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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내믹 부산 제202012호 기획연재

원도심에 생명력 불어넣은 백 마리 나무 물고기

인문학 카페 백년어서원

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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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어서원은 `백년어(百年魚)-백년을 헤엄쳐갈 백 마리의 나무 물고기'라는 의미를 담았다. 백년어서원에는 비움, 나눔, 열림, 누림, 풀림의 의미를 백 가지 언어로 새겨진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들 모양이 벽과 공간 곳곳에 장식돼 있다. 


글·김진 / 사진·권성훈



어른들도 종종 길을 잃는다. 바쁜 일상을 충실히 살아내고 있지만, 문득 이것이 옳은 길인가, 잘 살고 있는 것인가 의문이 들 때가 있다.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고민을 하게 된다. 멈추고 성찰을 통해 다시 길을 잡아가고 싶지만, 두려움이 길 앞에 우뚝 선다. 깜깜한 어둠 속을 헤매는 느낌. 이때 이대로도 괜찮아, 지금까지 잘 살아왔어, 하고 누군가 위로를 건네면 다시 힘이 솟구친다. 그 위로를 들려주는 것은 타인일 수도 있고, 자기 자신일 수도 있다. 타인의 위로는 일시적이지만 자기 자신이 위로하는 것은 더 힘이 세고 오래간다.
"부자 되세요"라는 광고 카피를 처음 듣고 낯 뜨거워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대놓고 "대박 나세요"라는 말을 하는 시절이 되었다. 천박하다는 것은 욕망을 쉽사리 드러낸다는 것. 어느 때부터 사회는 욕망을 드러내는 것을 솔직함으로 포장한 채 천박해졌다. 누군가는 브레이크를 걸어야 했고, 물질이 인간보다 우선되는 사회에 대한 반성이 일기 시작했다. 인문학 열풍은 그렇게 시작됐다.
인간의 본질과 인간다운 삶에 대해 돌아보고, 물질의 바다에 섬으로 떠돌던 사람들의 관계를 회복하고, 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사슬처럼 연결된 생명에 대해 탐구하는 삶. 깨어있어 성찰하고, 삶을 통찰하는 힘, 그리하여 스스로 삶의 주체가 되는 단단함을 얻는 것. 당당하게 자신을 사랑하고 자기 길을 가는 것. 그것이 인문학의 힘이다.


부산 심장 원도심에 대한 애정
1980년대 초, 서부 아프리카의 사하라, 스페인 카나리아섬에서 10여 년 머물렀고, 대전에서 10년 가까이 지내면서 틈틈이 여행길에 오르던 김수우 시인이 고향 부산으로 돌아온 건 20여 년 만이었다. 부산 영도에서 나고 자란 시인은 원도심을 보고 안타까운 심정이었다. 40계단을 중심으로 한 원도심은 피란 시절에 가난한 예술가들이 예술을 꽃피우던 곳, 신문사와 방송사가 있던 곳, 지금도 인쇄기 돌아가는 소리가 들리는 부산 문화의 중심이었다. 부산의 심장이나 다름없던 그곳은 쇠락해 폐허나 다름없었다. 비탈에 몸을 기대어선 `사람의 집'들은 세월의 더께에 허물어지고, 사람이 떠난 집은 생명력을 잃고 있었다.


원도심의 쇠락은 신도시의 번영을 뜻했다. 해운대 신도시로 새로운 건물이 들어서고, 자본과 사람이 모여들었다. 예술과 문화, 인문학 등 많은 것들이 신도시에 집중됐다.

도시는 그 자체로 하나의 역사이다. 근대 이후 부산이라는 도시의 역사 중심지인 원도심이 버려진다는 것은, 원도심과 함께한 역사가 사라진다는 의미였다.
김수우 시인이 인문학 카페를 원도심에 열게 된 것은 그 때문이었다.
"인문학 카페를 하려면 경성대나 광안리 쪽으로 가라. 버려진 도심에 누가 공부를 하러 오나."
주변 사람들의 충고에도 김 시인은 꿋꿋이 원도심을 택했다. 자본주의의 `서자'가 된 쇠락한 도시 사람들의 삶에 대한 위로와 치유가 목적이었다. 거기에는 원도심을 되살리자는 의미도 내포되어 있었다.


