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시대를 넘고, 세대를 넘어 그날을 기억합니다

유엔평화아카데미 ‘전쟁과 평화, 그리고 UN’

내용

6.25전쟁에서 유엔군이 첫 참전한 전투가 무엇일까? 막상 물어보면 딱히 생각나는 것이 없다. 맥아더 장군의 인천상륙작전은 뚜렷이 기억하지만, 유엔군의 다른 참전 작전에 대해 별로 아는 바가 없는 것이 현실이다.

유엔기념관으로, 부산에 생겨진 '유엔평화기념관'과 함께 경기도 오산의 '유엔군 초전기념관'이 있다. 유엔평화기념관 아카데미로 <전쟁과 평화, 그리고 UN>이라는 주제로 초전기념관의 유아름 학예사를 모셔 강연을 한다.

기념관내 세미나실에는 어르신부터 초등학생 아이들까지 다양한 연령층에서, 가족단위로 혹은 개인별로 한국전쟁에서의 유엔군활동에 관심 있는 시민들이 모였다.

1950년 6.25전쟁의 발발로 북한군 절반수준에 불과한 한국군은 3일 만에 서울을 잃게 된다. 북한군은 파죽지세로 남하하며 미군이나 유엔군의 참전 따위는 안중에 두지 않았다. 적어도 그런 개입 전에 모든 전쟁을 종식시키겠다는 계획으로 1번 국도를 중심으로 전차부대를 내려 보냈다.

그런데, 남침개시 10일 만에 유엔군과 첫 대전을 치르게 된다. 그곳이 540개의 돌을 쌓아 그 역사적 중요성을 기려 건립된 초전비가 있는 경기도 오산의 죽미령전투이다. 이 전투로 유엔군의 참전을 알리는 신호탄을 터뜨리며, 낙동강 방어선을 구축하고 반격을 시도하는 시간을 벌수 있게 되었다. 유엔군 파병은 1945년 유엔 창립이후 처음으로 유엔의 기본정신에 입각하여 장유와 평화를 수호하기 연합적으로 행동을 펼친 점에서 역사적 가치를 지낸다.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미8군 제24사단 21연대 1대대와 제52포병대대 포대를 주축으로 편성되었다. 이들은 일본 큐슈에서 훈련을 받던 중 한국으로 파병 6.25전쟁의 첫 유엔참전군이 된다.

1950년 7월 5일 오산 죽미령에서 새벽3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가 북한군의 이동경로를 파악해 미리 진을 쳤다. 아침 7시 수원근처 북한 전차8대의 남진을 발견하고, 105mm 곡사포의 첫 포격을 시작으로 북한군과 유엔군의 첫 전투가 시작되었다.

확연한 전력차이에도 불구하고 치열한 접전을 벌인 스미스 부대는 북한군에 의해 퇴로가 차단되고 방어선이 급격히 붕괴되기 시작하면서 퇴각을 결정한다. 6시간 15분간의 전투를 종료하게 된 것이다.

이 전투에서 스미스 특수임무부대는 540명 중 보병 150명, 포병 31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으며, 북한군역시 약 5,000명 중 127명이 전사하거나 실종되었다.

차후에 스미스중령에게 유엔군초전참여를 감사하며 감사패를 기증하려 하였으나, 스미스중령은 진지를 강타한 총탄과 포탄으로 절규하는 동료 병사들을 치료하기 위해 퇴각명령도 거절하고 끝까지 남아 부상병을 치료하던 위생병들의 모습을 떠올리며, 감사패를 정중해 거절했다고 한다.

참전용사 중에는 16세 18세의 두 형제용사들이 죽음이 있어 더욱 마음을 안타깝게 한다. 이렇게 미 24사단의 장병들이 타국의 낯선 땅에서 새벽이슬로 사라짐을 아파하며 실종한 전우들을 기리며 참전용사 540인의 상징으로 540개의 돌을 쌓아 건립한 것이 초전비이다. 1982년 전적지 개발계획에 의해 교통부와 경기도에서 신초전비를 건립하는데, 스미스부대원의 전투장면을 묘사한 동상과 세 겹의 탑신을 통해 북한군과 맞서 방어한 최초의 성벽임을 표현했다.

강연 중 죽미령전투에 참전한 생존자 10명중, 6명을 직접 만나 인터뷰한 영상이 인상적이었다. 옆의 동료와 마지막 남은 담배를 잘라 나눠피는데 포성소리가 들리고 전투가 시작되자 얼마 안되어 동료의 얼굴에 총알이 2발이나 박힌 끔찍한 상황 속에서 전쟁의 두려움을 느꼈다고 증언한다. 낯설고 힘든 전투였지만, 그래도 그 전투참전이 의미 있었다고 생각하는 건, 지금 한국의 상황이 북한의 상황보다 훨씬 나아지고 발전된 모습에 자신들이 흘린 피가 헛되지 않았다는 담담한 인터뷰도 있었다.

이번 아카데미를 기획한 이정은 경영관리부 담당관은, 한국전쟁에 대해 유엔의 참전을 시민들이 막연히 알고 있지만, 구체적인 실상에 대해 잘 알지 못하는 바가 있어, 10월24일 유엔의 날을 기념하며 개최하게 되었다고 한다.

전투부대 파병국으로 미국, 영국, 호주, 네델란드 등 16개국과, 의료지원국 스웨덴, 인도 등 5개국, 물자지원국으로 과테말라, 미얀마, 이스라엘, 캄보디아, 헝가리 등 39개국, 물자지원의사표명국도 3국이나 있어 전체 63개국이 동참한 국제사회의 협력 속에 이루어진 전쟁이었음을 구체적으로 볼 수 있었다.

작성자
김광영/부비 리포터
작성일자
2015-10-12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