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군가는 기억을 지우려하고,또 누군가는 그 기억을 지키려고 한다.
- ‘우토로, 남겨진 사람들의 노래’ 특별전
- 내용
일본 속의 한국, 대양위의 섬처럼 한국인 마을이 존재한다. 그들은 한글을 가르치고 말하며 한국인의 얼과 넋을 전수해 간다. 일제강제동원역사관 개관 1주년 기념 특별전으로 ‘우토로, 남겨진 사람들의 노래’전을 방문했다.
우토로 주민들에게 강제퇴거라는 날벼락이 떨어진 것은 1989년이다. 닛산차체로부터 소유권을 인수받은 서일본식산이 강제퇴거를 요구하며 마을은 중장비와 트럭이 들이 닥쳤다.
“집을 헐 작정이며 나를 먼저 깔아 죽여야 할 것이다.”
주민들은 마을 입구에 누워 항거했다. 그렇게 지며가던 마을이 2000년 일본 대법원에서 퇴거가 확정되면서 오갈 데 없이 쫓겨날 처지가 되었다.
이 마을의 역사는 현대사와 흐름을 같이한다. 조국해방의 기쁨도 잠시, 우토로 조선인들은 비행장 공사중단과 더불어 식량배급이 중단채 된 방치되었다. 고향에 아무도 남지 않아 돌아갈 곳 없는 막막한 사람들, 전염병 등으로 당분간만이라도 일본에서 입에 풀칠이라도 하고자 남은 이들이 있었다. 일본정부와 사회적 차별, 조국의 무관심속에서도 의지할 곳 없는 조선인들의 귀중한 삶의 터전이 되었다.
1941년 세계 2차대전 중이던 일본은 우리나라 사람 1,300여명을 강제 동원하여 이곳에 비행기장 건설을 건설에 나섰고 패전이 된 후 임금을 제대로 받지 못한 강제 징용된 우리나라 사람들이 귀국을 하지 못하고 정착하며 살게된 곳이 우토로다.
우토로 마을의 위기는 토지소유권을 얻지 못한 주민들이 이곳을 개발하려던 토지소유주 기업의 강제명령을 받고 퇴출 위기에 놓였는데 민간의 모금과 우리정부의 도움으로 일부 토지를 구입 할 수 있었다. 우토로 문제는 불법적 식민지배와 전후 보상에 관한 역사문제이자 거주권에 대한 인권문제다.
사람살기에 열악한 상습침수지역, 일본인들에게 ‘슬럼’취급을 받으며 무시와 박해의 대상이 된 조선인들. 우토로 마을 같은 조선인 집단 거주지역이 일본 전역에 걸쳐있다. 일본인들은 조선인에게 집을 빌려주지 않고, 낮은 임금을 받던 조선인들이 감당하기에 집값은 터무니없이 비싸 이런 집단 거주지가 생겨난 것이다.
3대를 살아온 사람들의 사진, 마을 곳곳에 새겨진 삶에의 강한 의지, 한국인으로서 자존심을 지키기 위해 살아온 흔적들, 이 모든 것을 특별전을 통해 보며 아무것도 할 수 없는 동포로서의 답답함이 있다. 아직도 해결되지 않은 현대사의 씁쓸한 뒷담장의 모습을 이렇게 사진전으로라도 남겨 역사적 진실을 고하고자 한 관계자들과 작가의 정신에 고개를 숙일 뿐이다. 2월26일이 특별전 마감일이다. 그전에 역사교육의 산 현장으로 일제강제동원역사관을 한번 찾아 봄도 좋을 것이다.
우토로 마을 벽면에 새겨진 글귀로 그들의 심정을 대변하고자 한다.
“많은 눈물과 많은 고통과 많은 슬픔과 많은 웃음과 많은 기쁨과 많은 고삐가 우토로에서 생겼다.
앞으로는 웃음과 기쁨만 남기를, 앞으로도 고삐 넓혀지기를...”
- 작성자
- 김광영/이야기 리포터
- 작성일자
- 2017-02-08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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