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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부산 지명바로알기 ‘문 고개’의 유래

내용

역사로 보는 남촌은 오늘날 부산남구를 말한다. 고려시대는 동래 현이었다. 그 후 조선시대 부산의 행정구역은 동래부와 기장군, 김해군일부를 포함하고 있었다. 동래부의 행정구역은 읍내면, 동면, 남촌면, 동평면, 사천면, 서면, 북면의 7개 면22개동 79개의 리로 나누었다.

당시남촌 면은 오늘날 남구전역이 이에 해당한다. 오늘날 남구는 남촌면지역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남촌면은 상단(윗 각단)과 하단(아래 각단)으로 나누어 각 8개의 리로 나눈다.

상단은 승정리, 동부리, 서부리, 북문외리, 남문외리, 죽산동, 감포리, 칠포리 등 8개리로 550호의 가구가 산다. 하단은 포이포리, 남천리, 대연리, 석포리, 분포리, 용당리, 감만리, 우암리 등 8개의 리에 가구는 448호이다.

당시의 남촌 면 하단에 편성된 ‘문 고개’를 소개한다. 문 고개(門峴)의 다른 지명은 지게고개라고 한다. 다시나 지금이나 문현 로타리에서 대연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마을을 지겟골(戶谷) 즉 한자로는 지게호자에 고을곡자를 해석하여 지게고개(찌게고개)라고 한다.

지겟골의 유래는 대연동으로 넘어가는 고개는 높고, 산이 양쪽으로 겹쳐 있어서 마치 집밖에서 지게문을 열고 방으로 들어가는 형세와 같아 보인다고 붙인 이름이다.

지게란 지게문의 준말이다. 우리선조들의 옛집인 초가에서는 바깥에서 방으로 들어가려면 작은 문을 당겨서 열고 들어갔다. 이문의 대나무살을 얇게 빗어 문살을 만들고 창호지(한지)로 문살을 바른 외짝문 혹은 양문을 지게문이라고 한다.

이 지게고개는 경사가 급하고 상당히 높은 고개였다. 6.25한국전쟁 당시 미군 434공병부대가 인근 도로를 개수하기 위해 문 고개에서 필요한 토석을 채취해 가면서 고개가 낮아졌다. 1966년 부산시가 이 높은 고개를 착평하여 3년만에 공사를 끝내서 오늘날과 같이 고개를 넘기 편리한 완만한 고개를 만들었다.

그러나 오늘날 정겨운 우리말인 지겟골은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지고 문현이라는 이름만 남아서 부르고 있다. 고개 상단에 남아 있는 좁고 긴 길이 옛 지겟고개 길의 흔적이다. 문현동과 대연동 주민들은 아직도 이 길을 이용하여 넘나든다.

요즘 세상은 개발을 목적으로 산을 깎아 뭉개고 길을 닦는다. 이것을 난개발이라고 한다. 난개발이 모두 나쁘다는 것 아니지만 옛 흔적을 이곳처럼 남겨두고 후손들에게 우리 부산의 옛 모습을 알려주는 것이 역사의 교과서 보다 더 소중하다.

작성자
황복원/부비 리포터
작성일자
2015-10-29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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