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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1,023일 피란길의 가난과 환난 …무덤은 그렇게 집이 되었다

함께 걷는 부산 길 ⑥호국보훈의 달 특집 `피란수도 탐방길'

내용

1 길 

부산은 1950~1953년 1천23일간 대한민국의 임시수도가 되어 전국 각지에서 온 파린민을 보듬었다(사진은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중턱에 자리한 피란수도 갤러리를 둘러보는 시민들).


부산이라는 도시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몇 가지 키워드가 있다. 한국의 해양수도, 물류 항만도시, 해운대·광안리해수욕장 등으로 대표되는 피서지, 영화의 도시…. 그리고 1천23일간 지속됐던 피란수도.
지금으로부터 70년 전, 6·25전쟁이 발발했다. 역사이래 전란이 발생하면 고통받는 것은 늘 민초. 사람들은 난을 피해 남으로 남으로 내려왔다. 한반도의 동남쪽 끝자락, 인구 47만 명의 도시 부산은 1950년 8월 18일부터 1953년 8월 15일까지(서울 수복 기간 제외) 1천23일간 우리나라의 임시수도가 되어 제 몸집보다 훨씬 많은 피란민을 보듬었다. 산허리를 빙빙 도는 산복도로와 `한국의 마추픽추' 감천문화마을과 `한국의 산토리니' 영도 흰여울마을과 돼지국밥과 밀면이 탄생했다.

글·하나은/사진·권성훈
해설·김민정 부산시 문화관광해설사


- 소요시간: 약 3시간
- 노선: 아미동 비석문화마을-구름이 쉬어가는 전망대-임시수도기념관-동아대 석당박물관



산비탈 일본인 공동묘지, 마을이 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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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석문화마을 골목길. 계단, 문지방, 담장, 바닥재 등 다양한 곳에 비석이 활용됐다.

70년 전 피란민의 삶을 더듬는 길은 부산사람들에게도 조금은 낯선 `아미동 비석문화마을'에서 시작한다. 아미동(峨嵋洞)은 옛날 아미골로 불렸는데 `애막(움집)'이라는 옛말이 변했다는 설과 아미동에서 내려다보면 아래 토성동이 가늘고 길게 굽어진 미인의 눈썹을 닮아 아미(蛾眉)라 부른다는 설이 있다.

비석문화마을의 형성을 거슬러 올라가면 일본과 연결된다. 구한말부터 일제강점기까지 초량왜관(지금의 중구 일대)을 중심으로 일본인 거주지가 형성됐다. 사람들이 모여 살면 자연스레 무덤도 생기는 법. 아미동 산자락에 일본인들을 위한 화장장과 공동묘지가 들어섰다. 1945년 광복 후 일부 일본인들은 유골을 가지고 갔지만, 대다수의 무덤은 그대로 남아 주인 없는 곳이 됐다.

그로부터 5년이 지난 1950년, 6·25전쟁이 일어났다. 사람들은 당장 입을 옷가지 몇 개와 얼마 되지 않는 먹거리와 귀중품을 챙기고 다시 돌아올 수 있을지 없을지 모르는 대문을 그래도 꽁꽁 잠그고, 아이의 손을 잡고 피란길에 나섰을 것이다. 영화 `국제시장'의 덕수네 가족은 찾아갈 고모네가 있었지만, 친척 하나 없는 사람들은 힘겹게 도착한 부산에서, 붐비는 피란민 속에서 안도의 숨을 쉬었을까 망연자실했을까?

피란민은 물자와 일거리가 풍부한 부산항을 중심으로 살 곳을 찾아 산등성이와 바다 건너 영도 여기저기에 자리 잡았다. 산을 오르다 오르다 묘가 있던 지금의 아미동 비석문화마을 자리까지 왔을 터이다. 무덤이라는 무섬증을 생각하기엔 삶이 너무 고단해 무덤 터의 묘비조차 한낱 돌덩이에 지나지 않았을 터이다. 일본인들의 공동묘지 위에 비석을 건축재료로 삼은 `비석문화마을'은 그렇게 탄생했다.


