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 평민 안용복, 장군이 되다…
역사 속의 부산을 얼마나 아시나요 ③
- 내용
현재 지진 피해를 입고, 방사능이 유출되는 심각한 상황에 직면한 일본에 세계의 이목이 집중되어 있다. 그리고 이러한 상황에서 일본 교과서에서 독도를 일본의 영토로 편입시킨 문제가 다시 화제가 되었다. 독도를 두고서 항상 영유권 시비가 발생하는데, 우리는 독도에 대해 얼마나 관심을 가지고 있는가.
현재의 우리에게 조선시대에 동래에 살던 평민 신분의 어부였던 안용복은 교훈을 주는 인물이다. 그는 17세기의 울릉도 영유권 시비에서 일본 대마도의 농간을 막는데 적극적인 역할을 하였다.
이는 국사교과서에 소개되어 있는데, 우리 지역에서도 안용복의 업적을 기리기 위해서 수영사적공원에 사당을 짓고, 동상을 세워놓았다. 수영을 지나치면서도 막연히 ‘공원이 있구나.’하는 정도로만 생각하고 지나쳤기에 이제야 와서 안용복 장군의 사당과 동상을 보고 올 수 있었다.
울릉도에는 배를 만들 나무, 대나무, 각종 수산자원 등이 풍부하였기 때문에, 일본 어부들이 몰래 들어와 고기잡이를 하기도 하였다. 그러한 가운데 점점 일본 어부들 사이에 울릉도가 명백한 조선 영토라는 생각이 약해지면서 양국 어부들의 울릉도 영유권 시비 가능성이 증가하였다. 이러한 분위기 속에서 안용복이 조선의 울릉도 영유권을 일본 정부에 항의하기에 이른다.
안용복은 1693년(숙종 19) 봄 동래·울산의 어부들 40명과 함께 울릉도로 고기잡이 나갔다가 일본 어부들과 충돌하였고, 일본에 끌려갔다. 그러나 그는 굴하지 않고 일본 관료들에게 납치 행위와 울릉도 침범의 부당성을 따졌다. 그 결과 일본 정부는 울릉도가 조선 영토라고 인정하는 문서를 안용복 일행에게 발급한 것이다.
울릉도가 조선 영토라는 일본 정부의 공식적인 입장에도 불구하고 울릉도 문제에는 항상 대마도주(對馬島主)의 중간 농간이 작용하였다. 대마도주는 안용복 일행을 조선에 인계하면서 일본 정부가 지급한 문서를 탈취하고, “일본 영토 다케시마에 침범한 죄인을 송황하니 조선 정부가 앞으로 조선 어부들의 다케시마 고기잡이를 금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다케시마는 울릉도의 일본 이름이다.
하지만 조선은 다케시마와 울릉도가 동일한 섬이라는 것은 별론으로 하고, ‘울릉도가 조선 영토’라는 사실을 분명히 언급하였다. 조선은 울릉도가 다케시마로도 불리지만 명백한 조선의 영토임을 강조하고, 안용복 등이 조선 영토에서 납치된 사건의 부당성을 항의하였다. 이로 말미암아 일본 정부는 자체 조사에 착수하여 1696년 1월 울릉도의 조선 영속 및 어업권을 공식적으로 확인하였고, 1697년 조선의 울릉도 영유권을 인정한다는 공식적인 입장을 조선에 통보하였다. (부경역사연구소,『시민을 위한 부산의 역사』, 선인, 2003)
우리 지역의 평민이었던 안용복은 우리 영토에 대한 분명한 의식을 가지고 있었다. 이는 현재 고등학교 수업에서 국사가 선택과목으로 대체되는 상황, 독도 문제가 불거지게 되면 그 순간에는 관심을 가지다가 이내 사그라지는 현실을 반성하게 한다. 우리 지역의 주민들은 과거 안용복의 정신을 되새기고, 이어나가기 위해 노력해야 하지 않을까.
- 작성자
- 이원석/부비 리포터
- 작성일자
- 2011-04-07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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