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여성교육의 산실
동구 좌천동 부산진 일신여학교를 다녀와서
- 관련검색어
- 좌천동|신여성|교육
- 내용
부산 여성들이 최초로 신여성 교육을 받던 학교는 동구 좌천동에 있는 부산진 일신여학교로 보고 있다.
이 학교는 1895년 호주 장로교 선교회 여자전도부가 좌천동에 초가 한 칸을 마련해 세운 3년 과정의 소학교였는데, 1905년에 지금의 자리에 서양식 건물을 지어 근대 여성교육기관으로서 발전하기 시작했다.
약간 언덕배기에 지어진 학교는 붉은 벽돌로 된 2층 건물인데 100년이 넘은 건물로는 보이지 않을 만큼 견고하면서 현대적 감각을 지니고 있었다. 축대, 돌계단, 앞마당의 나무 등이 좀 오래된 것으로 보인다. 건축사적으로도 1905년에 지어진 건물로는 전국적으로 유례가 없는 서양식 건물로서 원형이 비교적 잘 보관되어 있어서 가치가 높다고 한다.
이 학교에서도 1919년에 독립 만세운동이 있었다. 김반수라는 학생이 혼수로 마련해 둔 옥양목 한 필을 들고 와 밤새도록 태극기를 만들어 3월 11일 밤 8시경에 교사 두명과 함께 좌천동 거리로 나가 독립만세를 목이 터지라고 불렀다고 한다. 부산지역에서 일어난 최초의 만세운동이라 한다.
1925년 부산진일신여학교는 동래 복천동으로 이사를 가 동래일신여학교로 이름을 바꾸게 된다. 그러다 1940년 동래여자고등학교로 개명했으니 지금의 동래여고 전신은 바로 부산진일신여학교가 되는 셈이다. 부산의 여성독립운동가인 박차정 의사가 바로 동래일신여학교 출신이다.
교사 내부의 관람은 평일 오전 9시에서 오후 5시까지만 가능하다 하여 볼 수가 없었다. 아쉬운 마음에 먼지 낀 유리창을 휴지로 닦아 안을 들여다보니 책상 몇 개만 보였다.
학교 맞은편의 부산진교회 뒷뜰에는 이 학교의 초대 교장인 맨지스 여사의 공로 기념비가 세워져 있었는데 그 비를 보니 오랜 세월의 흔적이 느껴지기도 했다.
- 작성자
- 정헌숙/부비 리포터
- 작성일자
- 2012-03-13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