마을 곳곳에 남아 있는 비석 흔적 찾는 길

이제 마을을 둘러볼 차례다. 해설을 맡은 김민정 문화관광해설사는 "지금도 사람들이 사는 마을이니 따뜻한 시각으로 조용히 둘러봐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얼마 전 방문객들의 쓰레기와 소음으로 고통 겪는 감천문화마을 관련 다큐멘터리를 본 기억이 떠올랐다. 최대한 폐를 끼치지 않도록 길 양옆에 바짝 붙어 마을 탐험을 시작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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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지 위의 집 하꼬방'. 무덤 석판 위에 집을 지은 비석문화마을의 양식이 가장 잘 드러나는 곳이다.


비석문화마을이 자리 잡는 데는 우리와는 다른 일본의 무덤 문화가 한몫한다. 땅을 파서 시신을 매장한 후 봉분을 올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일본은 화장 후 유골이 든 항아리를 땅에 묻은 뒤 비석을 올리고 주위에 제단을 쌓는 방식이 다. 살 곳이 막막하던 피란민에게 이곳 무덤은 기초공사가 잘 된 집터였던 셈이다. 무덤 하나의 크기는 약 3∼4평(9.9∼13.2㎡). 무덤 하나가 집 한 채가 되고 무덤 사이가 골목길이 됐다.


마을 중턱에 자리한 `묘지 위의 집 하꼬방(비석주택)'은 화강석 무덤 석판 위에 집을 지은 비석마을의 양식을 가장 잘 보여준다. `하꼬방'의 `하꼬(はこ)'는 일본어로 상자라는 뜻으로, 하꼬방은 피란민이 살았던 상자 같은 판잣집을 부르는 말이다. 이곳은 지난 2014년 도로확장 공사 중에 발견된 후 비석문화마을을 상징하는 곳으로 보존 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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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을 곳곳에 자리한 비석들. 사진·누리부산


무덤 사이가 골목 하나가 된 좁은 길을 줄지어 걷는다. 이곳저곳에서 탄성이 터져 나온다. "어머 여기도 비석이네." "이것도 비석이네." 혹시 나만 비석을 찾지 못하면 어쩌나 걱정할 필요는 없다. 담벼락 여기저기, 골목길 이곳저곳 반듯하다 싶은 크고 고운 돌은 비석이나 상석이다. 비석은 마을에서 집의 축대가 되고, 계단이 되고, 담벼락이 됐다.

계단이나 비탈길에서는 이쯤이다 싶은 곳에 비석이었음직한 받침돌이 마중 나와 발을 받쳐준다. 김 해설사는 "새로 만든 계단과 달리 옛날에 만든 길은 오르막 내리막이 있어도 걷는 것이 편하다"라고 설명했다. 오랜 세월 사람들의 걸음과 함께 하며 계단 하나하나까지 길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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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영향으로 마을 곳곳이 새롭게 태어났다(사진은 아기자기한 벽화가 매력적인 비석문화마을 골목길).


"화장실 만들려고 땅을 파니 불상이 나왔데." "물을 긷기 위해 지금의 동아대 석당박물관까지 내려갔데." 갖가지 이야기를 품은 마을은 비만 겨우 가리고 문이 없던 움막에서 하꼬방을 지나 오늘날의 집에 이르기까지 계속 변신하며 꿋꿋하게 살아남았다. 좁지만 정갈한 골목길에는 이제 마을 이야기를 담은 귀여운 벽화, 가슴을 울리는 시구, 요즘은 보기 힘든 정겨운 문패, 주민들의 편의를 돕는 `공동 빨래방' 등이 자리 잡았다. 산복도로 마을에 활력을 불어넣기 위한 부산시 `산복도로 르네상스' 사업의 영향이다. 활기찬 동네 아주머니와 인사를 나누고 골목을 돌고 돌아 이름도 예쁜 `구름이 쉬어가는 전망대'에 도착했다. 사람도 구름과 함께 쉬며 시원하게 펼쳐진 부산항 전경을 둘러본다. 이제 임시수도 기념거리로 이동할 시간. 지금부터는 내리막길의 연속이다.


