 받는 가난한 국가지만, 이러한 선입견을 걷어내면 새로운 가능성을 보게 된다. 캄보디아 국기를 본적이 있는가? 국기에는 9-15세기에 동남아시아의 패권을 자랑한 ‘앙코르 제국’의 상징 앙코르 와트가 선명하게 새겨져있다. 그들은 그들의 선조의 화려했던 영광을 재현할 가능성을 그들의 가난 속에서도 소망하고 있는 것이다.

부산도 이런 국제 여러 도시들과의 교류 속에서, 민간외교를 통해 배우고 나눌 것이 많다. ‘우물 안 개구리’를 벗어나 국제화의 물결 속에서 서로를 이해하며, 특히 부산에 있는 캄보디아 사람들과 여러 다문화가족들 외국인 노동자 유학생들에게 따뜻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는 생각이 든다.

작성자
김광영/부비 리포터
작성일자
2011-03-0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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