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韓)·영(英) 최초로 만난 용당포 신선대(神仙臺)
신선 발자국서 지명 유래…정상서 바라본 경관 황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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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광역시 남구 용당동에는 신선대(神仙臺)라는 아름다운 절경이 있다.
한(韓)·영(英) 첫 만남 용당포 신선대 (神仙臺) 기념비신선대(神仙臺)는 부산 남구 용당 해안의 맹뭍(물 흐름이 빠른 곳이란 의미) 끝에서 옛 동명목재와 솔밭이 자리했던 현 신선대 부두까지의 해안 절벽과 산정을 총칭한다. 신선대는 해운대, 이기대, 태종대, 몰운대와 함께 부산 5대로 꼽히며, 1972년 부산시 기념물 제29호로 지정됐다.
신선대(神仙臺) 소개 표지판
신선대(神仙臺) 정상 무제등 표지석
해식애와 해식동, 병풍처럼 선 기암절벽이 아름다운 경관을 자랑하는 곳으로 알려진 부산 신선대(神仙臺) 지명은 이곳 산봉오리의 무제등이란 큰 바위에 신선의 발자국과 신선이 탄 백마의 발자취가 있다 하여 붙여졌다고 한다. 옛날 신선들이 신선대에서 주연을 베풀 때면 풍악소리가 용당포까지 들려왔다고 전해지고 있다.
신선대(神仙臺) 입구 표지판신선이 내려와서 풍류를 즐길 만큼 경치가 빼어나게 아름답다는 의미를 지닌 신선대(神仙臺)는 이곳 부산 용당포를 비롯, 거제, 속초, 상주, 서산, 광양, 담양, 서울, 여수, 원주, 보은, 신청, 청송, 부안 등 전국에 수 없이 많다.
신선대(神仙臺) 주변 동백꽃또한 이곳 신선대는 동백, 보리수나무 등이 울창하게 우거져 있으며 신선대에 인접한 바다에 파도가 치면 자갈이 구르면서 아름다운 음악소리처럼 느껴진다고들 한다. 신선대의 정상인 무제등(無際燈)에 올라서면 오륙도와 영도 등 부산항의 내항과 외항의 아름다움을 조망할 수 있다.
무제등(신선대 정상)에서 본 부산항 아름다운 풍광
신선대(神仙臺) 정상에서 볼 수 있는 부산항 절경
신선대는 우리나라 최초 영국범선이 방문하여 역사적으로 조선과 영어가 처음 만난 의미 있는 장소이다. 18세기 북태평양을 탐사중이던 영국의 함선 프로비던스호의 부속선인 프린스 윌리엄 핸리호는 1797년 (정조 21년) 10월 13일당시 프로비던스호의 함장이며 프린스 윌리엄 핸리호를 타고 방문했던 윌리엄 로버트 브로턴 함장이 편찬한 ‘북태평양 항해기’에는 손짓 발짓으로 채록한 우리말 38단어와 함께 최초로 부산항(용당포)이 서양세계에 소개되었다.
한(韓)·영(英) 최초로 만난 기념비 안내
한·영 만남 기념비에 새겨진 그 당시의 파란눈 서양인에 비치 우리(조선인)들의 일상이다. <부로우틴 함장의 항해일기 중에서~>
한(韓)·영(英) 최초로 만난 용당포 신선대(神仙臺) 기념비
“ 이른 아침 낯선 우리 배를 보기위해 호기심에 찬 남자, 여자, 어린이들을 가뜩 실은
작은 배들이 우리 배를 둘러 봤다. 그들은 누볐거나 이중천으로 된 흰 무명천의 헐렁한 상의와 바지를 입고 있었다. 그리고 그들 중 일부는 크고 헐렁한 두루마기를 입고 있었다. 여자들은 속바지위에 짧은 치마를 입고 있었고 남녀 모두가 흰 무명 버선과 볏짚으로 만든 짚신을 신고 있었다. 남자들은 머리카락을 정수리에 묶어 상투를 틀었고 여자들은 머리카락을 꼬으고 땋아서 머리위에 올려 놓았다.