임시수도 1,023일 행정의 중심지

욱신욱신한 무릎과 저질 체력을 탓하며 10분 정도 내리막길을 걷다 보면 훈민정음 부조상을 배경으로 공부하는 학생 조각을 만난다. 임시수도 시절 대통령 관저로 쓰였던 임시수도기념관과 정부청사로 쓰인 동아대 부민캠퍼스를 잇는 `대한민국 임시수도 기념거리'이다. 6·25전쟁 시절, 이 길은 그야말로 우리나라 정치와 행정의 중심지였을 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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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수도 기간 대통령 관저로 사용됐던 임시수도 기념관.


다양한 부조와 6·25전쟁 참전국 기념비를 지나 빨간 벽돌이 인상적인 임시수도기념관에 들어섰다. 이곳은 일제강점기 경상남도 도지사 관사였는데, 6·25전쟁으로 부산이 임시수도가 됐던 1950∼1953년 초대 대통령인 이승만 대통령의 관저로 사용됐다. 기념관은 대통령의 서재, 재실, 거실, 부엌 등을 재현한 곳과 전시관으로 나뉘어져 있다.


특히 인상적이었던 것은 지금은 사람이 살던 곳이라 상상하기도 어려운 움막과 그 앞에 자리한 물지게 모형이다. 영화에서나 보았던 물지게를 직접 지어봤다. 이 정도 무게는 가뿐하다고? 그 물지게를 흔들리지 않게 지고 아까 내려왔던 아미동 고갯길을 하루에도 몇 번쯤 올라야 한다. 피란민에게는 일상이었을 삶의 무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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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수도기념관 내 피란민 움막과 물지게 모형. 사진·누리부산


마지막으로 향한 곳은 임시수도 정부청사로 사용됐던 동아대 석당박물관이다. 이곳의 역사도 임시수도기념관과 마찬가지로 파란만장하다. 일제강점기에는 경남도청, 6·25전쟁 발발 후에는 정부청사로 사용됐다. 휴전 후에는 다시 경남도청이 됐다가 1983년 경남도청이 창원으로 이전한 후 부산지방검찰청 청사로 활용됐다. 지난 2002년 동아대가 매입해 2009년 박물관으로 문을 열었다. 일제강점기 수탈의 상징에서 대한민국 행정 중심지를 지나 이제는 역사 교육의 현장이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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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록화와 격문이 빼곡하게 붙은 1952년 당시 부산 정부청사. 사진·국가기록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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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시수도 정부청사로 활용됐던 동아대 석당박물관.

코로나19의 영향으로 박물관은 아직 개방되지 않았고, 대학은 온라인 수업 중이었다. 대학생들이 떠난 교정은 역시 아직 개학하지 않은 초등학생들이 차지하고 있었다. 활기찬 메아리를 만들어내는 아이들의 환성을 들으며 언젠가 초라한 모습으로 무덤 위에 지어진 집을 향해 가파른 언덕길을 올랐을 피란민을 생각해 본다. 몰라보게 변신한 길 위에서 다시 한번 일상의 소중함과 평화의 중요성을 되새긴다.


1. `함께 걷는 부산 길' 참여를 원하는 시민은 매월 10일까지 다이내믹부산 편집부(051-888-1291∼8) 또는 이메일(naeun11@korea. kr)로 신청해 주시면 됩니다. 선정되신 분께는 개별 연락드립니다. 일정은 코로나19 상황에 따라 변경 또는 연기될 수 있습니다.

 2. 아미동비석문화마을 해설:산상교회∼비석주택∼구름이 쉬어가는 전망대∼최민식갤러리∼천마산 힐링라인(선택). 매주 토·일요일 1회차 오전 11시∼오후 1시, 2회차 오후 2∼4시. 서구청 창조도시과(051-240-4235)로 문의. 

 

작성자
하나은
작성일자
2020-05-29
자료출처
다이내믹부산
제호

다이내믹부산 제202006호

다이내믹부산 제1883호

첨부파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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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01-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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