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이시어… 돌려 들으시어 사랑하소서
역사속의 부산을 얼마나 아시나요? ②
- 내용
밤에는 아직 날씨가 쌀쌀하지만 낮에는 완연한 봄으로 느껴진다. 그리고 따스한 봄 햇살 아래서 많은 가족들은 나들이를 떠나며 그들의 사랑을 하루하루 키워갈 것이다. 과거의 사람들 또한 그들의 사랑을 키웠을 텐데, 그 기록이 우리 지역에 남아 있다는 것을 알고 있는가?
누구나 학창시절 고려가요의 하나인 ‘정과정곡(鄭瓜亭曲)’을 배운 기억이 있을 것이다. 당시 시험을 앞두고 전체적인 글이 오늘날 쓰는 말과는 다르기에 막연히 중요 단어만 외웠던 경험이 있다.
바로 이 곡이 현재 동래 지역에서 쓰였으며, 이 곡의 저자와 관련된 생애를 알아보면 당시 우리지역의 역사를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 따라서 이번 주말 온천천을 산책하던 중 즉흥적으로 그 유적을 찾아보았다.
고려시대에 부산은 후삼국 통일기에 고려 왕조의 통일에 도움을 주지 않은 즉, 후백제의 지역이었다. 따라서 부산 지역의 사람들은 고려 건국에 참여한 다른 지역의 백성들에 비해 신분의 차별을 받는 우울한 위치에 있었다. 그리고 우리 지역은 중앙에서 파견된 관리의 지배를 받지 않고, 토착세력(호장)의 지배를 받았다. 하지만 호장의 가문만큼은 신분의 차별을 받지 않고, 우리 지역에서 기득권을 유지하거나 혹은 관직을 얻어 중앙으로 진출할 수 있었다.
정과정곡의 저자인 정서는 당시 우리 지역에서 큰 영향력을 행사하던 호장(향리)의 집안이었다. 그 가문은 동래 정씨로서 그 영향력을 보여주는 유물, 지명이 현재에도 남아 있으며, 이는 바로 많은 이들이 한번쯤은 지나가보았을 ‘하마정’이다.
이 가문의 후손인 정서는 관직에 진출하여 벼슬은 정5품인 내시낭중(內侍郎中)에 이르렀고, 인종비 공예태후의 여동생과 혼인하였다. 따라서 왕과 동서관계가 되고, 왕은 정서를 무척 총애하였다고 한다. (부경역사연구소,『시민을 위한 부산의 역사』, 선인, 2003)
하지만 인종이 죽은 후, 음모사건으로 인해 동래 지역으로 유배된 것이다. 그리고 이곳에서 참외(瓜)를 심어 스스로 호를 과정(瓜亭)이라고 하여 자연을 벗 삼아 세월을 보내면서 왕을 그리워한 노래를 불렀다.
정서 자신에게는 20여년의 유배생활이 큰 고통이었겠지만, 부산 시민들에게는 천 년 전의 과거를 떠올리며 우리 지역의 역사에 대해 생각할 수 있는 시간을 갖게 해준다. 그리고 이곳에서 바라보는 수영천은 따뜻한 봄 햇살 아래서 마음에 안정을 가져다준다.
비록 천 년의 세월을 지나오면서 정서의 유적은 사라졌지만, 옛날 정서가 참외를 심었던 장소를 역사현장으로 보존하려는 노력이 추진되었다. 토곡에서 연산 1동과 8동을 지나는 길을 ‘과정로’라 하고, 연산 9동 수영천 가까이 있는 학교 이름을 과정초등학교라 하여 남겨져 있다.
앞으로 더욱 많은 이들이 주말에 가족과 나들이를 떠날 것인데, 한번쯤은 수영천을 찾아 우리 지역의 역사를 배우는 것과 함께 ‘정과정곡’을 되새기며 사랑에 대해 생각해보는 시간을 갖는 것은 어떨까?
- 작성자
- 이원석/부비 리포터
- 작성일자
- 2011-03-21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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