작가로서의 고민도 한몫했다. 많은 작가들이 책을 펴내지만, 책이 팔리지 않는 현실에 대한 고민이었다. 작가들은 좋은 글을 쓰는데 독자들은 왜 외면할까? 혹시 작가의 삶이 문학과 괴리가 있는 건 아닐까. 문학과 예술의 본질이 삶의 위로와 치유라면, 지금처럼 행복해지기 어려운 시기에 왜 사회로부터 공감 받지 못할까. 김수우 시인은 이 문제에 대해 공부하면서 고민해보자는 생각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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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문학 향기 가득한 백년어서원.


백년을 헤엄쳐갈 수평의 물고기
1년 여의 준비 끝에 원도심 골목 안 붉은 벽돌 건물 2층에 인문학 카페 `백년어서원'을 열었다. 아끼는 책들과 가구들을 내어왔다. 그리고 카페의 정체성에 대해 고심했다. 비움, 나눔, 열림, 누림, 풀림의 의미를 백 가지의 언어로 정리했고, 친구인 조각가 윤석정 씨가 백 마리의 물고기로 조각을 해주었다. 자유롭게 헤엄치는 물고기들 모양으로 벽을 장식했다. `백년어(百年魚)-백년을 헤엄쳐갈 백 마리의 나무 물고기'라는 이름은 그렇게 탄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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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년어서원.


필연일까. 물고기가 된 나무도 사연이 남다르다. 애초 윤석정 조각가가 낡은 집을 헐고 남은 목재들을 땔감으로 구입한 것이었다. 그 나무들을 아궁이에 던져놓고 타오르는 불꽃을 바라보던 작가는 붉은 숯덩이가 말을 하는 물고기와 같이 보였고, 그는 그 나무로 물고기 조각을 시작했다. 친구로부터 물고기 조각 이야기를 들은 김수우 시인은 생각했다. 버려진 목재가 재로 돌아가 물고기로 살아난다는 것은, 버려진 것이 새롭게 태어나고 잊힌 것이 다시 기억되는 것이었다. 나무가 수직으로 서서 집으로 백년을 살고, 다시 수평의 나무 물고기로 태어나는 것. 근원을 기억하고, 본래로 돌아가는 것, 수평을 추구하는 삶은 김수우 시인이 생각하는 인문학의 가치와 맞물렸다.


2009년 4월 인도철학 특강을 시작으로 `백년어서원'은 1년에 300∼400강의 강좌를 기획했고 진행했다. 독서와 사유, 글쓰기를 통합한 인문학을 지향했다. 단지 강의를 듣는 데 그치지 않고 사유와 실천을 끌어내기 위해서였다. 동양고전, 서양철학, 미술, 함석헌과 신영복 등 우리 사회의 스승이 되는 분들의 책 읽기 모임, 소설과 동화 쓰기 모임 등 다양한 모임들도 생겼다. 1년에 4번 정기간행물도 발간하고, 읽고 공부한 사람들이 모여 한 주제를 가지고 글을 써 `개똥철학' 시리즈를 냈다. `공존' `돈' `장소' `자유' `길' `공부' 등을 주제로 6권을 낸 `개똥철학' 시리즈는 인문학 공부의 `개똥벌레'와 같은 결실이었다.