우리 배에서 가까운 남쪽에 있는 산(신선대)으로 올라가 방위각을 재기 위하여 뭍으로 나갔다.
정상에서 우리가 볼 수 있는 시야는 매우 넓었고, 항구의 모든 부분을 명확히 볼 수 있었다. 이 산의 강한 자력으로 인해 나침판의 바늘이 정확한 방향을 가르키지 못하고, 항상 북쪽이 아닌 동쪽을 가르키므로 방위각 측정은 소용이 없었다. 나는 가파르며 높고 튀어나온 이 산이 우리 나침판 바늘에 방향을 주었기 때문에 지도상에 이 산의 이름을 “자석의 머리”라고 표기하였다.”
또 그 당시 상황을 경상도 관찰사 이형원은 다음과 같이 적어 조정에 올렸다. (조선왕조실록)
“이상한 나라의 배 한척이 표류하여 동래 용당포 앞 바다에 닿았습니다. 그 사람들은 모두 코가 높고 눈이 파랬습니다. 그 사람들은 그들에게 국호와 표류하여 닿게 된 연유를 한나라, 청나라, 왜국, 몽고의 언어로 물어보았으나 모두 알지도 이해하지도 못했습니다. 붓을 주어 글로 써보라고 하였더니 글자의 모습이 구름이 낀 산과 같았고 그림을 그려도 알 수가 없었습니다. ”
개방되지 않고 외국과 교류가 없어 언어 소통이 안된 당시 우리나라의 상황을 남긴 기록들이다. 신선대 무제등 정상에는 한·영 만남 기념비가 있다.
1997년에는 엘리자베스 2세여왕과 함께 한국을 방문한 앤드류 왕자(요크 공작)가 한국과 영국이 만난 지 200년을 맞이하여 신선대 무제등 공원에 기념식수를 하고 ‘한·영 만남 기념비’를 세웠다고 한다
신선대 산봉우리에 있는 무제등이란 큰 바위에는 신선의 발자국과 신선이 탄 백마의 발자취가 있었다고 전해지고 있으며, 신라시대 대 문장가인 고운 최치원이 신선대의 경관을 즐기면서 바위에 신선대라는 진필각자를 남겼다고 전해오는데 오랜 세월의 풍상속에 마멸되어 그 흔적을 알 수가 없고, 무제등에는 포 방열 진지가 있고, 신선대 전망대 표지판이 있었다
신선대(神仙臺) 정상 유적들이곳 무제등은 해발 170m, 백운포 까지는1.6km, UN기념공원까지는 3.2km라는 자그마한 표지석이 있다.
이에 부산 남구에서 신선대를 널리 알리고자 무제등 공원을 조성하였으며, 무제등 소공원은 과거(1995년~2005년) 쓰레기 소각장이 운영되던 곳으로 각종 쓰레기를 태워 매연을 내뿜는 혐오시설에서 주민들이 휴식하고 아름다운 경관을 감상 할 수 있는 공원으로 탈바꿈 하였다.
무제등 소공원신선대 주변에는 이기대, 오륙도, 부산 박물관과 유엔기념공원 그리고 당곡공원, 문화회관, 동명불원 등 시민의 정신적 지주가 되고 또한 관광자원이 되고 있는 여러 시설들이 산재해 있다. 신선대의 정상에서 바라다 보이는 오륙도와 조도 (한국해양대학교 소재) 그리고 맑은 날에는 수평선 멀리 나타나는 대마도의 전경을 관망할 수 있는 것으로 말미암아 부산의 명승지로 손색이 없는 곳이다. 신선대는 부산항의 천연 전망대다.
신선대 정상에서 본 오륙도
무제등(신선대 정상)에서 본 부산항우리의 소중한 역사의 현장 신선대!! 가까이 있으면서도 자주 찾지 못했던 신선대!! ‘부산이라 좋다’ 독자님들 한 번 찾아주셨으면 한다.
김동균(金東均)
- 작성자
- 김동균
- 작성일자
- 2025-05-06
- 자료출처
- 부산이라좋다
- 제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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