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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비운의 역사를 아는지 모르는지…

내용

부산진 시장 건너편에 조그마한 산등성이가 있는데 그곳이 바로 자성대 공원이다. 시장 쪽에서 보면 상가로 둘러싸여 잘 보이지 않지만 자성대 고가도로 쪽으로 나가니 영가대가 나온다.

나름대로 임진왜란 투어를 계획했다면 가장 먼저 찾아가 보아야 할 곳인데 어쩌다보니 수영사적공원, 동래사적공원에 이어 세번째가 되었다. 자성대 공원은 왜 ‘사적’이란 단어를 붙이지 않는지 궁금했으나 알 길이 없었다.

영가대 앞 공터에서 자성대를 바라보니 18세기에 그려진 동래부사 접왜사도에 나타난 아름다운 자성대의 모습과는 많이 달라 보였다.

자성대의 본래 지명은 부산진 지성이다. 부산진성을 모성으로 한다면 부산진 지성은 자성이 된다는 것이다. 또 달리 자성이란 말은 산 정상에 자성을 만들고 장대로 사용했다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영가대는 임진왜란 후 조선통신사 일행이 길을 떠날 때 해신제를 지내던 곳인데 1614년 권반이 세웠다고 한다. 그 옆으로 최근에 세운 조선통신사역사관이 있다. 2층으로 된 역사관에는 통신사에 관한 자료들이 많이 전시되어 있다.

성의 크기를 가늠해 볼까 싶어 길 쪽으로 걷다보니 동문인 건춘문이 나온다. 성문 안으로 들어가 보니 양쪽으로 좁은 산책길이 조성되어 있다. 위쪽으로 걸어가니 최영장군의 사당이 나타난다. 왜구의 침입이 빈번하다 보니 왜구를 용감히 무찌른 최영장군을 마을의 수호신으로 모시고 있었다고 한다.

체육공원을 지나 넓은 계단을 올라가니 진남대가 나온다. 동문인 건춘문과 서문인 금관루와 함께 1974년에 정화사업의 일환으로 복원되었다고 한다. 옆에는 명나라 장수인 천만리를 기념하는 비석이 크게 세워져 있다.

진남대 근처의 벤치에 올라가 바다를 바라보니 나무가지 사이로 부산항이 보인다. 옛날에는 성문을 열면 바닷물이 성문에 닿았다고 하는데 지금은 매립이 되어 바다가 멀리 보인다. 1592년 음력 4월 13일 그 바다에 700여척의 왜군들이 새까맣게 몰려오면서 7년간의 임진왜란이 시작된 것이다.

공원을 내려오다 보니 성의 흔적들이 눈이 많이 띄었다. 물론 조선의 성이 아니고 왜군들이 쌓은 왜성이다. 임진왜란 당시에는 일본 장군의 이름을 따서 고니시성이라고 불렀고, 명나라 만세덕이 진주할 때는 만공대라고 불렀다고 한다. 임진왜란 후에는 다시 성을 축조해서 부산진 첨사영으로 사용하다가 일제시대 때 도시정비 계획에 의해 성이 철거되었다고 한다.

조선의 첫 관문이기도 한 부산진 지성. 부산진성과 함께 부산을 대표하는 중요한 옛 성인데 비운의 역사를 거치면서 세상에서 사라져 버렸으니 아쉬울 따름이다.

그런 사실을 아는지 모르는지 도로 위로 자동차들이 쌩쌩거리며 빠른 속도로 질주하고 있고, 바닷가에는 육중한 컨테이너박스들이 산더미처럼 쌓여있다.

작성자
정헌숙/부비 리포터
작성일자
2012-02-2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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