"인도의 현자 스와미웨다는 `촛불은 부드러운 미풍에도 꺼진다. 그것은 바깥에 있는 것에 의해 점화되기 때문이다. 개똥벌레는 폭풍에도 빛을 잃지 않는다. 그 빛이 자기 안에 있기 때문이다'라고 했습니다. 인문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바로 개똥벌레처럼 어떤 바람에도 꺼지지 않는 빛을 스스로 내기 위한 것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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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에 4번 정기간행물도 발간하고, `개똥철학' 시리즈를 냈다. `공존' `돈' `장소' `자유' `길' `공부' 등을 주제로 6권을 낸 `개똥철학' 시리즈는 인문학 공부의 `개똥벌레'와 같은 결실이었다.



원도심, 예술과 인문학의 거리로 살아나다
지금 원도심에는 `또따또가'(프랑스어 똘레랑스와 `따로 또 같이' 활동한다는 우리말에 한자 가街를 합성한 말)라는 예술인들을 위한 작업공간이 있다. `또따또가'가 만들어진 데에는 `백년어서원'의 공도 크다. 부산시는 공동화되어 있는 구도심에 대한 고민이 많았다. 마침 인문학 강좌에 관심을 갖고 카페에 온 구청 담당자에게 아이디어를 제공했다.


"어느 나라든 역사와 문화가 오래된 도시에는 기차역에서 10분 거리에 반드시 극장과 책방이 있어요. 여행자들이 다른 나라에 여행을 가면 구도심을 반드시 찾습니다. 그 나라의 문화를 보기 위해서지요. 하지만 우리나라는 구도심이 사라지고 도시는 기억상실에 걸려 있어요. 이 낡은 건물을 예술가들에게 작업할 수 있는 공간으로 저렴하게 임대해주면 어떨까 의견을 제시한 거죠."


부산시는 원도심 재생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그 아이디어를 적극 수용했다. 많은 예술가들이 또따또가로 입주하기 시작했다. 거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작가가 살아났고, 문화가 살아났고, 공간이 살아났다. 원도심에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1995년 `시와 시학'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등단한 김수우 시인은 최근 시집 `몰락경전'을 비롯해 십 수 권의 책을 펴낸 중견시인이다. 백년어서원과 함께한 10년, 하루 7∼8시간 카페에서 사람들과 부대끼다 보면 몸이 고달픈 때도 있었다. 무엇보다 본인이 작품을 쓰는 시간마저도 녹록치 않았다. 다행인 것은 인문학 카페를 자발적으로 이끌어주는 사람들이 생겨났다. 그들을 백년어서원에서는 `셀리아'라고 부른다. 체 게바라와 함께 쿠바 혁명을 도모한 피델 카스트로의 연인이자 혁명전사의 이름이다. 인문학을 위한 전사들인 셈이다. 또한 `가리올'이라는 후원회도 있다. 그들은 함께 멀리갈 수 있는 바탕이다.


지나온 길 십 년 백년어서원, 앞으로의 계획은 무엇일까. 김수우 시인은 답한다. 더 이상의 계획은 없다. 그저 함께 모여 읽고 쓰고 사유할 뿐, 그리하여 내면의 단단함을 다지는 것, 나의 빛을 발하는 것을 추구할 뿐이라고.
40계단에서 원도심을 내려다본다. 깔끔하게 단장된 오래된 거리에 마로니에 잎들이 가을바람에 날아오른다. 백 마리의 물고기로 날아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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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산 원도심에 위치한 백년어서원과 예술인들을 위한 작업공간 또따또가를 통해 거리가 살아나기 시작했다. 작가가 살아났고, 문화가 살아났고, 공간이 살아났다. 원도심에 다시 사람들이 모이기 시작했다.


백년어서원(100fish.modoo.at)
부산시 중구 대청로 135번길 5, 2층
문의:051-465-1915


*지난 1년 동안 `부산의 전시·문화공간'에 관심과 응원을 보내주신 시민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내년에는 더욱 알차고 새로운 기획으로 찾아뵙겠습니다. 


작성자
김향희
작성일자
2020-12-08
자료출처
부산이라좋다
제호

부산이라좋다 제202012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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