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이야기 원도심 ‘광복로’ 변천사.
- 내용
현재의 광복로 일대부산시중구 광복로 명칭은 조선후기 초량왜관 시절 ‘엥천(중천)’이라는 아주 작은 하천이 있었으며, 개항 후 인구가 늘어나고, 하천 주변으로 주택과 상가가 밀집하면서 오염이 심해지고, 거리도 복잡하므로 1880년대 이곳에 있는 하천을 복개하였다. 복개된 하천은 도로로 편입되었고 이곳을 일제강점기 ‘장수 통’이라 불렀다. 해방 후 광복 로, 라고 명칭을 바꾸면서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곳 광복 로는 부산의 상업중심지로서 요리점, 극장, 백화점 등과 같은 새로운 문화의 전시장이 되었다. 그 후 부산의 최대번화가가 되었다. 1917년에는 동래온천을 왕래하는 전차가 이곳을 거쳐 구덕운동장까지 연결되었다.
광복 로는 해방 후 일본으로 강제 동원되어 갔던 귀환동포, 한국 전쟁 피란민들의 재활의지를 불태우는 공간이었다. 문화인들이 광복 로 주변의 술집이나 찻집에서 전쟁의 아픔을 문학과 예술작품 공간이기도 하였다. 근대는 매년 겨울이면 ‘겨울 빛 트리축제’가 열리고 있다.
초량왜관 시절 40여 년간 부산요가 있었고, 개항 후 1880년부터 1936년까지 부산부립병원이 위치하던 곳이다. 당시 조선다기는 일본인들은 대마도를 통해서 조선다기의 수요가 급증하자 왜관 내 부산 요를 일본인들이 직접 제작하여 일본으로 가져갔다. 부산 요는 1717년에 폐쇄되었다.
당시 초량왜관은 부산중구 남포동, 광복동, 동광동, 대청동 지역에서 조선후기 우리나라와 일본 사이에 외교와 무역기능을 담당하는 국제교류 특별구역이었다. 1678년 수정동에 있던 두모포 왜관이 좁고 무역하기에 불편하여 이곳 광복동으로 이전을 하였다. 당시 대마도사람 100~500여명이 상주하였다.
광복 로 주변 중앙동과 남포동일대는 원래 바다이었다. 개항 이후 용두산주변에 인구가 늘어나면서 주거 공간이 부족하였다. 무역량이 증가하고 선박 정박이 어려움을 겪어서 남항을 매축을 하였다. 매축은 1902년부터 11908년까지 두 차례에 거쳐서 진행하였다. 오늘날ㄹ 중앙동이 매축이다.
현재 롯데 백화광복점이 있는 장소가 62년 동안 부산시청사가 있었던 곳이다. 이 주변은 원래 용미산이라는 낮은 야산이 있었다. 1914년 부산부로 행정구역을 개편을 하면서 용미산을 착평하고, 1936년 3월에 부산부청사를 이곳으로 옮겼다. 해방 후 부산시청 건물로 계속 사용하여 오다가 1998년 롯데에 매각하고 연산동으로 부산시청은 옮겨 갔다. 롯데백화점 광복점이 영업 중이다.
- 작성자
- 조분자
- 작성일자
- 2026-10-13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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