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내용 바로가기

다이내믹 부산 이야기리포트

동구이야기! 부산포개항가도 걷다.

내용

01.png



부산포개항가도에 그려진 벽화가 1919년 3월 1일 만세운동의 진원지입니다.

 

​​02.png

부산광역시 동구 좌천동 부산포 개항가도가 관광객에게 눈길을 끄는 골목입니다. 이 길에는 임진왜란 당시 부산을 지키시다가 돌아가신 정공단추녀제단을 비롯하여 부산진 일신여학교가 있으며, 일제압박을 받던 누나들이 191931일 태극기를 손에 들고 만세운동을 한 부산 최초의 거리임을 우리 부산 시민은 알아야 합니다.

 

 

 03.png
정공단은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 10호로 1766년 부산첨사 이광국이 세운 추념제단입니다. 임진왜란 때 나라의 관문을 지키기 위해서 군, 민을 이끌고 궐기하다가 장렬히 싸우다가 성의 함락과 운명을 같이한 부산첨사 충장공 정발장군의 제단으로 부산진성의 남문자리에 설치된 제단입니다.

 

04.png

정문으로 들어가서 오른쪽 제단 중앙에는 정발 장군의 비가 세워져 있습니다. 우측에는 장군의 막료였던 이정헌을 모셨고, 동쪽에는 장군의 열녀 애향을 모시고 있습니다. 서쪽은 여러 군, 민을 모시고 있습니다. 매년 음력 414일 정성으로 제사를 받들고 있습니다.

 

   05.png
임진왜란 당시 첫 접전지는 부산 입니다. 부산진성을 지키던 정장군은 같은 층용의 장군이 십여 명만 되었더라도 장군이 받았던 피해와 고통은 아니었을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장군의 심정을 알 만합니다.

 

 06.png
부산포는 현재의 동구좌천동과 자성대 일부를 말합니다. 당시 조선을 무질서하게 입국하는 일본인들의 통제를 위해 1407년 부산포를 개항하였습니다  

부산 이라는 지명도 성종 즉위년인 1469년 동평현 관내 인근의 가마솥처럼 생긴 산(현재,증산) 이름에 따라 이곳의 원 지명인 부산포富山浦가 부산포 釜山浦로 바뀌게 됩니다. 그래서 현 부산이라는 지명도 이때부터 부른 것으로 추정해 보는 설이 있습니다.

 

   07.png

제단에 묵념을 하고 상단까지 올라가서 장군의 묘비를 둘러보고 내려오는데 정문 양 옆 당시의 부산포를 지키던 깃발이 나부끼고 있었습니다. 제단을 나와서 초량 방향 담장을 낀 오르막길 입구는 일신여학교 독립선언문가벽이라는 푯말 길을 따라 천천히 올라가 보자. 제단을 막고 있는 담장은 당시의 위용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08.png
부산진일신여학교는 부산광역시 지정 기념물 제 55호로, 1905년에 호주선교사들에 의해 건립된 양관으로서 비교적 원형이 잘 보존되어 있습니다. 설립자인 제임스 맥켄지(메겐시) 선교사는 1855년 호주에서 태어났습니다.

 

09.png

1920년 호주 장로교 선교사로 부산에 와서 선교와 교육, 의료 등 봉사활동을 시작하였습니다. 이 때 매켄시 라는 한국 이름을 사용하며, 특히 나환자를 위해 헌신했습니다. 맥켄지 목사는 슬하에 네 딸을 두었는데, 그 중 두 자매 매혜란(헬렌), 매혜영(케서린)1952213일 한국에 의료선교사로 입국하여 부산진교회 유치원을 빌려 1952917일 부산좌천동에 일신부인병원(현 일신기독병원)을 설립 하였습니다.

 

    10.png
비례와 균제미가 돋보이는 훌륭한 근대 건축물로, 부산경남지역 최초의 신 여성교육기관입니다. 3.1독립운동의 깃발을 처음으로 올렸던 독립운동의 산실 입니다. 역사적 교육사적으로 매우 가치 있는 문화재로 평가를 받고 있습니다.

 11.png
오늘날 부산 동래여자고등학교의 전신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건물 정면의 계단과 2층의 난간은 20세기 초 서양식 건물의 모습을 그대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벽돌쌓기와 돌쌓기의 세부 기법이 매우 뛰어나 정성이 가득 담겼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12.png 

13.png 

14.png

좌천역 1번 출입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면 길 바닥에 안내표시를 잘 해 놓았습니다.

 

한편 부산진일신여학교 교사와 학생들이 중심이 되어 1919311일 부산에서 제일 먼저 3.1운동을 일으킨 곳입니다. 당시 만세운동을 위해 310일 태극기 50개를 만들어, 9시에 독립만세운동을 전개하였다고 합니다. 학생들과 교사는 일경에 붙잡혀 가서 각각 1년과 16개월의 옥고를 치렀다고 합니다.

 

 



작성자
황복원/이야기 리포터
작성일자
2016-02-01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의 모든 콘텐츠(기사)는 저작권법의 보호를 받은바, 무단 전재, 복사, 배포 등을 금합니다.
이전글 다음글

페이지만족도

페이지만족도

이 페이지에서 제공하는 정보에 만족하십니까?

평균 : 0참여 : 0

댓글은 자유로운 의견 공유를 위한 장이므로 부산시에 대한 신고, 제안, 건의 등 답변이나 개선이 필요한 사항에 대해서는 부산민원 120 - 민원신청 을 이용해 주시고, 내용 입력시 주민등록번호, 연락처 등 개인정보가 노출되지 않도록 주의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상업광고, 저속한 표현, 정치적 내용, 개인정보 노출 등은 별도의 통보없이 삭제될 수 있습니다. 부산민원 120 바로가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